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게 목 놓아 울었다, 방과 후 귀갓길에 홀로 시냇가에 앉아. 초등학교 때였다. 시계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학년을 가릴 것 없이 전교에서 유일하게 내 급우가 시계를 차고 있었다. 파월 맹호부대 용사였던 삼촌의 귀국 선물이었다. 그 시절 선생님도 차기 어려운 귀중품이었다. 그 시계 덕에 친구는 대장질을 했다.
점심시간에 대장은 30여 명의 급우들을 거느리고, 학교 옆 동네 작은 동굴로 박쥐 잡으러 갔다. 나는 그런 장난질에 취미도 없거니와, 애초 태생이 대장질과 졸개 짓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친구들은 5교시가 거의 끝날 무렵에 돌아왔다. 그들은 응당 벌을 받아야 했지만, 사태가 요상하게 돌아갔다. 책상 안에 벗어두고 간 시계가 없어졌다고 하자, 따라가지 않은 우리 여섯 명만 주목을 받은 것이다. 용의선상에서 30여 명의 여학생은 제외되었다. 그 당시는 한 학급이 70명에 가까웠다.
“다들 네가 가지고 갔다고 하던데?” 6교시는 자습을 시키고 선생님이 한 명씩 숙직실로 불렀다. 불려가 엉거주춤한 나에게 선생님은 다짜고짜로 이렇게 말하며, 시계를 내놓으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졌다. 내가 벼락 맞을 짓을 했다니! 물론 뒤에 알고 보니 여섯 명 모두에게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심문을 거듭 받느라 하굣길은 혼자였다. 신작로를 두고 에둘러 냇가 길을 걸었다. 도둑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에 엄마에게도 형에게도 이 사건을 말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졌다. 혼자 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울면서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이라는 훌륭한 분이, 어째 내가 도둑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까?”
중학교 때 난생 처음으로 부산이라는 큰 도시에 가봤다. 도중의 대로변에 만국기가 휘황찬란했다. 가을운동회 때나 보던 광경이었다. ‘손 흔들기’가 생각났다.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은 등하굣길 신작로에서 버스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라고 가르쳤다. 버스에 탄 손님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만국기를 여러 군데서 목격했다. 아하, 역시 내가 사는 촌구석과는 달리 도시나 도시 근처는 다르구나. 우리는 고작 손이나 흔드는데 거창하게 만국기로 길손들을 기쁘게 하는구나. 이 만국기를 단 사람들의 마음씨는 얼마나 고울까? 참 고마웠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다짐했다. 나도 남을 기쁘게 하는 뭔가 보람된 일을 하리라고.
다음 만국기를 만날 때 고마움 서린 시선으로 자세히 보았다. “000 주유소”였다.
“어디서 군 복무했소?” “고향 면사무소에서” “방위?” “그렇소.” “이상하네. 방위병 출신은 방위병 출신이라고 말 안 하던데.” 알오티시(ROTC) 장교 출신인 친구의 친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향 면사무소에서 병사보조로 방위 근무를 할 때 휴가 나온 친구들이 찾아온다. 나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너같이 몸 좋은 놈은 고향에서 한량하게 방위 서고, 나같이 약골은 전방에서 ‘조뼤이’ 치고. 무슨 ‘빽’ 썼어?” 막걸리를 내가 샀다. 내가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걸 아는 친구는 몸 어딘가가 부실하다고 생각했겠지. 그가 막걸리를 샀다. 둘 다가 아니다. 저간의 사정을 말해 무삼 소용에 닿으리오. 말은 말을 낳을 뿐이다.
군역을 때우는 시절이라 아무 부담이 없는 시간들이다. 걸림 없이 막걸리도 많이 마셨고, 책도 많이 읽었다. 종달새보다는 올빼미 습성이라 늦게까지 불을 밝혔다. 삼이웃에 홀로 내 방에서만 불빛이 새어났다.
선배가 찾아왔다. 전경(전투경찰) 출신이다. “남자가 태어났으면, 영감 소리는 들어야지.” 영감令監은 당상관이다. 정삼품과 종이품을 일컫던 말이다. 급수 낮은 당하관인 ‘나리’가 되지 말고 고시를 패스하여 고급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언젠가 정승급인 대감 소리도 듣게 되겠지.
<장자>와 <철학사>와 <인간의 역사>를 읽고 있었다. 선배는 내 책장의 책들을 휘휘 둘러봤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철학책 열 권 읽는 것보다 법률책 한 권 보는 게 더 낫다.” 그런가?
어찌어찌하여 흐르고 흘러 30여 년 후 그 방에 돌아와 변함없이 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사업가로 성공한 전경 출신 선배가 지금 내 방에 오면 뭐라고 말할까? 나는 어떤 대꾸를 할 수 있을까?
플라톤의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은 불멸이므로 여러 번 태어나며 이승과 저승에서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영혼이 배우지 않은 것은 없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은 원래 우월하고 여성은 본래 열등하다. 일방은 지배하고 다른 일방은 지배받는다. 이 필연의 원칙은 전 인류에 적용된다’고 했다. 성호 이익은 ‘짐승은 배필을 맞이할 때 얼굴이 예쁘고 미움을 가리지 않는데, 인간은 예쁘니 미우니 하고 선택하니 짐승만도 못하다’고 했다.
칼 마르크스는 ‘동양인은 스스로를 표현할 수가 없다. 다른 누군가가 표현해 주어야 한다’고 유럽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고 한 볼테르도, 코는 안경 쓰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졌음에 분명하다고 했다. 마르틴 루터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항하여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주장했다.
율곡 이이는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에는 왕도의 치세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 율곡의 생각은 중국의 천자를 잘 섬기는 사대事大 모화慕華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모화사상의 극치요 독단이다.¹⁾ 다산 정약용도 백이숙제에 대한 공자와 맹자의 기록을 철석같이 믿고, 이와 반하는 『사기』의 기록을 불신하고 그것이 허언임을 고증하려고 노력하였다.
『동의보감』에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털이 세 개 있다고 한다.
조선사회는 풍속의 정화를 들어 양반 부녀의 사생활을 감시 감독하는 것을 합법화했는데, 이른바 소문의 정치인 풍문공사風聞公事가 그것이다. 16세기 진주 사람 함안 이씨는 28살에 과부가 되었다. 얼마 후 가노家奴와 음행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피혐의자로 옥사를 치르게 되었다. 고발자는 절의지사節義之士로 이름 난 남명 조식이었다. 집안 노비들이 탈탈 털렸지만, 부인의 사생활 시비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²⁾
지적 열망(철학책)이 소비욕망(법률책)에 비해 하찮은 인생을 결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나는 지성으로 비관주의자이지만, 의지로써 낙관주의자다.(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1)기세춘, 『성리학개론 하』(바이북스, 2007), 191~192쪽. 2)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소문에 희생된 양반 여성의 사생활」, 『한겨레신문』, 2019년 2월 1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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