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기억됐으면 한다. 과학으로 우리나라를 도약시킨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다.”
올해 R&D 예산이 대폭 삭감(4.6조)되어 연구 현장에서는 국가적 재앙이라는 말이 나온다. 연구비 부족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실을 떠나고 있다. 한데도 ‘R&D 예산을 조금 줄였다, 많이는 안 줄였다’며 ‘과학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 NASA가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에 여유 공간이 있어, 큐브 위성을 무료로 탑재해 주겠다고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그 위성을 제작할 예산 70억 원이 없어 거절했다. 덩굴째 굴러온 복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단돈 70억 원이 없어 걷어찬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가 빈국이어서일까?
지난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예산은 역대 최고인 578억 원이었다. 엑스포 유치전에도 5000억 원 이상을 썼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1차 투표에서 165개 회원국으로부터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119표를 얻은 리야드에 큰 표 차로 패했다. 종류를 막론하고 국제행사 유치전에서 이런 참패를 당한 적은 없다.
과학계에 있는 연구자들이 정치는 ‘남의 일’이고, 연구만 하면 되는 일일까? 일반 시민들은 과학계의 일은 내 일이 아니니, 외면하면 그만일까?
예나 지금이나 일반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에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네가 뭔데 정치 이야기를 해!”, “네 일이나 잘해!”
교사들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고,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물건만 잘 만들면 되고, 농민은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 그러면 정치는 자연스럽게 특정 사람이나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다.
정치는 나라의 운영 원리와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특정 집단이 자기들의 이익대로 ‘국가의 운영 원리와 방향’을 정해 버리면, 그 피해는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민주공화국 시대 이전에는 정치는 특정 집단(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철학적 뒷받침도 있었다. 아리스트텔레스는, “자연은 보존 목적에 따라 어떤 존재들은 명령을 하도록, 또 어떤 존재들은 복종을 하도록 창조했다.”고 말했다. 칼리굴라(로마 제국의 제3대 황제)는, “우월한 자질을 가진 목동이 가축 떼를 이끄는 것처럼, 인간들의 목자들도 국민보다 우월한 자질을 갖고 있다. 왕은 신이고 국민은 가축이다”고 강변했다.
공자는 정치의 덕목을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말한다. 곧,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누구나 자신의 맡은 바 역할과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면 조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한데, ‘-답지’ 못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
기껏 『대학』에 ‘혈구지도’(絜矩之道)란 말이 나온다. 내 마음을 잣대 삼아 남의 마음을 재고, 내 처지를 생각해서 남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곧, 윗사람은 자기가 싫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하지 말고, 아랫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것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혈구지도를 행하지 않으면? 이 또한 아무 방법이 없다.
맹자는 좀 세게 나갔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주장한다. 몹시 부도덕한 왕조나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국왕을 천명(天命)에 의거하여 축출하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다는 개념이다. 혁명을 통해 ‘왕의 성씨를 바꾼다’(易姓)는 의미이다. 곧, 지배층 간의 권력 이동일 뿐이다.
조선시대를 관통한 정치의 덕목은 민본주의(民本主義)였다. 국가를 구성하는 다수의 민(民)을 국가의 근본으로 중시한다는 정치사상이다. 이 또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 정치의 주체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정치는 지배층의 전유물이었고, 피지배층은 지배층은 시혜와 자비만 바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는 헌법 1조를 통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를 통해서 국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한다. ‘공화’를 통해서 주권의 행사가 전제주의나 독재적 방식이 아닌 헌법적 권력분립의 구조 원리에 의해 조직된 국가체계를 통해 이뤄져야 함을 선언한 것이다.
비로소 정치의 주체가 국민이 된 것이다. 국가의 주인이 된 것이고, 국가의 일은 정치가 한다. 그러므로 주인인 국민이 정치를 해야 한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입법자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 관한 글을 쓴다. (…) 내 의견이 공적인 일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하다고 해도, 나는 한 자유국가의 시민이자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공무〕에 관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므로, 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무 역시 당연히 갖게 된다.” -장 자크 루소/『사회계약론』-
주인인 국민이 나랏일인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 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위의 책-
정치는 한 국가의 운명과 주권자 국민의 삶의 방향을 좌우한다. 예를 들면, 정치는 납세자, 곧 우리에게서 얼마의 세금을 걷을지를 결정한다. 재벌 등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를 인상할지 인하할지를 정한다.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1,000조가 넘는데도 현 정부는 법인세 감세를 하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도 결정한다. 금융투자로부터 얻는 수익(이자·배당·매매차익 등)에 어느 정도 과세할지도 정한다.
또한 정치는 세금의 사용처도 정한다. R&D 예산을 삭감하고, 대통령 해외 순방비를 증액한 것도 정치적 결정이다. 잊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자원외교도 정치적 결정이다. 그 돈으로 ‘무상급식’, ‘무상보육’, ‘전국민고용보험’에 쓸 수도 있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을 다 합한 액수를 우리나라 인구로 나눠보면, 1인당 200만 원, 가구당(5인 기준) 약 1000만 원을 부담한 셈이었다.
의과대학 정원을 몇 명이나 증원할지도 정치가 결정한다. 2022년에 떨어지고(272명), 부딪히고(71명), 끼여서(61명) 노동자가 숨졌다. 그런데 정부는 중대재해법을 미루자고 한다. 이 역시 정치문제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경찰, 해양경찰, 소방, 교정 직렬에서 신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병역을 수행할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의 병역 의무 문제, 이 또한 정치 문제이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정치가 개입해 있다. 정치의 주체는 국민이다. 한데 주인이면서 주인의 의무를 방기하면, 정말 국가가 결딴나고, 드디어 내 삶이 망가진다 해도, 그 누구 탓을 하리오.
사업을 하지 않으니, 과학계에 있지 않으니, 건설노동자가 아니니, 여성이 아니니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세계적인 모범 답안이 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
<작가/본지 편집위원> <ouasaint@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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