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이 남녀 2천 명을 불러 놓고,
“내 처음 너희들과 함께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文字)를 만들어 옷·갓을 지으려 하였는데, 땅이 협소하고 내 덕이 부족하여,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련다. 너희들은 어린애가 나서 숟가락을 잡을 만하거든 바른손으로 쥐기를 가르치고, 하루를 일찍 났어도 먼저 먹게 사양하렷다.”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타고 나갈 배 한 척만 남기고,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며, “가지 않으면 곧 오는 이도 없겠지.” 하고, 또 은전 50만 냥을 바다 속에 던지며, “바다가 마를 때면 이를 얻을 자가 있겠지. 백만 냥이면 나라에서도 쓸 곳이 없는데, 하물며 이 작은 섬에서 무엇에 쓰랴?” 하고,
마지막으로 그들 중에 글을 아는 사람을 불러내 배에 함께 태우고 떠나면서 , “이 섬나라에 화근(禍根)을 없애버렸구나!” 라고 말했다. -연암 박지원/「허생전」-
왜 ‘글을 아는 사람’을 ‘화근’이라고 했을까? 연암의 유토피아는 노장(老莊)의 원시 공산 사회를 그리고 있다. 「허생전」의 허생은 무인도에 도둑 떼를 몰고 가서 이상사회를 건설하는데, 거기에는 돈도 없고 글도 없으며, 법이라고는 오른손으로 밥 먹는 것과 어른을 공경하는 것 두 가지뿐이었다. 이것은 바로 노장의 이상사회인 원시 공산 사회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연암은 실학자로서, 실제 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공리공론만 일삼는 유가(儒家.유학자)를 비판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는 조선사회에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시대가 진보해 사상의 자유시장이 열리고, 지식인(글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가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대로 변천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지식인이 차별과 불평등의 화근이라는 연암의 문제의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바로 지금의 현실에 ‘쓸모 있는 바보’가 하 많은가.
허생전을 읽을 때, 연암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지나쳤다. 연암 자신도 탁월한 지식인이었고, 지식인이기에 시대의 모순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여 마음 한켠에선 성삼문(1418~1456)의 절명시(絶命詩)를 떠올리며 숙연해진다. ‘쓸모 있는 바보’의 정반대 편에 선 지식인이, 형장에서 형 집행을 알리는 북소리를 들으며 그 심정을 읊은 글이 그 유명한 절명시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둥둥둥 북소리 내 목숨 재촉하는데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머리 돌려보니 해는 막 지려 하는구나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저승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어갈까
“우리는 나라를 도둑질한 나리를 죽이려 했다” 며 성삼문은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끝까지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리’라 호칭했다. 그러자 세조는 자신의 녹을 받아먹었으니 자신의 신하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성삼문은 그동안 받은 녹을 곳간에 쌓아놓고 한 톨도 건드리지 않았다.
‘쓸모 있는 바보’(useful idiots)란 정치 속어로, 원래는 공산주의를 신봉하거나 공산주의에 동조적이었던 서구 지식인 및 소비에트(소련)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강대국이나 특정 집단의 헤게모니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동조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전인 작년 7월 이스라엘 예비역들이 군 복무 거부 선언을 했다. 역대 최고 극우 정권인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개편안을 추진하기 때문이었다. 부패 혐의 등으로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가 사법부를 무력화하고, 행정부 독재를 획책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가 파괴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국방의 한 축인 예비역들이 조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쓸모 있는 바보’가 되기를 거부한다며, 군 복무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 교육부 고위직(정책보좌관) 타리크 하바시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공범이 될 수 없다고 사임했다.
하바시는 “난 주요 인권 전문가들이 이스라엘 정부의 인종청소 작전이라고 부르는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잔학 행위에 이 행정부가 눈감고 있는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킬 수 없다”고 사직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식량, 물, 전기, 연료, 의료품을 차단해 질병과 굶주림을 만연하게 만드는 폭력적이고 집단적인 처벌에 관해 가장 강력한 동맹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제지하지 않는 이 행정부의 조용한 공범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반인권적인 조 바이든과 바이든 행정부의 ‘쓸모 있는 바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작년 1월 9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등의 새해 업무보고에 참석한 윤 대통령이 모두 발언으로 ‘폭포수 발언’을 쏟아냈다. 대통령실 일부 인사들은 “대통령이 아는 게 얼마나 많으면 즉흥 발언을 20분 넘게 하겠느냐”며 추어올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5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쌍특검법’이 “정쟁을 유발하고, 중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법안”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주장이다. 그냥 간단히 “나는 ‘쓸모 있는 바보’다”고 만천하에 공개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검찰독재에 복무하며 권력의 떡고물로 사욕을 채우겠다는 의사 표시일 뿐이다.
‘추운 겨울이 온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고 했던가. 그러나 추운 겨울, 검찰독재 시대에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고스라니 드러난다. 다행히, 정녕 ‘쓸모 있는 인재’는 검찰독재에 복무하길 거부한다고들 한다.
대한민국의 저류에 흐르는 도도한 ‘성삼문적 힘’이 내외세의 파고를 어쨌든 극복케 해 왔다. 검찰독재의 파고쯤이야! 얼마 남지 않은 ‘그날’에 ‘쓸모 있는 바보들’은 그 부끄러움과 응보, 어떻게 감당할까? ‘관용의 실패’를 몇 번이나 경험한 국민이 이제 ‘무관용의 원칙’을 외치고 있으니, 그들은 지금 속으로는 정녕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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