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살찐 고양이 법’을 발의했다.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각각 30배와 10배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정식 명칭은 최고임금법이다. 살찐 고양이는 서구 풍자만화에서 탐욕스런 자본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자와 일반 직원 사이의 급여가 20배 이상 차이가 나면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조직 운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임원의 보수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재벌 회장의 퇴직금이다. 지난해 말 퇴임한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은 (주)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5개 계열사로부터 41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퇴직금은 7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은 자신의 경영 실패로 중국계 기업에 매각된 금호타이어에서 퇴직금 22억 원을 받아냈다. 그룹 전체를 부실로 내몰고 경영 위기를 초래한 핵심 장본인이 거액의 퇴직금을 챙겼으니 그 몰염치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도대체 재벌 회장의 ‘퇴직금’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재벌 회장들의 퇴직금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천문학적인 규모는 물론이고, 꽁꽁 감춰진 산정 기준과 경영 실패를 반영하지 않는 자의적 지급 결정 등이 그렇다.
대부분 기업은 내부에 임원 퇴직금 ‘계산식’을 갖고 있다. 다만 실제로 퇴직 임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주주들에게조차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임원 보수 규정을 개정해야 했던 연도의 주주총회 정관 변경 안건, 회사 고위 관계자의 설명, 이전 퇴직금 지급 사례 등을 활용한 ‘역계산’ 등을 통해 주요 기업들의 계산식을 파악할 수 있다.
핵심은 지급 ‘배수’다. 평범한 노동자들의 법정 퇴직금 계산식에는 없는 마법의 열쇠다. 평범한 퇴직 노동자들의 계산식은 월평균 보수에 재직한 기간(년)을 곱하는 개념이다. 1년을 일하면 1개월치 월급이 퇴직금으로 적립된다고 보면 된다.
재벌 회장들의 퇴직금 계산식에는 ‘퇴직 시 직급에 따른 배수’가 곱해진다. 대한항공의 경우 대표이사 회장은 6배수를 적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 전 회장은 1년 일할 때마다 6개월치의 보수가 퇴직금으로 쌓이는 것이다. 코오롱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배수는 4로 추정된다. 엘지와 케이티는 지급배수가 5이다. 따라서 2014년 취임한 황창규 케이티 회장의 경우 지난해 연봉이 14억 5천만 원을 받았으므로 퇴직금이 3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계산식은 이렇다. 14억5천만 원(연봉)/12(개월)×5(재직년수)×5(배수)=30억2천만 원. 단 5년을 근무한 퇴직금이 간단히 30억 원을 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재벌 총수들이 이처럼 급여와 퇴직금 등 엄청난 규모의 보수를 받는 것은 이사회가 정한 ‘임원 보수 한도’와 ‘퇴직금 지급 규정’을 따른 것이어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회’란 어떻게 구성되는가? 주주총회의 핵심 기능은 이사 선출이다. 주주는 유권자로서 정기주총을 통해 이사를 뽑는다. 그 이사는 주주가 추천한 후보 중에서 뽑는다. 대표이사는 이사들이 뽑거나 주총에서 직접선거로 뽑아 그에게 경영을 위임한다. 즉 회사의 이사는 국가로 치면 국회의원이고, 이사회는 국회, 대표이사는 수상이다.
대부분 한국 회사의 주주 구성은 1대주주와 소액주주로 이루어져 있다. 재벌총수 일가는 자기 가족이 가진 지분은 4~5%밖에 안 되면서 계열사 출자를 통해 보통 20~30% 이상의 지분을 통제한다. 이 1대주주에 대항해서 자기가 미는 이사 후보가 당선되게 할 힘이 있는 다른 대주주가 한국에선 드물었다. 한국 기업의 1대주주들은 자기가 지명한 이사들로만 이사회를 채우고 자기들 입맛대로 회사를 통제한다. 말만 선거를 통해 뽑은 이사회일 뿐 실제로는 일당독재다.**
이렇게 총수는 자기 입맛대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사실상 자신의 연봉과 퇴직금을 스로 합법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셀프 연봉’, ‘셀프 퇴직금’인 셈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기업지배구조개선은 주총을 통해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된 이사회를 구성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대주주 전횡 방지와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기업지배구조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은 18개월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고, 여야 의원들도 2016년 20대 총선이 끝난 뒤 앞 다퉈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반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1년 6개월 동안 국회에서 재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최정표에게 답을 들을 수 있다. 그는 30년 이상 독점문제와 재벌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오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최정표는 말한다. 정치인은 경제민주화에 결코 나서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득이 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저 말로만 외칠 뿐이다. 그것도 선거 때만.
정치민주화는 경제민주화와는 달랐다. 정치민주화는 명분도 강한 데다 정치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이해관계였다. 정치가 민주화되어야 정권도 잡고 대통령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경제민주화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민주화되면 그들에게는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다. 이를 저지하려는 재벌들이 더 이상 그들에게 매달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들에게 정치는 신념과 철학과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한 수단이다. 이런 정치인은 재벌과 어울리는 편이 더 유리하다.***
최정표는 이렇게 역설하면서 경제민주화는 결국 국민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에 확실한 철학과 실천의지를 가진 정치인을 찾아내고 만드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민주국가와 법치국가임을 새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자. 결국은 시스템이다. 법과 제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그 일은 싫으나 좋으나 국회의원들이 한다.
정청래 전 의원은 자신의 저서 중 ‘국회의원 길들이기’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쁜 국회의원에게는 당당히 전화를 걸어 항의하라. 진짜 혼내주고 싶으면 ‘1인 시위’를 하라. 정말 위협적인 무기이다.
기득권과 맞서는 공격수에게 응원의 문자 메시지와 SNS에 응원 댓글 달아주라. 그 응원 한마디가 공격수를 보호한다. 5천 원(소액 후원금)의 힘은 막강하다. 단순히 돈 얘기가 아니다. 소액 후원금을 보내는 시민을 '빽'으로 둔 국회의원이 초심대로, 소신대로, 국민의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돈 몇 백 배 이상의 큰 용기를 낼 수 있다. 재벌, 탐욕스러운 기득권, 삿된 기회주의자와 가까이 할 필요가 사라진다.****
정치민주화가 권력의 분산이듯 경제민주화는 경제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 결과로 경제규모 면에서는 세계 10위 안팎의 ‘선진국’이나, 국민 행복도 조사에서는 50위 권을 맴돈다. 자신들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는 절실하다. 이제 행동할 때다.
※*최하얀, 「610억·410억···재벌총수 퇴직금 ‘마법의 계산법’ 있었네」, 『한겨레신문』, 2019년 4월 5일. ***주진형(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정기주총, 그 씁쓸함에 대하여」,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6일. ***최정표,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5년), 7쪽. ****정청래, 『국회의원 사용법』(푸른숲, 2016), 126~137쪽.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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