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주(黔州)에는 당나귀가 없어, 한 호사가가 당나귀를 배에 실어 들여왔다. 막상 와보니 별로 쓸 데가 없는지라, 산 아래에 풀어 놓았다. 호랑이가 당나귀를 보니, 우람하고 큰 놈이라 신령스러이 여겨 수풀 사이에 숨어 관찰하였다.
시간이 약간 경과하자 숲에서 나와 조금씩 접근하기는 했지만, 겁이 나서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어느 날 당나귀가 한 바탕 울자 호랑이는 깜짝 놀라 멀찍이 숨어버렸다. 자기를 물려는 줄 알고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고가며 무슨 특별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소리에도 점차 익숙해져 다시 앞뒤로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끝내 치지는 못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 더욱 수작을 부려 건드리고 부딪치니, 당나귀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했다.
호랑이는 마음속으로 “재주가 이것뿐이로군.” 하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래서 펄쩍 뛰어 덥석 물어 목을 끊고 고기를 다 먹은 후에 가버렸다.
아! 몸집이 우람하니 덕이 있을 것 같고, 그 소리는 우렁차 무슨 능력이 있는 것 같더니, 일찍이 재주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는, 호랑이가 비록 사나우나 의혹과 두려움에 감히 잡아먹지 못했는데, 이제 결국 이처럼 되었구나. 슬프도다!」 -유종원(773~819)/검지려(黔之驢)-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이른바 ‘쌍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이다. 헌법을 수호하고 민의를 받들어야 하는 민주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일말의 책임의식과 공공의식이 있지 않겠냐는 ‘혹시나’였다. 역시나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이해관계를 위해 남용하는 윤 대통령은 자신이 민주주의 지진아(遲進兒)임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아니라 윤석열 개인의 입장에서는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가 합리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쌍특검법’에 의해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뿐 아니라, 양평고속도로 의혹과 명품 백 수수 의혹까지 수사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윤 대통령도 수사 대상으로 소환될 수도 있다.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의 주임검사였기 때문이다.
2021.1.1.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당시부터 검사가 직접 수사를 개시하여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별건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한정시킴으로써 수사 범위의 확대를 제한해 왔다. ‘직접 관련성’의 범위는 ①피의자 동일(ⓐ동종범죄, ⓑ범죄수익 관련 뇌물·횡령·배임 또는 ⓒ영장에 의한 증거 공통 한정), ②공범, 동일 일시·장소 등, ③동일 목적/수단·결과 관계, ④독립행위 경합, ⑤무고 등으로 제한함으로써, 그 범위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러나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주도한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 관련 개정 대통령령(2022.9.10.)’에서는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를 공통’으로 하는 경우 직접 관련성이 있다고 규정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의해 검사의 직접 수사 개시 범위를 종전 6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범죄와 경제범죄)로 축소했다. 다만, 관련사건은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이에 한동훈 전 장관은 ‘관련사건’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검사의 수사 범위를 엄청나게 넓혀 놓은 것이다.
한동훈 전 장관이 부린 ‘시행령 꼼수’ 덕으로 특별검사가 양평고속도로 의혹 사건이나 명품 백 수수 의혹 사건은 피의자가 동일하므로 수사할 수 있다. ‘대장동 50억 클럽 뇌물 의혹 특검법’으로 특별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을 소환하여 조사할 수 있다.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 대출된 자금이 대장동 개발 사업의 종잣돈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쌍특검법’을 받든 거부하든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판사판 거부하는 게 장삼이사의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마는, 국민(호랑이)은 윤 대통령(당나귀)임을 이미 간파했다. 우람한 큰 몸집으로 검찰권을 휘두르니 겁이나 움츠렸다. 그러나 고작 가진 재주가 ‘뒷발질’뿐인 걸 안 이상, 무엇을 더 두려워하랴!
2019년 미국에서 살인 사건 범죄자 검거율은 50%에 불과하다. 시카고에서 사망에 이르지 않은 총격 사건의 범인 검거율은 10% 정도다. 강도나 차량 강탈 등의 기타 폭력 범죄자의 검거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첨단장비를 구비하였는데도 왜 범죄에 이렇게 속수무책일까? 조송원 작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민의식이다. 현대 영국 경찰의 창시자인 로버트 필(1788~1850)은 “경찰이 대중이고, 대중이 경찰이다”라고 설파했다. 훌륭한 시민의식이 감시 카메라 등 모든 범죄 예방과 추적 장비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재의결을 하든, 4월 총선에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200석 이상을 야당에 몰아주든, 몇 년 더 검찰독재에서 인고하든, 국민이 선택할 일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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