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관행이 얼마나 도덕 및 이성과 상충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정치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말을 들으면 다들 수긍하지만, 그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
특정한 정치적 관행이 얼마나 실속 없는 것인지 보여줌으로써 다수에게 그런 관행에 대한 혐오감을 전달하는 것은, 다소 우회적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유용한 일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몽테스키외/정치에 관하여(에세이)-
‘인사가 만사’라 했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하여 낙점 받은 인사를 통해 대통령의 의중, 곧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나아가 대통령이 내세우는 인물을 통해 대통령의 인품,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추론해 볼 수도 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어떤 인물인가. 윤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검찰 선배’인 김 후보자는 5개월여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어떤 곳인가. ‘고충민원의 처리와 이에 관련된 불합리한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부패의 발생을 예방하며, 부패행위를 효율적으로 규제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위원장은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국민권익위 누리집에 들어가면, ‘청렴하고 공정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힘이 되는 권익위’라는 큰 글씨의 로고가 첫눈에 들어온다. 애당초 ‘조폭 잡던’ 김홍일은 고충민원을 야기한 장본인이었지, 고충민원을 들어주는 권익위원장으로서는 부적격자였다.
김홍일은 ‘김 순경 살인 누명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1992년 11월 서울 관악구의 한 여관에서 18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현장을 최초로 목격하고 신고한 숨진 여성의 남자친구인 김기웅(당시 27살) 순경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폭행치사 혐의로 이 사건을 검찰로 보냈다.
담당은 서울중앙지검의 김홍일 검사였다. 김 순경은 김 검사에게 ‘경찰 조사 때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 자백했다’며 추가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 검사는 김 순경에게 경찰이 적용한 폭행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김 순경은 1,2심에서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다행히 상고심 중이던 1993년 11월 진범이 붙잡혀 최종 무죄 판단을 받았다.
이후 검찰은 이 사건을 반성하며 ‘K씨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 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책자까지 발간했다. 방통위위원장 청문회(2023.12.27)에서 허숙정 의원이 “지금 누명 사건 피해자가 국회에 와 있는데 만나서 말씀하셨던 대로 무릎 꿇고 사죄하겠나”는 질문에, 김 후보자는 “제가 사죄하겠다”라고 답했다.
사죄한다고? 사죄는 잘못의 인정과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고 난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말뿐인 사죄는 사죄가 아니다. 이런 자가 ‘국민신문고’ 역할을 맡았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이미 싹수가 노랬다. 이후 행적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김홍일은 당시 유력 대선후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맡았다. ‘김홍일 3차장검사-최재경특수1부장-김기동특수1부부장’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그해 8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며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는 수사결과를 내놨다.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쪽에 줄을 서는 듯한 발표였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똑같은 수사팀은 대선을 2주 앞둔 그해 12월 5일 정반대 결과를 발표했다. 김홍일 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생중계된 중간수사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도곡동 땅과 한 몸으로 얽혀 있는 다스의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고 볼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앞서 8월 수사결과와 모순된 발표였다. 그해 12월 19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홍일은 이명박 정권 내내 ‘꽃길’을 걸었다. 그러나 2007년 김홍일 수사팀의 결과는 2018년 윤석열 중앙지검장-한동훈 3차장 검사가 이끈 재수사에서 정반대로 뒤집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기소됐다.
한마디로 요지경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가. 걸핏하면 ‘법과 원칙’을 들먹이는 검찰이 아니던가. 더욱 기가 찰 일은 김홍일 수사팀의 결과를 잘못됐다고 정반대로 뒤집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홍일을 ‘가장 신뢰하는 검찰 선배’라고 지칭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사적 이익 혹은 목적을 위해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다는 인간관, 혹은 세계관의 방증이 아니겠는가.
김구 선생은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애송했다고 한다. 하도 인용이 많이 되어 식상하지만, 그 교훈은 오롯하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는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내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그러나 ‘어지러이 걷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지러이 걸은 자의 말로가 험악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어지러이 걸은 자가 승승장구하며 꽃길만 걷는다면, 후인들이 어찌 이정표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홍일 후보자는 설령 임명을 받더라도, ‘제2의 이동관’으로 마땅히 탄핵해야 한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