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새해 아침에 지구 생물종의 역사를 생각한다

인저리타임 승인 2024.01.03 05:18 의견 0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돎이 무슨 대수일까. 수십 억 번을 돌았고, 이 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이후에도 몇 백만 번을 돌았다. 마는, 이런 셈법은 인류 전체에 해당할 뿐, 개인은 채 백 번을 경험하지 못한다. 하여 의미를 가질 법도 한 사건이다.

원단(元旦.새해 아침)이 의미를 갖는 건, 365분의 1이라는 희귀성 때문만은 아니다. 역동성이 특징인 대한민국에선 심심찮게 대형 사건이든 이벤트든 발생한다. 건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다. 발등의 불은 먼저 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발등의 불을 끄려고 고개 숙여 발치의 웅덩이만 피하다 보면, 정작 몇 걸음 다음에 맞닥뜨려질 큰 강물은 건널 수 없게 된다. 하여 한 번쯤은, 특히 새해 아침에는 고개를 들어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고, 먼 데도 응시해 볼 일이다.

우주의 역사나 진화의 시간에서 1년은 정말 ‘눈 깜빡할 새’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무시해도 좋은 ‘찰나’일 뿐이다.

[픽사베이]


135억 년 전 우주에 물질과 에너지가 등장했다. 이어 원자와 분자가 등장했다. 45억 년 전에 지구라는 행성이 생성됐다. 38억 년 전에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했다. 6백만 년 전에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사라졌다.

25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호모 속(屬)이 진화, 최초로 석기를 사용했다. 200만 년 전에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퍼져, 다양한 인간 종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50만 년 전에 유럽과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했다. 30만 년 전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7만 년 전 인지혁명으로 언어가 등장하고, 역사가 시작됐다.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퍼져나갔다. 4만5천 년 전 사피엔스가 호주에 정착, 호주 대형동물이 멸종했다. 3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했다.

1만6천 년 전 사피엔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 아메리카 대륙 대형동물이 멸종했다. 1만2천 년 전 농업혁명으로 동물을 가축화하고 식물을 작물화했다. 영구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5천 년 전 최초의 왕국이 건설되고, 글씨와 돈을 사용하고, 다신교 종교가 발생했다. 4천250년 전 최초의 제국(사르곤의 아카드 제국)이 탄생했다. 2천500년 전 주화의 발명으로 보편적 통화가 등장했다. 페르시아 제국과 인도 불교가 탄생했다.

5백 년 전 과학혁명으로, 인류 스스로 무지를 인정하고 전대미문의 힘을 얻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정복을 시작했다. 지구 전체가 단일한 역사의 무대가 되었다. 2백 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가족과 공동체가 국가와 시장에 의해 대체되었다. 동식물이 대량 멸종했다.

인류가 지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때는 과학혁명을 이룬, 고작 500년 전이다. 지구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도 채 10만 년이 안 된다. 지구 생명체의 역사 38억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그런 인류가 현재 이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다.

지구 38억 년간의 생명체 역사에서 모든 생물종 중 99% 이상이 멸종하였다. 화석기록에 의하면, 지난 6억 년 동안에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대멸종의 원인 중에서 공통적인 것은 소행성 충돌이든 대규모 화산 폭발이든 간에 ‘급격한 기후변화’였다. 과학자들은 지금 우리가 또 다른 멸종(6차 대멸종)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1차 대멸종은 4억4000만 년 전인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에 일어났다. 생물종 중 85%가 사라졌다. 2차 대멸종은 3억 6500만 년 전에 일어나 생물종의 70%가 사라졌다. 3차 대멸종은 2억 53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가장 큰 규모의 멸종이며, 해양생물의 96%, 육지생물의 70%가 멸종했다.

4차 대멸종은 2억 1,500만 년 전에 일어나, 육지생물의 80%, 해양생물의 20%가 멸종했다. 5차 대멸종은 6,6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공룡이 멸종한 시기이다. 100만년에서 250만년 동안 진행되었으며, 이는 대멸종 가운데 가장 빠르게 대멸종이 발생한 사건이다.

지구 생물종의 역사나 대멸종을 생각할 때 ‘인간의 시간’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대멸종도 하루아침, 혹은 100년 1000년 정도가 아니라, 몇 백만 년에 걸쳐서 일어난다. 대멸종 이후 몇 천만 년 혹은 1억년 이상에 걸쳐,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고, 기존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구가 생명체로 번성하게 된다. 그리고 또 대멸종에 이르기를 반복해 왔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한 500년은 정말 찰나일 뿐이다. 1만 년 전에는 지구상 척추동물의 99.9%가 야생동물, 0.1%가 인간과 가축이었다. 지금은 야생동물이 3%, 인간이 32%, 가축이 65%를 차지하고 있다.

생물의 진화와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기괴한 생태계가 인간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38억 년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기후변화와 함께 6차 대멸종이 이미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조송원 작가

조송원 작가

새해 아침에 지구의 모든 생물종의 역사에 비춰 인간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격언대로 ‘이성으로는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한다.’ 어차피 인간 삶에 무슨 특별한 목적이나 의미나 가치 같은 것은 없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모조리 사라져도,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산책을 하다 무심코 길가 동백나무 잎을 따려다 멈칫했다. ‘누가 네 손가락을 꺾어 가면 좋겠냐?’ 바람에 동백나무의 잎들이 부스럭거렸다. ‘그래, 어차피 목적이나 의미나 가치는 스스로 부여하는 게 아니겠나!’ 빈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털레털레 걸었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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