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문대 입시 비리 사건의 교훈

조송원 승인 2019.03.20 19:22 | 최종 수정 2019.03.20 19:58 의견 0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대,  © AFP=뉴스1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타운대, © AFP=뉴스1

미국도 대학 입시 스캔들로 시끄럽다. 사상 최악의 입시 비리 사건이 터진 것이다.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은 12일, 2011년부터 올해 2월까지 예일대, 스탠퍼드대, 유시엘에이(UCLA) 등 주요 명문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입시 컨설턴트, 학부모, 학교 관계자 등 50명을 기소했다.

이번 비리엔 “누구에게나 더러운 빨랫감은 있다”는 명언으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의 주인공 펄리시티 허프먼, 뉴욕의 로펌 ‘윌키 파 & 갤러거’의 공동대표 고든 캐플린 등이 포함됐다.

이들의 수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시험 감독관을 매수해 대입 시험인 에스에티(SAT)와 에이시티(ACT)에서 대리 시험을 치게 하거나 답안을 바꿔치는 것, 둘째는 체육특기생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었다. 한 학부모는 축구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딸을 예일대 축구 특기생으로 입학시키려고 무려 120만 달러(약 13억6천만 원)를 브로커에게 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금까지 미국 대학 입시엔 학생들이 실력으로 합격하는 ‘앞문 입학’과 부모들이 거액의 기부를 해 입학 확률을 높이는 ‘뒷문 입학’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한 입시 컨설턴트 대표 윌리엄 싱어는 “나는 (제3의 길인) ‘옆문 입학’을 만들었다. 이는 (입학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학부모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입시 비리 사건에 대해 미국 시민들은 “이런 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엇이든 사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격분하거나, “대학의 새 건물을 짓는 데 기부금을 내어 합법적으로 똑같은 입시 비리를 저질렀을 것이다”고 냉소한다. 그러나 조지 메이슨대 경제학 교수 브라이언 캐플랜Bryan Caplan은, 이번 입시비리를 대학의 고상한 신화와 추잡한 현실을 구분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학생들은 입학 논술 시험에서는 원대한 포부를 밝히지만,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공부가 아니라 지위 획득이다. 성적을 조작해서라도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을 생각해 보자. 대학에서 더 많이 배우게 하려거나, 명문대가 아니면 훌륭한 가르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서일까? 다 알다시피 그럴 리가 있나. 예일대나 스탠퍼드대 같은 명문대의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 졸업장은 훌륭한 직업을 얻고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확실한 입장권이기 때문이다.

명문대라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1960년대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 전형적인 대학생들은 일주일에 40시간 정도를 열심히 공부했다. 현재 학생들은 그 2/3 정도밖에 공부하지 않는다. 곧, 전업(full-time) 대학 생활이 파트타임(part-time) 직업이 된 것이다.

컴퓨터과학 전공 학생들이 공부를 게을리 했다면, 취직하면 사장이 금세 실력을 알아차릴 것이다. 취직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심판의 날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대학생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현실세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아주 부자(superrich) 부모는 자녀들에게 대학을 건너뛰고 신탁자금만으로도 잘 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아들의 자부심에 대한 배려이고, 자신들의 자랑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이마에 ‘A급’이라는 도장을 받기 위해 대학에 왔다가 별 배운 것도 없이 떠난다. 그러므로 이번 입시 비리에 연루된 학부모는 대학교육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고 한다. 우리 자신의 위선에 대한 것과 많은 미국인들이 고등교육에 대해 가진 아주 노골적인 견해에 대해서다.

대학교육이 너무 쉬워져서 수학능력은 차치하고, 입학하는 데 오로지 뇌물만 중요하게 되었다. 자격 없는 학생이 뇌물로 입학을 하더라도, 학업을 완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위 대학들에도 학점 인플레가 만연하여 학생들이 졸업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이끌어 준다. 이것은 현재의 학생들(그리고 부모들)이 장래의 기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로 잠재적 불평자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수나 교직원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준 높은 고등교육기관(대학)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러한 대학들이 능력주의 사회를 실현한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위선일 뿐이다.

이번 입시비리 사건에 연루된 부자들의 수효가 많다. 이것으로 부자들이 고등교육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곧, 윤리도 없고 법도 없는 무법지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제약은 어떻게 안 들키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너무나 많은 미국 사람들이 대학교육 시스템이 도덕과 법률의 지배를 받는 일련의 제도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배 규칙을 자신의 편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조건부로 받아들인다. 단속 카메라가 없으면 속도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말이다.

명문대의 기부금 입학제도도 대단히 위선적이다. 대학 당국은 관련 상세 내막을 밝히기를 꺼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몇 백만 달러를 기부하면, 그 자녀는 입학에 크게 혜택을 받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부유하고 고학력의 상류층 가정 출신의 이점은 극단적으로 크다. 몇몇 대학에는 소득 상위 1% 가정 출신의 학생이 하위 60% 출신 학생 전체보다 많다.

이런 출신별 학생수 불균형은 반드시 기부금 탓은 아니지만, 불공평한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젊었을 때 남보다 몇 발짝 앞선 출발을 아주 높게 평가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위선을 발견한다.

미국 제도는 평등주의 가치관을 구현한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불평등한 결과가 용인되고 있고, 심지어는 조작까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전선 기차를 타고 부산엘 가노라면, 마산역 근처 초등학교에 교훈이 교문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위대한 사람이 되자”. 간혹 멀다 않고 찾아온 친구와 청학동까지 드라이브는 가는 경우가 있다. 도중 중학교 입구 바윗돌에 “큰 산 밑에 큰 사람 난다” 글귀를 떡하니 새겨 두었다.

‘큰 산’과 ‘큰 사람’과의 풍수지리적 인과관계는 따지지 말자. 열악한 교육환경에 기죽지 말라는 애교 있는 부추김 아닌가. 마는, ‘위대함’과 ‘큼’의 의미는 정녕 무엇일까? 별을 달았다고 국장으로 승진했다고, 심지어는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과시하는 펼침막이 여기저기에서 봄바람에 펄럭인다.

명석한 두뇌에 남다른 노력으로 플래카드로 자랑할 만한 ‘자리’를 꿰차도 그들은 누구에게 복무하게 될까? 혹 최고위직 출신으로 감옥에 갔다 왔다 하고, 손가락질 받는 슈퍼리치들의 손발이 될 뿐이지는 않을까?

물론 세상사 그래도 이만큼 굴러감은 ‘참’이 ‘거짓’보다 많은 덕이다. 그래서 귀중한 수재가 ‘큼’과 ‘위대함’만 추구해 혹 ‘성접대’ 의혹으로 불려가고 오는 불상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적이 걱정한다. 교육의 한 끄트머리에 적을 둔 적이 있는 촌로의 노파심으로.

※*길윤형, 「뒷문·옆문 다 뚫린 ‘USA 캐슬’···미국 최악의 ‘입시비리’ 발칵」,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14일. **Bryan Caplan, 「The larger lie of elite higher education」, 『TIME』, 2019년 3월 25일. ***Tyler Cowen, 「College admissions scandal is about more than bribery」, 『The Korea Herald』, 2019년 3월 14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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