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7. 경수와 오미①

박기철 승인 2024.02.14 10:31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7-1. 잘 나갔던 훌륭한 경수

네 이름이 경수라고 했지. 여기서 너한테 말 건네는 최초의 인간이 나 오미일 거 같은데… 넌 왜 그렇게 죽상으로 있어. 여기서 아주 제일 불쌍해 보이네. 인물은 훤하니 준수한데… 나름 미남인데… 살아생전에 다 사정이 있겠지만 넌 매우 무척 안 좋은 사정이 있었나 보다.

나같이 후진 놈한테 말 건네주어 고맙다. 난 여기서 뉘우치고 반성하고 회개하며 참회하고 있어. 난 정말 그래야 마땅한 놈이야. 여기와서 보니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정말 다시 잘 할 수 있겠는데… 다 쓸데없는 망상이지.

그런 거 생각하지마. 더 위축되지. 과거 생각 말고 오늘만 생각해. 내일도 생각할 필요없어. 여기선 그저 푹 퍼져 있는 게 최고야. 그래도 너무 조용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해봐. 들어보고 내가 조언할 게 있으면 할게.

그럴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나라는 얼굴 허연 놈들이 지배하고 있었어. 그래도 나는 명문가 집안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별 어려움이 없었지. 울 아버지는 허연 놈들 밑에서 일한 고위 관료였어. 그래도 아버지는 당신께서만 잘 먹고 잘 사는 부귀영화를 쫓기보다 우리나라를 개혁하고자 힘썼던 애국자였어. 그래서 내가 7살 때 허연 놈들한테 항의하며 고위관료직을 사임했어. 그래서 울아버지는 친백파(親白派)라기보다 애국자로 불리기도 해. 나는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허연 놈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그들한테 저항하기도 했어. 허연 놈들 밑에서 관료로 일하면서 반백파 성향의 농민봉기를 진압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나도 아버지처럼 사임하며 친백파에서 반백파로 전향했어.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했던 일이었어. 그런데 2차대전 중에 얼굴 허연 프랑스 놈들이 자기네 본국 바로 옆 나라 얼굴 허연 독일 놈들한테 점령당하자 물러났지. 그래서 우리나라가 독립할까 싶었는데 우리처럼 얼굴 노란 일본애들이 들어와 우리나라를 지배했지. 그러다 그 노란 놈들도 전쟁에서 대패해 우리나라에서 물러났지. 그러면 우리나라가 독립되어야 하는데 다시 얼굴 허연 프랑스 놈들이 다시 들어왔어. 자기네가 2차대전 이전에 원래 지배했던 곳이니 다시 지배하겠다는 추악한 욕심이었어. 정말 질긴 놈들이었어. 징한 놈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몰아냈어.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징해. 우린 원래 싸움을 잘하는 민족이었어. 옛날에 당시 세계최강이던 몽골애들이 기세등등하게 쳐들어 왔는데 그걸 막은 자랑스러운 조상들이었어. 우리는 무지막지한 몽골놈들을 막은 유일한 나라일 걸. 그런 투철한 전투정신을 이어받아 얼굴 허연 놈들과 싸워 이겨 독립한 거지. 그런데 독립투쟁 승리의 주역은 내가 살던 남쪽이 아니라 북쪽이었어. 원래 우리나라는 남쪽과 북쪽으로 양분되는데 북쪽 민족과 남쪽 민족은 피가 달랐어. 북쪽 인종이 춘추시대 월나라 사람들이 오나라한테 망해서 아래로 내려왔으니 중국인 피가 많이 섞였다면 남쪽 인종은 원래 그 땅에 살던 남방 계열의 원주민들이 많았지. 북쪽 사람들은 위쪽 중국 사람들한테 많이 당하며 싸웠기에 남쪽 사람들보다 드셌지. 우리나라 역사는 북쪽 사람들이 남쪽 사람들을 잠식하며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고 볼 수 있어. 그러면서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의 피가 서서히 섞여 이제는 인종 구분이 안 가게 되었지. 다만 기질적으로 북쪽 애들이 남쪽 애들보다 훨씬 모질고 드셌지. 그러니 그 북쪽 애들이 중심이 되어 얼굴 허연 놈들을 몰아낼 수 있었지. 그렇게 북쪽 애들의 치열한 투쟁 덕분에 허연 놈들을 몰아 내서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되지 못했지. 그 놈의 이념 때문에… 북쪽을 다스리는 지배권력층은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었어. 당시 전세계적으로 그게 유행이었으니까…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어. 공산주의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보면서 종교를 인정하지 안 잖아.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처지였지. 국제사회에서도 그걸 빌미로 북쪽 나라와 남쪽 나라로 나누었어. 분단국가가 된 거지. 남쪽에 살던 나는 공산주의를 혐오했어. 내 형이 북쪽의 공산주의자들한테 처형당해 죽은 아픔이 컸지. 그런데도 북쪽 놈들은 나한테 친한 척 접근해서 나를 포섭하려고 했지. 친백파에서 반백파로 전향하며 미력하나마 투쟁한 전력이 있던 내가 그래도 남쪽에선 애국자로 알려져서 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 북쪽 걔들이 주특기로 잘 쓰는 통일전선전술같은 걸로 나를 이용해 남쪽을 통일하려고 했던 거지. 하지만 난 당당히 거절했어.

훌륭했구만. 그런데 뭔가 앞으로 크게 잘못될 것 같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안 좋은 반전이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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