팩트풀니스
지은이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번역자 : 이창신(생명과학 전문가)
서평자 : 김우재(캐나다 오타와 대학교 교수)[heterosis.kim@gmail.com]
‘팩트풀니스’는 ‘사실충실성’이란 뜻으로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의미한다. 빈곤, 교육, 환경, 에너지, 인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와 실제 세계의 간극을 좁히고 선입견을 깨는 통찰을 제시하며, 우리의 편견과 달리 세상이 나날이 진보하고 있음을, 사실에 충실한 명확한 데이터와 통계로 이를 낱낱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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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에 한국에서의 의사결정은 ‘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엄연히 데이터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감 혹은 그릇된 예측을 데이터보다 더 신뢰하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그리고 안나 뢰슬링 론룬드는 자신의 감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데이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고 주문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난 세기 동안 극빈층 비율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이 질문에 감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침팬지가 찍은 정답에 근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침팬지가 찍은 정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팩트풀니스, 우리말로 사실충실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얼마나 이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려고 노력해 왔는가? 단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진화된 동물로서의 인지적 한계를지니고 있고, 그것은 평범한 시민과 정치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찌감치 베이컨은 인간이기에 지닐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를 4개의 우상으로 표현하기도 했고, 지난 세기 크게 발전한 인지신경과학은 우리의 감각과 인지과정에 얼마나 많은 오류와 편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내놓았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모두 인지적 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불완전한 인간들이 이룬 사회가 지속적으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지적 편향을 바로잡아줄 다른 패러다임의 잣대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 로슬링은, 그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실수를 조롱하거나, 희망을 버리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간이기에 지닌 한계, 그리고 거기서 등장하는 수많은 “오답들은 체계적”이며, 그것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지식’이 ‘적극적’으로 잘못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즉,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우리가 언론이나 지식인으로부터 매일 듣게 되는 이야기의 태반이, 오답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에 지닐 수밖에 없는 인지적 한계를, 여러 방식으로 정당화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고생물학자 굴드는, 서구가 만들어낸 나쁜 지적 전통으로 환원주의, 계층화, 물화, 이분법을 들었다. 로슬링이 이 책에서 분류한 인간이기에 지닐 수밖에 없는 본능들, 간극, 부정, 직선, 공포, 크기, 일반화, 운명, 단일관점, 비난, 다급함 등은 모두 베이컨과 굴드가 말한 우상 혹은 나쁜 지적 전통과 더불어,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인간의 조건들이다.
지난 몇 달이 넘도록, 국회는 공전 상태다. 마침내 열린 국회조차, 야당 원내대표의 대통령 비하 발언으로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일하지 않는 국회를 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문제는 국회가 돌아가지 않는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팩트풀니스는 한국의 국회가 지닌 전형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곳곳에서 제시한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와 관련된 보도가 그렇다. 미세먼지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한국이나 중국을 가리지 않고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기상관측 데이터는 그런 말을 하고 있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서 미세먼지를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고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하면, 해결책은 물건너가고 이 문제의 원흉이 누구인가 하는 비난의 대상을 찾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로슬링은 말한다. 어떤 문제들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지만, 현재의 시각에서 나빠 보일 수 있으며, 어떤 문제들은 나빠 보이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고. 그는 미세먼지가 나아지고 있다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단지, 질문과 사실충실성을 기반에 두고, 대안을 찾아야한다고 제안할 뿐이다.
‘비난 본능’이라는 챕터에서, 그는 대부분의 인간이 진짜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비난받을 인물을 찾아야만 만족하는 경향에 대해 말한다. 로슬링에 따르면 ‘부정 본능’을 강화하는데 특화된 언론에 의해서 현대에도 마녀사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국 국회는 한 편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비난하고, 한 편에서는 대통령을 미화하며, 인물중심으로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로슬링의 사실충실성을 따른다면, 한국 국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고, 그들이 뉴스에 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지 않을 필요도 있다.
로슬링은 우리가 더 바람직한 세계를 만들어 왔으며, 만들 수 있고, 더 잘 만들어야만 한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반드시 사실에 근거한 사고의 기본 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세계에 관한 사실 대부분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런 지식과 지식을 알아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로슬링은 그것이 호기심과 겸손이라고 말한다.
국회가 근거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고, 누군가를 비난하기 보다는 정책으로 말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국회에 호기심과 겸손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바, 그런 태도를 기르는 최고의 장소는 과학자가 연구하는 실험실이며, 과학자가 되는 방법의 대부분이, 로슬링이 제안한 사실충실성 대안과 일치한다. 국회의원이 과학자가 사실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는날, 그런 날이 한국 국회에 희망이 생기는 날일 것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휴먼전문가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http://hn.nanet.go.kr 02-788-4053 국회휴먼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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