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인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릅니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인들은 우리의 삶이 이 지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 또는 영생, 부활, 환생 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죽음을 전체 삶의 일부분 또는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좋은 죽음을 위해 진실되고 참된 삶을 사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삶과 질적인 삶의 유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명을 더이상 연장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되면 남아 있는 삶의 질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지요.
삶에 대한 선택이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엄스러운 죽음(dying with dignity)을 선택할 것이라고 봅니다(Cohen, 1979). 플레쳐(Fletcher, 1969)는 “죽음의 조절은 출산의 조절과 같으며 이것은 바로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죽음을 앞둔 임종자들에게는 삶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남은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강조하기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을 둔 ‘호스피스 돌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호스피스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생을 충만하고 풍요로운 것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돌봄(care)의 개념은 라틴어의 ‘kara' 라는 어원에서 나왔으며 그 의미는 ’to lament' 즉 울다, 통곡하다, 슬퍼하다, 근심하다 라는 뜻으로 한 개인의 아픔과 고통에 참여하여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는 공감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므로 돌봄은 ‘to present' 즉 함께 있고 함께 느끼며, 함께 존재 (be there) 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과 놀라움을 몰아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의학은 여러 가지 질병과 전염병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 직접적인 원인을 발견하였고, 새로운 의약품의 개발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말기환자나 가족에게 생명을 시간적으로 더 연장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중병에 걸리거나 임종을 맞이할 때 과거의 자연사와는 다른 환경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앞서서 우리는 사적인 환경에서 공적인 의료기관으로 옮겨지고, 임종 말기에 있어서 의약품과 의료기기에 의하여 생명을 더 연장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기 환자나 가족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생명 연장을 의사에게 부분적으로 기대하거나 의존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인간을 위한 치유와 회복, 생명의 연장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안락사와 살인, 임종에 대한 도움에 관한 토론이 새로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생명의 연장 또는 인간 복제 기술로 인하여 생명과 죽음을 자신의 뜻에 따라 처리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기술적인 과학과 의학은 분명 인정되어야 하지만, 인간이 맞이하게 되는 죽음의 위기와 갈등에 대한 인간적인 도움의 자세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위로는 자신이 혼자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의 곁에 있으며 서로 이해하고 돕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치유될 수 없는 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적극적인 전인치료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통증 조절과 더불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줍니다. 완화의료의 목표는 환자나 그 가족들로 하여금 최상의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많은 부분은 질병의 초기부터 항암치료와 함께 적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WHO).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시인>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