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람’ 약산 김원봉*

조송원 승인 2019.03.03 20:19 | 최종 수정 2019.03.03 20:47 의견 0
출처 : EBS 지식채널

「야구방망이는 야구공보다 1달러 더 비싸다. 야구방망이와 야구공 값은 합해서 1.10달러이다. 야구공 값은 얼마인가?」**

<진달래꽃>을 쓴 시인이 누구인가? 이 생뚱맞은 질문을 받은 사람은 뜨악한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질문자는 예상 외로 진지한 표정이다. 야릇한 웃음기까지 머금고 맞바라본다. 시선은 굳이 답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다. 답만 말하기 민망해 소월은 필명이고,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며, 은사 김억의 지도를 받았고,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등의 작품이 있다고 사족을 단다.

아니야, 네가 잘못 알고 있어. 작자는 미당 서정주야. 이렇게 말하며 질문자는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 가슴이 턱 막힌다. 냅다 달려가 소월 시집을 가져온다. 봐라, 이래도 우길 거냐? 상대는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 도로 건네주며, 이건 인쇄가 잘못된 거야. 출판사에 전화해 봐, 내 말이 틀렸나.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럼, 네가 서정주라하고 하는 근거는 무엇이니? 이번에 새로 고증을 했는데, 서정주 작품이래. 무슨 무슨 유튜브 찾아봐. 거기에 잘 나와 있어.

“세월호 타고 놀러가다 죽은 학생들의 보상금은 금값이고, 조국 위해 희생된 천안함 장병들의 보상금은 껌값이다. 나라꼴이 이래서야 되겠나? 죄다 좌파들이 청와대를 장악해서는······.” 친구 하나가 우국충정인 것처럼 열변을 토한다. 이건 아니다. 맞대응한다. 고성과 고성이 부딪쳐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뒤따른다. 옆의 친구들은 침묵한다. 분위기로 짐작컨대 아군이 아니다. 절망감에 피곤하다. 그러나 한마디 아니할 수 없다.

맥아더 장군이 말이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부하 장병 46명의 목숨을 잃게 한 함장, 사령관, 국방부 장관은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닌가. 그들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건 뭘 의미하노? 친구, 대답이랍시고 하는 말, 그건 내가 알 게 뭐야. 국가에서 할 일이지.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 국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한 옛 조선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에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라고 했다.***

일제가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에게 내건 현상금은 100만 원, 지금 돈으로 340억 안팎이다. 백범 김구 현상금의 거의 두 배다. 노덕술은 단순한 친일경찰이 아니다. 독립투사를 체포하고 고문하는 데 앞장선 천하의 악질이다.

그런데 정작 해방 뒤 귀국한 약산을 노덕술이 체포한다. 해방정국에서 친일파 청산을 주창하는 약산의 뺨을 갈기며 고문했다. 여운형이 암살되고 생명에 위협을 느낀 약산은 월북한다. 김일성은 의열단을 이끈 약산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정권을 세울 때 입각시켰지만, 결국 1950년대 중반을 거치며 숙청했다.

일제가 세계사적 현상금을 건 독립운동의 상징 김원봉은 지금 남과 북 어디에서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독립운동한 ‘북 지도부’도 대한민국 유공자인가?”라든가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김일성에게도 훈장 줘라” 따위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표제를 엉뚱하게 내놓는다. 사주가 친일파인 신문답지 않게 얼핏 애국심이 넘쳐난다. 그런데 3·1혁명 100돌을 맞도록 노덕술 따위가 이승만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유공자인 현실엔 침묵한다. 대체 그 ‘애국자’들이 노덕술에 침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립투사 출신의 연변 작가 김학철에 따르면 약산은 장제스의 스파이로 몰려 수감됐다가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약산의 가족들은 그의 월북으로 풍비박산이 났다. 9남2녀의 맏이였던 그의 월북으로 친동생 4명과 사촌동생 등 모두 5명이 6·25때 보도연맹 관련으로 죽음을 당했다.

박성수 교수는 약산에 대해 “그는 분명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단지 공산주의자들과의 제휴를 불사했던 극단적 통일론자요 민족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구로역사연구소 염인호 씨는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운동을 주도해 왔지만, 어디까지나 민족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었으며, 그 점에서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글 첫머리의 ‘인지반응검사’(Cognitive Reflection Test)로 돌아가 보자. 여러분은 얼마나 빨리 답을 구했는가? 정·오답, 답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 등 점수가 낮을수록 종교적 독단주의나 미신, 음모론에 더 빠지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검사에서 점수가 높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똑똑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검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도 다른 분야에서는 뛰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 일군의 연구자들이 미국정치에 대해 거짓이나 잘못된 정보를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에 올린 수천 건을 분석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영향력은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고 똑같다는 신화(myth. 근거가 희박한 사회적 통념)가 존재했다.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신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곧, 가짜뉴스에 오염되는 사람들은 우파에 집중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5·18 망언의 장본인인 김진태 의원이 자유한국당 당 대표 선거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18.9%의 지지를 받았다. “5·18 유공자는 괴물”이라는 괴물 같은 막말을 한 김순례 의원도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거창하게 ‘역사의식’이나 ‘시대정신’ 같은 개념을 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이란 용어로 족하다.

언론인 고 정운영(1944~2005)은 “지킬 것을 지키는 게 보수이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게 진보이고, 버릴 것을 지키는 게 수구다”고 일갈했다. 가슴에 딱 와 닿는다.

약산의 막내 동생 김학봉 씨가 지난 24일 별세했다. 큰오빠 약산과 34년 터울로, 월북 직전 두 차례 만남이 전부였던 고인도 서울 종로경찰서로 연행돼 모진 심문을 받았다. 부친은 연금 상태에서, 남편은 고문 후유증으로 숨졌다.

고인은 2006년에 약산의 서훈을 신청했으나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다. 2019.01.20.부터 2019.02.19.까지 약산 김원봉 장군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을 청와대에 국민청원(청원자 : 필로소픽 출판사 김경준)을 실시했다. 참여인원은 1,345명에 불과했다. 안타깝다.

※ *영화 <암살>(2015)에서 배우 조승우가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라고 자신을 소개한 장면이 특히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김원봉이다. **Faye Flam(블룸버그 칼럼니스트), 「Why smart people may be more likely to fall for fake news」, 『The Korea Herald』, 2019년 1월 3일. ***조현, 「인터뷰 3·1운동 100돌에 만난 동양학자 기세춘」, 『한겨레신문』, 2019년 2월 13일. ****손석춘(건국대 교수), 「노덕술의 국가, 김원봉의 조국」, 『미디어오늘』, 2019년 2월 20일. *****김종구, 「발굴되는 중국항일전선의 조선인들-김원봉」, 『발굴 한국현대사 인물3』(한겨레출판사, 1992), 169쪽.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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