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서 ‘피크 차이나’(Peak China)란 말은 심심찮게 보아왔다. 피크 차이나란 중국 경제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2023년 들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종식되고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했지만, 중국경제가 여전히 침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성장 동력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피크 차이나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잠재 성장률 2.0%에도 못 미치는 1.4%로, 2% 성장한 일본에 25년 만에 역전 당했다. 2021년 4.3%, 2022년 2.6%에 이 역대 최저치이다. 가계부채는 1,875조 원으로 역대(2023년 9월 기준) 최대이다. 이자 부담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내수가 쪼그라들어 경제성장에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다. ‘피크 코리아’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증좌다.
미래에 대한 희망의 지표가 출산율이고, 현재 삶의 여건의 지표는 노인 빈곤율이다. 통계청은 합계출산율이 올해 0.72명을 기록한 뒤 2025년에는 0.65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최저치이다. 노인빈곤율(2020년)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14.2%보다 세 배나 높은 세계 최고치이다. 현재의 삶도 고달프고, 미래에의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방증이다.
이미 ‘피크 코리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지수 등 모든 사회지표가 퇴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퇴행을 해도, 출산율 저하가 계속되어도 국가가 소멸하지는 않는다. ‘국가소멸’은 호들갑이다. 현 추세대로라도 50년 뒤인 2072년에도 인구가 3622만이나 된다.
60%의 노인은 빈곤하지 않듯, 경제가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어도 잘 사는 사람은 잘 산다. 지난해 소득 상위 10% 가구의 연평균 소득을 하위 10% 가구 소득으로 나눈 ‘소득 10분위 배율’은 21.2배였다. 상위 10% 가구가 하위 10% 가구보다 21배의 소득을 올린다는 의미이다.
냉정하게 털어놓자. 상위 소득자들이 하위 소득자의 임금 상승에 긍정적일까? 저소득층의 노동을 싼 값에 이용할 수 있고,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이대로’를 더 원하지는 않을까?
일반적으로 상위소득자일수록 공공선에 관심이 덜하다. ‘더불어 잘 사는 삶’은 그들에게 우월의식을 박탈해 버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형태일 수도 있다. 인간의 이기적 본능은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인지한다.
그러나 좋으나 싫으나 공동체에는 약자의 희생 위에 강자가 군림할 수 있다. 하여 약자가 없으면 강자도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영향력 등의 ‘힘’은 눈덩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구르면 구를수록 커지는 눈덩이와 같이, 힘은 그 자체로서 무한 증식한다.
공동체를 최소한 유지하려거나 발전시키려면, 혹은 공동체의 행복 총량을 높이려면,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도와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사회제도나 법으로서 구체화한다. 이 구체화 작업에 지배층들도 기꺼이 협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이나 반란으로 지배체제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 등으로 힘이 한쪽으로 쏠리고, 그 쏠린 힘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공동체의 존재 근거를 망각하고, 억강부약과는 반대로 강자를 부추기고 약자를 억누른다. 이에 불평등은 고착화하고, 더욱 악화하고 드디어 사회 공동체는 위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위기는 중대한 고비 혹은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그 순간’의 앞뒤 조건이, 많은 다른 순간의 앞뒤 조건과 확연히 달라지는 전환점이란 뜻이다. 따라서 기존의 대처법으로서 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대처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
‘피크 코리아’에 이르렀는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위기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대처법으로서는 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새로운 대처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대처법의 호기가 4월 총선이다.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갈아엎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크 코리아’라는 현 위기가 왜 정치문제이고, 왜 정치판을 갈아엎어야 하는가? 다음 글에서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1937~)의 『대변동:위기,선택,변화』(2021)를 참조하여 현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4월 총선이 ‘비정상화된 대한민국의 정상화’의 유일한 기회임을 논증하고 한다.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국가의 위기라는 건, 국가가 지금껏 움직였던 기존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상황을 말한다. 위기, 곧 국가가 변화해야만 하는 순간, 변화를 위해선 먼저 문제가 생긴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망칠 수 있는 건 그 나라 국민들뿐이다. 만약 대통령이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거기서부터 잘못된 신호가 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경주를 하는 중이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문제를 악화시키는 사람들 간의 경주이다. 경주의 결과가 좋은 것이길 바란다. 관대하게 남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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