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孤獨死)(상)

조송원 승인 2019.01.18 11:07 | 최종 수정 2019.02.08 11:21 의견 0
사진=조송원
사진=조송원

몇 해 전 태국 남부에서의 일이다. 어느 이름난 주지승이 밀림 속에 새 법당을 짓고 있었다. 비의 안거 철이 되자, 그는 법당 짓는 일을 일체 중단하고 인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절의 고요를 되찾을 시간이 된 것이다.

며칠 뒤 한 방문객이 찾아와 반쯤 짓다 만 건물을 보고는 주지승에게 법당이 언제쯤 완성될 것인가를 물었다. 그 주지승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법당은 이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방문객은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법당이 완성되었다니, 무슨 뜻이죠? 지붕도 없고, 문도 창문도 매달려 있지 않고, 사방에 목재와 시멘트 자루가 널려 있는데, 이 상태로 마무리 지을 생각인가요? 혹시 어떻게 되신 거 아녜요? 법당이 완성되었다니요?”

늙은 주지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한 것은 모두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명상을 하러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생각을 쉬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세상의 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¹⁾

막 60줄에 들어선 후배의 궂긴 소식(訃音·부음)을 친구로부터 받았다. 인근 광양 제철의 하청회사에 다니는 후배다. 이틀 연속 결근을 해 회사 직원이 영문을 확인하러 와 방문을 여니 싸늘한 주검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후배는 독신이다. 결혼을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모른다. 초등학교 학력이나 대단히 똑똑하고 성실했다. 멀지 않은 동네라 그의 가정형편은 대충 안다. 몹시 애옥살림이었다. 성년이 되고 난 이후의 삶도 신산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난은 대물림 된다. 가난하게 태어나 혼자서 애면글면 몸부림치며 살아내다가 결국 고독사했다.

부음을 전한 친구는 삶의 경위야 어쨌건 고독사란 사실에 짠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명복을 빌어줄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며 노심초사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덤덤했다. 나는 평소 삶과 죽음을 한 묶음으로 본다. 삶에 별스런 의미를 두지도 않고 죽음을 일대사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출생에는 순서가 있어도 귀천歸天에는 앞뒤가 없다. 구름 피어나듯 삶을 얻고 구름 흩어지듯 죽음을 맞는 것이다. 어떤 따짐이 필요하리오. 다만 구름이 떠 있을 동안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는 일에 오로지할 뿐이다.

지인의 신화神化는 내 삶을 돌아볼 거울임과 동시에 앞날들의 등불이기도 하다. 친구는 후배의 고독사와 자기 삼촌뻘 사진작가의 죽음을 비교했다. 80대 중반인 사진작가가 암에 걸렸다. 가족은 물론 의료진까지 수술 불가라고 하는데 한사코 수술치료를 고집했다. 하여 6개월 입원 후 수술을 하고 6개월 더 ‘존재’하다가 억척스런 삶을 마감했다. 고독사가 삶에 집착해 노추를 있는 대로 다 보이고 가는 마무리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라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리고 친구는 덧붙였다. 사진작가는 삶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혹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동 청학동 근처 원묵계에 우거하던 ‘산사람’의 ‘죽음 연습’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지리산을 1000번 오르고 나서 그 이후론 셈을 안 할 정도의 산사람이다. 히말리야 트레킹도 가이드로서 30여회 다녀왔다. 맹수는 자신의 최후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상례喪禮는 장사행위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허나 남겨진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해 둔 게 있었다.

70대가 되면 지리산에 들어가 한 달 정도 머문다. 가족들은 실종신고까지 하며 행방을 찾아 야단법석을 떨겠지. 그 와중에 짜잔 나타난다. 그리고 다음은 6개월, 그 다음은 1년, 마침내 2년 정도 만에 나타난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나타나지 않아도 걱정을 안 할 것이다. 드디어는 아무 걱정 없이 지리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는 산사람의 경우라며 ‘남의 일’로 치부했다. 친구는 정기건강진단을 받는 등 병원과 친하다. 가족에 대한 의무로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건강검진이 차라리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건강진단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²⁾는 의사이며 암癌연구소 소장인 콘도 마코토(近藤 誠)의 글을 참조해 보자.

일본의 평균수명은 세계에서 제일이다. 그러나 간호를 받지 않고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훨씬 짧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과의 차는 남성은 9.1년, 여성은 11.7년(2010년)이나 된다. 이것은 평균치이니 노망이 들었거나 누워서 자리보전만 하는 ‘간호기간’이 20년, 30년 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고령자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종합정밀검사나 직장 건강진단 등으로 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어떤 60대 남성은 친목회에 출석한 사람 가운데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은 자신뿐이었고, 대부분은 건강진단으로 이상을 발견하여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수천, 수만의 건강인을 모아서 이분하여 한 그룹은 종합정밀검사를 행하고, 다른 그룹은 아무 검사도 하지 않는 ‘비교시험’을 몇 번이나 했다. 이러한 14개의 시험(총대상자 : 18만 명)의 결과를 해석했더니, ①암, 심근경색, 사고, 자살 등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을 계산한 ‘총사망률’ ②심장혈관병에 의한 사망률 ③암에 의한 사망률에 차이가 없었다. 요컨대 건강진단은 무효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시험결과를 받아들여 종합정밀검사 등의 건강진단을 하지 않는다. 일본의 직장에서 건강진단이 강요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판 대책이다. 일본 특유의 ‘과로사’가 생겨 손해배상재판을 할 때, 사원에게 건강진단을 받게 했다고 하면, 회사는 사원의 건강을 배려하고 있다고 하여 면책되기 쉽기 때문이다.

(곧 ‘하’편이 이어집니다.)

※1)아잔 브라흐마/류시화 옮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이레, 2008), 33~34쪽. 2)콘도 마코토(의사), 「健康診斷が私たちを不幸にする」, 『文藝春秋』(2014년 11월호), 110~122쪽.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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