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8. 신주와 미호①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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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11:30 | 최종 수정 2024.02.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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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8-1. 신분상승을 하는 미호
넌 누구야. 똘똘하게 생겼구만. 점잖은 학자처럼 보이는구만. 그런데 왜 풀이 죽어 있어. 불쌍하게 보인다. 이 누님한테 털어 놔바. 뭔 잘못을 했었는지.
말 건네주어 고마워. 근데 여기선 누님이고 형님이고 아우고 동생이고 없는 곳 아닌감? 먼저 들어온 순서에 관계없이 다 동등하고 평등한 곳 아닌가?
거 참 깐깐하게 구네. 농담도 못하나. 알았어. 나 누님 안 할게. 대신 내가 먼저 내 이야기할게. 학자 양반.
고마워. 근데 너한테선 요부의 냄새가 난다. 살아생전에 엄청났을 거 같은데.
니 사람 볼 줄 아네. 촉이 빠른데. 이 세상에 나만큼 밑바닥에서 신분상승하며 출세한 여인은 없어. 신데렐라도 내 앞에선 깨걩할 껄.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거라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난 하녀였어. 너 하녀라는 영화 알지. 어느 여자가 어느 집안에 하녀로 들어가 주인집 남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그 집 어린 아들을 죽이고 주인집 남자도 죽이고 자신도 죽어간다는 비극적 스토리잖아. 나는 근데 그런 경우와 달라. 난 내 인생의 성공 스토리를 삼삼하게 썼다고 할 수 있지.
과연! 너한테선 아주 편안한 삶을 살았던 과거가 보이는 듯해. 살이 쪄서 그런가?
니 나 살찐 거에 보탠 거 있어. 첨부터 기분 나쁘게 살 얘기야. 나중에 살이 쪘지 그 전에 안 그랬어. 그리고 처음부터 편하게 살진 못했지. 그리고 슬픈 과거도 있어. 어떻게 사람이 편하게만 살 수 있나? 다 흥망성쇠의 부침이 있고 오르락내리락 데꼬보꼬(凹凸)가 있는 거 아니겠어. 다만 전반적으로 편했다는 거겠지. 울아버지는 평범한 소작농 농민이었어. 그런데 엄마 아버지가 모두 역병으로 돌아가셔서 나는 어느 가정의 하녀로 들어갔어. 6살 아주 어린 소녀 때였으니 처음부터 하녀로 일한 건 아니었지만 신분이 하녀였어. 주인집 여자가 자기 아들이 무쟈게 이쁜 날 좋아할까봐 날 집에서 쫒아내 어떤 남자랑 억지로 결혼시키기도 했지. 그런데 그 결혼이 오래 못 갔어.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거든.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지면서 나는 이긴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어. 하녀에서 포로가 된 거지. 그냥 포로가 아니었어. 눈부신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요정이었어. 그런 나의 최절정 미모는 어디서든 돋보였지. 이때 내가 뭘 해먹고 살았을까? 나는 그런 걱정할 필요가 일도 없었어. 남자들이 나 좋다며 나한테 돈 가지고 오며 대시를 해대는데… 난 전쟁 포로에서 인기있는 창부가 된 거지. 그때부터 내 팔자가 피기 시작했지. 남자들은 교육도 못 받고 글자도 모르는 나를 고귀한 물건처럼 자기보다 높은 사람한테 상납하기도 했어. 난 그렇게 여러 남자들을 거치는 성적 노리개로 살았던 거지. 나는 그런 나의 삶이 싫지 않았어. 오히려 재미있고 즐거웠어. 남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나의 존재감에 대해 의미도 느끼고 나름 보람도 느꼈어. 그렇게 높은 쪽으로 상납될 때마다 나는 점점 높아지는 그 사람들의 정부가 되면서 내 신분도 덩달아 상승하게 되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의문을 가질 순 있지만 나 살던 때는 다 그랬어. 그냥 그렇게 알아. 내가 결코 예뻐서 그렇게 된 것만은 아니야. 나는 품성이 원래 온화했어. 모성애라는 게 있었지. 이쁜 여자는 많아도 다른 남성들에게 나만큼 모성애를 가진 여자는 흔치 않아. 즉, 나는 모성애 재능이 있었던 거자. 그러니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자들은 나한테서 위안을 받았지. 그렇게 나는 고급 창부가 되었어. 결국 나는 최고의 귀족이던 공작의 정부가 되었어. 난 정실부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튼 여하간 공작부인이 된 셈이지. 여잔 이쁘고 봐야 한다는데 정말 그래. 나는 그 적나라한 생생한 인적 증거야. 이쁘니까 저절로 신분이 최고로 올라갔잖아. 특히 점잖은 공작은 나를 많이 위해 주었어. 행복했지. 난 그때가 나의 최고 위치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 정상은 또 다른 데 있었어. 내가 전혀 상상치도 못하던 엄청난 곳에…
잘 났네 정말! 미호 네가 그렇게 이뻤었구나. 하긴 살이 찌긴 해도 이쁜 건 여전하네. 더 농염해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또다른 정상은 어디었어? 호기심 빵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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