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6. 기백과 사라⑤

박기철 승인 2024.02.07 07: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6-5. 동원되는 잔인한 악행

대단한 기백이네. 도대채 너 몇살 때 그랬다는 거야.

난 30세부터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은 왕이었어. 30대와 40대는 식민지를 얻기 위한 정보를 얻고 외교를 펼치던 시기였지. 그 결실로 50대 때부터 나는 막대한 개인재산을 지닌 왕이 되기 시작한 거지. 나는 내 돈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멋진 건축물들을 지어댔어. 그래서 건축왕이란 영광스런 별명을 얻기도 했지. 60대 때까지 내 인생의 전성기는 유지되었어. 여색도 밝혔어. 40살이나 젊은 예쁜 애인한테도 엄청난 선물을 주기도 했지.

국왕이니 권력도 있고 재산도 많았으니 어지간히 여색도 밝히며 살았구만. 보아하니 성욕도 왕성했겠어.

부정하진 않겠어. 남자로서 누릴 건 다 누리고 살았지. 그런데 나는 천연고무를 얻는 나의 땅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그 땅을 어떻게 관리했을 거같아? 일단 드넓은 열대우림을 천연고무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만들었지. 그 곳이 국가가 관할하는 식민지라면 총독을 파견해서 관리하겠지. 하지만 그 땅은 국가가 아니라 국왕 개인인 내가 소유하는 사유지라 내가 감독관을 선발해 파견했지. 그리고 감독관들이 열대우림의 그 넓은 고무 농장 땅을 다 감독하며 관리하기 힘드니까 그 곳 흑인들을 고용했지. 나중에는 주변국 출신 흑인용병들을 고용했어. 검은 용병으로 불리는 그 흑인들 숫자는 늘어나게 되었지. 여기서 문제 하나 낼께? 흑인 용병의 인원은 무엇에 반비례해 늘어났을까?

글쎄? 어려운 문제네. 반비례라니까… 뭐가 줄어듬에 따라 검은용병이 늘어난 거잖아. 검은용병이 늘어났다는 건 사정이 안좋아 졌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뭐가 줄어들었을까? 천연고무 수확량인가?

사라! 딩동댕~ 정답입니다. 똑똑하네. 폭증하는 천연고무의 수요에 맞추려다 보니 천연고무를 마구 채취했지. 그러다 보니 천연고무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어. 이는 내가 얻는 수입이 줄어드는 거였지. 나는 천연고무 농장에 가본 적이 없는데 내가 거기 현지 사정을 알기나 했겠어. 그냥 나한텐 수입이 줄어드는 게 문제지. 그래서 내가 얻는 수입을 다시 늘리기 위해 나는 내가 파견한 감독관들에게 엄중하게 지시했지.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해서 천연고무 생산량을 늘리라고… 국왕인 내가 지시하는데 들어야지 어떻게 했겠어. 결국 현지에서는 마른 수건을 짜는 방식이 동원되었지. 자연스럽게 될 수 없는 억지스러운 방법이었지.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랬더니 정말로 온갖 수단방법들이 동원되었어. 감독관들은 천연고무를 채취하는 원주민들을 그야말로 쥐어 짰어. 하도 천연고무를 많이 채취해 천연고무를 많이 생산할 수 없게 되었으니 원주민들을 더욱 가혹하게 다루었어. 처음엔 엄포를 놓으며 겁도 주며 심한 말로 했겠지. 언제까지 천연고무를 수확해야 할 1인당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마구 때리며 팼지. 그런데도 수확량이 늘지 않았나봐. 왜냐하면 할당량을 채울 만큼 고무를 수확할 수 없었으니까… 처음엔 엄포를 놓다가 야단치다가 다음엔 채찍질을 하다가 그러고도 안 되니 극단적인 방법을 쓰게 되었지. 도끼로 손목을 잘랐어. 그래도 안되면 팔뚝을 잘랐어. 그래도 안 되면 결국 목을 잘라 죽여 버렸지. 고무나무를 수확할 원주민의 아이나 아내를 감금한 후 수확량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나 아내를 그렇게 하기도 했지. 그렇게 잘린 5살 딸의 팔을 망연자실한 휑한 표정으로 쳐다 보는 흑인남자 사진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사진 기록일 거야. 아무튼 그 일을 직접 수행한 건 내가 파견한 감독관들이 부리는 흑인용병들이었지. 그 무시무시한 흑인용병들이 무서워 원주민들은 죽기살기로 고무를 채취했지. 서로 채취한 고무를 뺏으려고 원주민들끼리 죽기살기로 싸우기도 했지. 그러니 우리한테 반항하려고 하지 않았겠어? 그래서 흑인용병을 더 많이 쓰게 된 거야. 결국 천연고무 수확량의 감소가 흑인용병 인원수를 늘리게 했던 거지.

그런 원인-결과적 논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말이 많아. 나처럼 내가 직접 죽인 건 아니고 네가 부리는 감독관과 흑인용병들이 죽인 거니까 너는 죄가 없다고 변명하려는 거야? 다 돈에 눈먼 네가 지시하고 용인해서 벌인 일이잖아. 넌 나보다 더 악독한 놈이네. 나보다 나쁜 놈! 그렇게 600만 명이나 죽인 거야? 아! 잔인한 나도 욕 나오네. 근데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 어수선해?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