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0. 계성과 유경⑤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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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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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10-5. 인생말로가 비참했던 유경
잡지 못했을 거 같네. 네 말하는 거로 봐서… 그래도 용케 잡았다는 건가? 난 잡았다는 거에 걸어 볼까?
땡! 틀렸어. 결론부터 말하지. 잡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어. 알고보니 그는 기적을 행한 인물이었더구만. 그냥 일개 영적 지도자가 아니었어. 엄청난 사람이었지. 그가 행했다는 몇몇 기적을 말해줄게. ①그는 우선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에 불을 붙인 기적은 아까 말한 대로지. 그것 말고도 또 많아. ②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는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여 가뭄을 없애고 해갈하는 기적을 행했다지. ③그가 어느 시냇가에 머물 때에 까마귀들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와서 먹은 기적을 행했다지. ④어느 과부네 집에 먹을 게 통에 들은 조금의 밀가루와 병에 담긴 약간의 기름이 전부였는데 먹어도 먹어도 밀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을 행했다지. ⑤그 집에 살던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그는 하나님께 통렬하게 기도를 드려 죽은 아들의 몸에 혼이 들어 가게 하여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행했다지. ⑥여섯 번째 기적이 제일 중요한데… 그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오르는 승천의 기적을 행했다지. 물론 이런 기적은 저들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겠지만 그 지도자를 통해 실현되었으니 그는 기적의 선지자가 된 거지. 이런 기적을 행한 사람이니 내가 어떻게 그를 잡을 수 있겠어. 내가 아무리 왕을 내 맘대로 가지고 놀며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비라 하더라도 나는 그를 이길 수 없었어. 그는 인간이지만 하늘로 올라가 신처럼 된 신적 존재였어. 더군다나 그는 승천하면서 자기랑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후계자로 저들의 땅에 남겨 두었어. 이후에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 지금 말하는 거 보니까 불행예감이 든다. 행복예감이면 좋겠지만…
아깐 땡이더구만 이번엔 알아 맞추네. 맞추었다고 기분좋게 ‘딩동댕’하고 싶은 심정이 아니야. 나의 말년을 생각하려니 기분나빠져. 아니 처참해져. 왕인 남편은 노년에 전쟁에 나갔다가 활을 맞고 죽었지. 그의 나이 82세 때였으니 오래 살았던 거지. 공처가였던 그의 죽음은 내 불행의 전조였어. 남편이 죽고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나는 왕비가 아니라 왕대비가 되었지. 그런데 왕이 된 큰 아들은 그만 난간에서 떨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어. 고작 18살 때였어. 이후 나의 작은 아들이 또 왕이 되었지. 그런데 쿠테타가 일어났어. 정말로 나로서는 끔찍한 쿠테타였지. 반란군에 의해 아들인 왕은 살해되었어. 고작 29살 때였어. 이 때 남편이 나 아닌 다른 후궁 여인들을 통해서 얻은 아들들 70여명도 살해되었어. 그 때 나도 죽었어. 내 나이 59세 때였어. 나는 죽은 게 아니라 죽임을 당한 거지. 쿠테타을 일으킨 놈이 나를 왕궁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가더군. 악명 높았던 나를 잡았다는 승리에 도취해 저들은 흥분했지. 반란군의 수장은 나를 모시던 내시한테 이렇게 명령하더군. 그대가 모시던 저 악독한 년을 창밖으로 집어 던지라고… 그렇게 나는 높은 곳 창문에서 아래로 집어 던져었어. 환갑을 맞기 직전에 죽었으니 요절(夭折)도 아니고 비명횡사(非命橫死)한 거지. 명대로 살지 못하고 사람들한테 갑자기 죽임을 당한 거니까… 내 시체는 개들이 뜯어 먹었는지 해골과 살이 적은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하였다고 하더군. 공주로 → 왕비로 → 왕대비로 떵떵거리며 살다가 비참한 말로(末路)였지. 인생은 끝이 좋아야 하는데 나는 첨은 좋았지만 끝이 안좋았어. 그리고 나는 죽은 후에 더 안좋아졌어. 인류역사 최고의 악녀라는 타이틀이 나를 늘 따라다녀. 3000년 전에 살던 사람이 지금까지 그렇게 낙인 찍혀지고 있어. 나를 나쁘게 평가하고 있는 글들을 하나로 모아 보면 그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수십만 페이지는 될 거야. 날 좋게 보는 거는 거의 하나도 없어. 사물도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사람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을 텐데 어찌 나한테는 온통 비난의 글들만 있을까“ 내 입장에서 나는 억울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으니 억울한 점이 있겠다. 아니 많겠다. 뭐가 제일 억울하지? 유경아!
나는 나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온 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거잖아. 그런데 내 남편과 나의 피를 그대로 이은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내 딸이야. 딸은 나랑 인류사 최고의 악녀 1위와 2위를 서로 다투고 있지. 딸년도 억울한 게 많을 거야. 근데 바깥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억울함을 막 토로하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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