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1. 갑철과 술녀(5)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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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0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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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또 다시 도망가는 갑철
갑철이가 아름다운 왕비와 바람이 나서 불륜 간통 사통 관통하게 되는 이야기의 시작이네. 나는 남자를 유혹할 정도로 이쁘진 않지만 바람나는 이야기는 왠지 끌려. 이젠 좀 자세히 말해 봐.
나중에 아름다운 왕비의 얼굴 빛이 어둡고 그늘진 이유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 스파르타에 큰 지진이 있은 후에 스파르타의 왕은 그것이 신의 노여움 때문이라 생각했었대. 그래서 지진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왕이 먼저 그 어떤 육체적 욕망을 자제했다고 들었어. 그래서 왕비의 거처에 1년 넘게 가지도 않았다는군. 그렇다면 왕비는 어떻게 되겠어.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거지. 그렇다고 엄격한 영이 시퍼렇게 선 군사국가인 스파르타라는 나라에서 왕비는 어땠겠어? 왕비도 자신의 남편인 왕처럼 육체적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고 굳게 마음 먹었을까? 글쎄! 설령 육체적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하다라도 왕궁을 드나드는 남자와 사통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도저히 바람피는 게 용납되는 문화가 아니었겠지. 그러나 젊고 아름다운 왕비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품이 그리웠겠지. 그래도 그냥 그렇게 그러려니 꾹꾹 참고 살아야 했겠지. 아마도 왕비가 성적 욕망이 선천적으로 강한 여인이었다면 더욱 그렀겠지. 그런 와중에 궁중에서 늘 보던 시시한 남자가 아니라 저 멀리 아테네라는 나라에서 온 외간 남자를 보았는데 그 남자가 등빨좋고 얼굴까지 수려하다면? 남자가 그리웠던 왕비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 그 남자가 바로 나였던 거지.
결국 잘 생긴 남자인 갑철이와 남자가 그리운 왕비의 도킹이 금방 이루어질 거 같네. 안 봐도 비데오야.
맞아. 네 예감대로야. 앞으로 19금급보다 센 29금급 얘기를 해야 하는데 좀 자제해야 하겠어. 수위조절을 해애 해. 아무튼 나는 그녀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게 되었어. 마침 왕이 전장에 출정하느라 왕이 없는 왕궁에서 이루어진 야동이야. 당시는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으로 내가 망명한 스파르트와 나의 조국인 아테네가 싸우는 중이었거든. 여하간 내가 먼저 왕비를 유혹했냐? 아니면 왕비가 날 먼저 유혹했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서로 유혹했으니까… 그냥 자연스레 우리는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 강하게 끌리게 되고 급기야 우리끼리 조촐하면서도 거나한 관통식까지 치르게 된 거야.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는 말 알지? 그런 제목의 에로틱한 영화도 있던데. 한 번 터진 봇물은 막을 수 없듯이 한 번 맺은 남녀의 결합은 끊을 수 없었어. 그렇게 우리는 매우 자주 은밀한 사랑을 징하게 나누었어. 왕이 전장에서 돌아와서도 그랬어. 늘 그랬던 거처럼 왕은 왕비를 찾지 않았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왕비가 덜컥 임신을 한 거야. 아이의 아버지는 나 말고는 없지. 왕비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 그래도 왕은 왕비를 아예 찾지 않으니까 임신 사실을 알 수 없었어. 결국 애를 낳게 되었어. 날 닮아 아주 잘 생긴 사내아이였지. 난 나의 아들인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스파르타의 왕이 되는 꽤 야무진 꿈도 꾸었어. 그런데 아무리 왕비에게 관심 없는 왕이라 해도 왕비가 애를 낳았는데 그걸 숨길 수가 있었겠어. 왕은 1년 넘게 왕비 근처에도 오지 않았는데 왕이 임신했으니 분명히 간통한 왕비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겠어. 결국 왕은 엄청난 사실을 알아 버리고 말았어. 길길이 날 뛰었지. 나는 죽을 죄를 진 거지. 나는 더 이상 거기서 살 수 없었어. 다행이도 눈치와 행동이 빠른 나는 죽임을 피할 수 있었어. 그리고 또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지. 내 인생도 참 징해.
너는 그렇게 도망갔다고 하지만 왕비와 아들은 어떻게 되었어.
나는 도망가기에 바빠서 모자(母子)를 챙길 틈이 없었어. 다행이도 왕은 남의 애를 낳은 왕비와 자기 애도 아닌 아이를 죽이지는 않았대. 예전에 스파르타의 헬레네 왕비도 간통했지만 천수를 누렸다는군. 나와 간통한 왕비도 제 명을 다 누리고 살았을 거야. 왕비가 낳은 내 아들은 꼭 보고 싶었지만 내 팔자가 그러지는 못했지. 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나였는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로 삼았다는군. 나중에 왕위를 이을 수도 있었는데 왕이 갑자기 죽고나서 왕의 진짜 아들이 아닌 걸 안 신하들이 반대해서 왕위를 잇지는 못했다는군. 아들 이름이 레오티키다스라는데 내가 도망가느라 애기 때보고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여기서라도 부자 상봉을 하면 좋겠는데… 알고 보면 내 삶은 박복(薄福)한 인생이었어. 사람들은 날 보고 풍운아라고 하는데 난 참 별 일 다 겪고 살았지. 그런데 내 인생은 이게 끝이 아니야. 더 험한 일이 내 앞에 놓여 있었지. 내가 또 도망간 그 곳에서… 근데 그 얘긴 나중에 해야겠다. 밖에 소리가 나는 게 어수선하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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