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13일에도 18만8751명이나 되는 관객의 발길을 끌어들여, 누적관객수 755만1382명을 기록했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현재 예매율 1위(14일 오전 8시 30분 기준 예매관객수 19만9440명)이고, N차 관람 열풍이 뜨겁다는 점을 감안하면, 1000만 돌파가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서울의 봄’ 단체관람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A초등학교는 12월 4일 ‘2023학년도 6학년 책가방 없는 날 안내’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6학년 책가방 없는 날’에 근현대사 영화 관람을 통해 역사적 사실의 심도 있는 이해 및 역사적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영화 ‘서울의 봄’ 관람을 아래와 같이 계획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본교 교사들이 사전 답사 및 사전 관람을 하고, 영화 관람으로 인한 교육적 목적 이외의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교육과 사후지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6학년 사회과 교육과정과 연계한 활동으로, 민주시민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통신문 일부-
이를 두고 극우성향 유튜브 채널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이 학교 가정통신문을 공개하며, “좌빨 역사 왜곡 영화 ‘서울의 봄’ 관객수 조작 증거다, A초등학교가 학교 수업이라며 ‘단체관람’을 진행하고 있다. 목적은 황당하게도 ‘민주시민 역량 강화’라고 한다, 이 더러운 좌빨 교육을 막아야 한다, 다함께 교육부에 신고하자”라며 선동했다.
이렇게 논란이 일자, A초등학교는 이틀만인 12월 6일 다시 가정통신문을 보내며 단체관람 계획을 취소했다. 포항의 한 초등학교도 ‘서울의 봄’ 단체관람을 추진하다가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가 이어지자 취소했다.
책에 관해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정치인과 보수성향의 학부모 단체들이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초·중·고 도서관에 비치된 ‘성교육·성평등’ 관련 도서를 ‘유해도서’로 규정해 폐기하려 한다. 이유는 비상식적인 성문화를 조장하는 책이기 때문이란다.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더 심하다.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학생에게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책을 금지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극좌파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근거해 고전 도서의 검열 목록이 빠르게 증가하자 기뻐한다. 한쪽은 아이들이 인종과 성별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질까 봐 걱정한다. 다른 한쪽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열등함을 암시하는 단어와 문구가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비판하는 영화를 보면, ‘좌빨’이 된다?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비판하며. ‘민주시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바람직한 시민상이다. 그런 시민이 좌빨이라면, 좌빨이 되도록 학교교육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할 것이다.
비상식적인 성문화를 조장? 정치인이나 일부 학부모 단체가 자신들의 편견이나 단견(短見)으로 책의 유해성을 심판한다? 초등생들도 이미 인터넷에 떠도는 음란물을 통해 성지식을 과다할 정도로 학습하고 있다. 책이 아니라 ‘인터넷 없는 세상’을 만듦이 근본 처방이 아닌가. 그들 자신들은 성적으로 얼마나 단정한가.
더욱 중요한 문제는 좌빨이나 유해도서를 떠드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정체성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편견을 아이들에게 투영시키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다. 나아가 선/악의 판단 능력은 인간의 생래적 특성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실험을 보자.
심리학자 폴 블룸은 그의 저서 『선악의 진화심리학』에서 동료와 함께 유아의 도덕성 발달을 탐구하기 위해 수행한 실험을 설명하고 있다.
한 실험에서 연구진은 아기들에게 호랑이가 다른 두 마리의 토끼에게 각각 공을 굴려주는 인형극을 보게 했다. 첫 번째 토끼는 공을 다시 호랑이에게 굴러주고 게임은 반복된다. 반면 다른 두 번째 토끼는 처음 공을 받자마자 훔쳐 달아난다.
이후 아기들에게 두 도끼 인형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만 가지고 놀게 했을 때, 아기들은 공을 호랑이에게 돌려준 토끼 인형을 선택했다. 이와 관련된 다른 연구에서도 생후 3개월이 지난 유아는 이기적이고 착취적인 캐릭터보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캐릭터를 선호했다.
이러한 선호가 인간에게 매우 일찍 그렇게 안정적으로 발달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보여준다. -데니스 J. 정크/‘이누이트족의 스토리텔링 양육법과 양육의 본질’/KOREA SKEPTIC Vol.36/2023.12.8.-
유아(乳兒·젖먹이)까지 선인/악인을 구별한다는 사실은 ‘공정성의 본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