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꼰대’와 거짓 딜레마와 뉘앙스 ③뉘앙스

조송원 기자 승인 2023.12.08 09:58 | 최종 수정 2023.12.12 12:20 의견 0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One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 그러나 낙엽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一葉知秋).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3만573건의 거짓말을 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자체 팩트체크(사실검증)를 토대로 트럼프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이다. 주요 거짓말 경로로는 선거 유세 현장이나 트위터 계정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15년에도 유명한 거짓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뉴욕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이 진짜 르누아르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시카고미술관에 진품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트럼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되레 미술관의 그림이 가짜라고 역공했다.

재선에서 실패한 뒤에도 “사기 선거였다”,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며, 거짓말 공세를 이어갔다. 이 거짓말로 인해, 올 1월 5일 트럼프 지지자들은 사상 초유의 의회 난동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체루가스가 난무하는 미국 의회 [위키피디아]

이렇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트럼프가 내선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11월 미국 주요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2~4%가 높다.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세계에 가장 큰 위험이라고 분석한다.(‘Donald Trump poses the biggest danger to the world in 2024’/23.11.16)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한다. 자신이 승리했는데 도둑맞았다고 계속 주장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한데 이 거짓말을 계속하면서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트럼프는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국가를 구성하는 규범이나 관습 그리고 자기희생 따위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 ‘패자(looser)만이 그것들에 얽매일 뿐이다’, ‘강자는 뻔뻔해야 한다’는 등의 직감(gut feelings)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법원과 법무부를 포함하여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기관과 전쟁을 벌일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해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중국과 그 우호국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증거에 기뻐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반발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적법절차와 시민권을 짓밟았는데, 미국 외교관들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이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으로 남반구 국가들(저개발국)도 ‘옳은 일을 하라’는 미국이 실제로는 위선자라는 것을 트럼프의 승리로 확증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그 영향력이 쇠퇴하고 단지 여러 강대국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서사(敍事)는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펼쳐 보이는 이야기’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는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타당하다. 서사의 영역(英譯)인 내러티브(narrative·사건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방식)가 더 적확하다. 곧, 서사란 어떤 사물이나 사실, 또는 현상의 줄거리를 ‘자기 방식대로’ 말이나 글로 만드는 일이라고 개념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꾸미고 싶은 대로 서사를 만들어 사실과 다른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다. 트럼프는 사실적인 근거 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서사를 만들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서사를 믿는다. 반대자들은 트럼프의 서사가 거짓임을 안다. 서사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 다르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극한 대립으로 이어지고 세상은 양극화된다.

양극화된 세상에서 ‘드문 만큼 어려운’ 것이 ‘뉘앙스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뉘앙스(nuance)란 ‘알아차리기 쉽지 않지만, 중요할 수 있는 성질’이다. 사전에서는 (말의 뜻, 감정, 빛깔, 소리 등의) ‘미묘한 차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보단 더 깊은 뜻이다.

뉘앙스에 대한 감각이나 지적 능력이 없으면, 세상사를 미/추, 선/악, 우리/그들, 남성/여성, 진보/보수 등 이분법으로 보기 쉽다. 이분법으로서는 상호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내 편) 중에서 인간적 경멸의 대상이 하 많은가. ‘그들’(네 편) 중에서도 우러를 만한 인격자도 또 얼마나 많은가.

뉘앙스를 알아채어야만 다른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가 곧 동조나 받아들임은 아니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공감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좋은 뉘앙스를 통해 ‘우리’와 전혀 다른 ‘그들’의 관점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고, 감사의 마음도 가질 수 있다.

뉘앙스를 아는 사람은 세상사를 일도양단하는 쉬운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 수 천 수만 가지 색깔의 펼침이 무지개인데 편의상 빨주노초파남보로 구분한다. 그 편의를 인정하지만, 무지개가 사실 그렇지 않음은 알고 있다. 하물며 인간사이랴! 해결의 어려움을 알고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 함을 안다.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未覺池塘春草夢)
섬돌 앞 오동잎은 이미 낙엽 되어 떨어지는구나(階前梧葉已秋聲)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산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뉘앙스를 발견하는 사람을 최근에 발견하고 무릎을 탁 쳤다. ‘머니 트레이너’ 김경필이다. 그의 ‘자동차를 통한 허세지수’ 강의를 유튜브 <보다 BODA>에서 들었다.

허세지수 = 차량가격/월급×6개월. 1.0~1.5가 정상이고 1.5~2.0은 과한허세, 2.0 이상은 고도허세이다. 지난해에 팔린 자동차 평균가격이 ‘4381만원’이라고 한다. 실질월수입이 600만원은 돼야 한다. 뭔가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자동차에서 감지할 수 있는 뉘앙스보다, 미국과 트럼프의 앞날이나 윤 정권과 김건희, 그리고 검찰과 한동훈의 내일을 암시하는 ‘뉘앙스’가 좀 더 선명하지 않은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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