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5. 무식과 진숙⑤

박기철 승인 2024.01.26 07: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5-5. 독립영웅 성군인 진숙

내가 보기에도 난 대단해. 그 놈들이 얼마나 드세고 거셋는데 물리치다니! 당시 전세계에 대항해 시대라는 게 열리며 허연 놈들이 설치기 시작했는데 전세계에서 그 놈들을 물리친 사례는 내가 오로지 유일해. 그런데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단지 게릴라전을 잘 했기 때문만은 아니야. 나는 허연 놈들과 싸울 수 있도록 다른 부족들과의 연합을 잘 이끌었어. 여자 말을 잘 안 듣는 부족들이 있어서 곤란하기도 했지만 나는 다 이겨냈어. 나는 남장을 하기도 했지. 특히 전투를 지휘할 때는 완전히 남자처럼 행동했어. 네가 보기에도 내가 덩치가 건장한 남자 같잖아. 힘도 좋았어. 그야말로 여장부였지. 웬만한 사내들과 죽기살기로 싸우면 이길 자신이 있어. 난 여자지만 근육질에 완력이 좋아. 그러니까 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리더쉽은 여자의 부드러운 리더쉽이 아니었어. 여자지만 남성다운 강력한 리더쉽이었지. 그러면서도 나는 머리가 잘 돌아갔어. 외교적 수완과 협상에 능했어. 허연 놈들과 협상을 하는데 절대 꿀리지 않고 당당했어. 나의 기세에 눌려 그 놈들은 나한테 꼼짝도 못했지. 나는 카리스마 강한 여자였어. 카리스마가 추진력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흡입력이야. 신하와 부하들은 여자인 나한테 확 빨려 들어 왔어. 강력하게 명령하고 지시하지 않아도 내 말을 아주 잘 듣고 그냥 알아서 기었지. 여왕인 내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또 나는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는 지도자였지. 허연 놈들이 믿는 종교를 나도 받아 들였어. 그 만큼 나는 기존의 이념이나 신념에 빠지지 않고 융통성도 있었어.

처음 볼 때 보통 여자가 아닐 줄은 알았지만 듣고 보니 정말로 진숙이는 여왕 중의 여왕이네. 클레오파트라 7세, 선덕, 측천, 엘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이사벨 2세, 예카테리나 2세 등등등 전세계에 수많은 여왕이니 여제들이 많았는데 너는 그 중에서 1등 하겠다. 그런데 왜 유명하지 않지. 널 아는 세상사람들이 거의 없던데.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여기서 여왕했던 애들 다 모아 놓으면 내가 대장할 걸. 나는 용기 지략 완력 근력 모든 걸 갖춘 여왕이었어. 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왕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를 외세를 몰아낸 성군이자 독립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어. 한마디로 국모 대접을 받고 있어. 지금 세상사람들이 사는 우리나라 수도에 나를 기리는 거리가 있고 동상이 있을 정도야. 우리나라에 여러 동전이 있는데 사람 얼굴이 들어간 동전은 내 얼굴이 들어간 동전이 유일해. 이 정도면 내가 얼마나 나의 후예들한테 대접받는지 실감나지. 무식이 너는 지금 너네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지? 네 이름 거리있어? 네 동상 있어. 니 얼굴 동전 있어?

앗! 그런 질문을 나한테 다 하다니? 창피하다. 난 할 말이 없어. 그냥 깨걩할 게. 더 이상 묻지마. 괴로워!

여기선 다 허물이 벗겨지니까 염려마 걱정마 고민마 노플라플럼 돈워리 비해피! 그런데 내가 그렇게 추앙받는 여왕이기만 하면 별 재미 없잖아. 놀랄 만한 반전이 있어. 지금까지는 그냥 좋은 점만 말한 거야. 나쁜 점 말하면 너는 놀라 자빠질 걸. 나에 대한 호평보다 나에 대한 악평이 날 더 유명하게 만들었지. 사실 그 악평은 도를 넘어. 그래서 내가 아까 난 두 얼굴을 가진 양면적 여인이라고 했던 거야. 그런데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과장하면서 날 희대의 악녀라고 하는 소문도 많아. 억울하기도 해.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난다고 나에 대한 악평이 터무늬 없는 건 아니긴 해. 다 내가 저지른 일들이 불씨가 되어 크게 번진 거겠지. 내가 저지른 일들을 이야기하려니 목에서 좀 걸린다. 캥기네. 나란 여자는 참 엄청난 년이야. 내 얘기 들으면 많이 무서울 걸. 그래도 넌 안잡아 먹을 테니 괜찮아. 근데 어디서 사람들 오는 소리가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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