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한 시절 부산에서 살 때, ‘작은 고민거리’에 진지하게 매달린 적이 있다. 버스토큰 구입처에 대한 문제였다. 세상 이해 폭을 넓히기 위한 방편으로 이정전 교수의 『두 경제학 이야기(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 등을 읽고 있던 즈음이었다.
정류소에 가까운 대형 슈퍼마켓에서 토큰을 살 수 있었다. 정류소 바로 옆 우산으로 햇볕을 가린 아줌마의 노점에서도 토큰을 팔았다. 구입 편의는 별 차이가 없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 고민 아닌 고민을 제법 했다. 국가경영 비용인 세금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정으로 가난한 이를 돕고 싶다는 감성과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부정의라는 이성 간에 꽤 심각한 승강이를 벌였다.
소주보다는 막걸리를 즐긴다. 그러나 막걸리 중에서 ‘생탁’은 지금도 마시지 않는다. ‘윤리적 소비’에 대한 신념 탓이다. 노조에 따르면 부산합동양조 노동자들은 주 5일 근무는 고사하고 한 달에 한 번밖에 쉬지 못한다. 휴일특권수당·연차휴가도 거의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이국석 부산일반노조 위원장은 “소규모의 도가(양조장) 사장들이 합작해 만든 회사이다 보니 노동자들을 머슴으로 아는 관습이 뿌리박혀 있다”며 “사용자들이 노동법 준수나 노조와의 대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노조원들이 부산시청 앞 옥외 광고탑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급기야 2015년 5월 7일 노동자 진아무개(55) 씨가 숨졌다. 노조는 성명에서 “장기간의 투쟁이 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의 이 기사를 접하고 바로 ‘생탁’은 끊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노사가 원만한 협상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되는 일터로 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손을 거둬들인 ‘생탁’에는 다시 손길이 가지 않는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부산의 10여개 시민단체는 25일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송상현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제품을 안 팔고 안 사고 안 가고 안 타고 안 입는 ‘5노(NO)운동’을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이들은 “외세가 쳐들어온다면 온 나라가 합심해서 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일본이 먼저 경제적 침략을 했고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일본 제품과 이를 대체할 제품 정보를 소개하는 사이트 ‘노노재팬’에 접속 장애가 발생할 만큼 방문자가 많다. ‘1919년에는 졌지만 2019년에는 반드시 이기겠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 등 SNS 상의 결의에는 비장감마저 감돈다.
물론 무분별한 일본 불매운동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긴 한다. 불매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해 공격과 비난을 하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설과 모욕, 성희롱까지 들은 한 유튜버는 자제를 당부하기도 한다. 사회캠페인으로서의 불매운동이 일본 제품을 사용하는 개인에 대한 비난·혐오로 오도되면 이는 비열한 일이다. 정당한 대의를 훼손하는 짓이다.
그러나 세상사 인간사에 ‘파이브 나인’(59. 순도 99.999%)이 있을 수 있으랴. 문제는 일각에서 ‘불매운동, 일본 안 가기 등이 일본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거나 불매운동을 현실을 모르는 ‘감정적 행동’으로 폄하하고 있는 현실이다. 불매운동은 지극히 ‘이성적 행동’이며,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귀중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싶다. 불매운동으로 일본경제를 쥐락펴락할 수는 없다 손치더라도 정부의 협상력을 높인다. 나아가 ‘선량한 일본인’들을 각성시키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경제전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문제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경제전쟁의 악영향을 피부로 체감시키는 불매운동이야말로 일본인들에게 사안의 심각성에 눈 뜨게 하는 각성제인 것이다.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은 <한겨레21> 기고에서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지 못하는 건 국제법의 상식”이라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한 우리 대법원을 지지한다. 그리고 독일의 예를 들었다. 독일은 나치에 의한 강제노동 피해와 관련해 2000년 8월 6400여 개의 독일 기업이 ‘기억·책임·미래 기금’을 만들어 지금까지 약 100개국 166만여 명에게 약 44억 유로(약 5조8515억원)의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런 독일 정부와 기업들의 행동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12월 27일 당시 독일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는 공식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재단을 발의한 독일 국가와 기업은 과거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공동의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할 것을 선언합니다.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은 단지 받아야 할 임금을 뺏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납치, 근거지 상실, 권리 박탈 및 잔인한 인권유린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강제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신들에게 가해진 불의가 불의라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 독일의 지배하에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을 수행해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며 독일 민족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고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노예노동을 시켰다. 불법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 대가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지불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휴머니즘에 대한 도전이다. 인권유린에 대한 죗값에는 시효가 없다. 피해자가 ‘이제 그만하라’할 때까지 무한 배상을 해야 한다. 곧, 우치다 다쓰루 교수의 주장처럼 일본은 ‘전쟁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게 국제인권법적 시각이다. 한데 고작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전범 기업의 배상 판결을 빌미삼아 경제전쟁을 도발하다니, 아베정권의 치졸하기 짝이 없는 작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정권의 경제전쟁 도발은 휴머니즘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세계경제질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관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사주간지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경제적으로는 근시안적이고, 더 넓은 지정학적인 맥락에서 아주 분별없는 자해행위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다. 두 나라는 WTO(국제무역기구)에서 다툴 것이다. 이 다툼의 함의는 지중하다. 곧, 이 다툼은 국제무역기구가 무역분쟁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세계무역기구가 새로우나 더 비열한 질서로 대체될 것인가를 테스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체된 새 질서에서는 공급망(supply chain)이 무기화 되고, 무역은 순수하게 정치의 확장이 될 것이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정부가 할 일이 있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은 휴머니즘에 도전하는 폭거이고, 세계무역질서를 어지럽혀 세계 공영을 해치는 무모한 반경제적 행위이다. 세계무역이 줄어들어 각국의 경제가 쪼그라들면, 내 호주머니도 가벼워진다.
윤리적 소비는 제품 기획과 생산, 판매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소비이다. 가치 소비는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다. 일본 불매운동은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한국적 목적을 넘어, 휴머니즘을 옹호하고 세계무역질서를 바로 잡는 데 일조하는 ‘가치 소비’ 운동이다.
누가 ‘일본 불매운동’의 숭고하고 큰 뜻을 폄훼할 수 있으랴!
※*김학태, 「부산 명물 ‘생탁 막걸리’ 노동자들이 6개월째 파업하는 사연」, 『매일노동뉴스』, 2014년 9월 11일. **김광수 외, 「안 사고 안 가고···일본 제품 ‘5NO'」, 『한겨레신문』, 2019년 7월 26일. ***「“강제징용 인권침해, 개인구제 이뤄져야”」, 『한겨레21』(1272호), 2019년 7월 25일. ****이동기(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독일은 일본처럼 하지 않았다」, 『한겨레21』(제1096호), 2016년 1월 22일. *****Leader, 「History wars」, 『The Economist』, July 20th 2019.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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