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4. 정재와 묘심⑤

박기철 승인 2024.01.11 11:26 의견 0

4-5. 정치권력의 잔혹함

당연히 그랬지. 너처럼 먹고 사는데 어려움은 없었지. 그런데 세상은 공평한 거야 다른 어려움이 많았자.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정치적 어려움이란 거지. 정치(政治)라는 게 사전에서는 좋게 말해서 다스릴 정(政) 다스릴 치(治)니 세상을 다스리는 거지만 현실에서는 치열한 권력 쟁탈전이야. 권력을 쟁탈하여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지배하려는 것이 바로 정치야. 정치로 안되면 창칼총으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지. 그래서 정치는 전쟁만큼 살벌한 거야. 어떤 정치학자는 그걸 아주 근사하게 표현했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정치라고… 이 정의는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인 경제를 패러디한 것같은데 아무튼 그럴 듯한 정의야. 사람들이 모이면 사회를 이루지. 거기서 사람들마다 가치관이 다르지. 가치관이란 생각이겠지. 말이 점잖케 사회적 가치지 실제로는 자기가 생각하는 개인적 가치관이야. 권력을 가진 자는 그런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 행사할 수 있으니 그걸 점잖게 권위적 분배라고 하는 거야. 권력자가 교육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졌으면 교육에, 국방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졌으면 국방에, 궁전에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궁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원이 쓰이도록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바로 정치지. 내 두 번째 아버지는 정말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인 정치를 열심히 했지. 행운의 여신이 둘째 아버지한테 왔을 때 아버지는 전쟁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전쟁에 나라의 거의 모든 자원이 쓰이도록 권위적으로 분배했어. 밑에 신하들은 최고권력자의 그런 정치적 야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어. 둘째 아버지는 정말로 대단한 남자였어. 생긴 건 왜소하고 원숭같아도 엄청났지.

너 어린 애가 아는 게 많네. 네가 정치를 설명하니까 금방 이해가 되네. 점잖케 말해서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정치인데 실제로는 개인적 생각의 권력적 실행이 정치로구나. 맞아. 알고보니 정치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였어. 다 권력자의 뜻에 따라 하려는 것이 정치였어. 넌 둘째 아버지가 그런 정치를 하는 최고권력자였으니 정치를 좀 아는구나.

정치 권력 주변에는 즐거운 것보다 무서운 것들이 훨씬 더 많아. 둘째 아버지는 나를 양자로 들이기 전에 또 다른 양자를 두었는데 그 양자는 나랑 어떤 관계지? 아버지가 같은 이복 형도 아니고 어머니가 같은 동복 형도 아니고 그냥 아무 관계도 아닌 남이네. 그래도 형은 형이야. 아무튼 나보나 14살이나 더 많은 그 형은 최고권력자 누나의 장남이었다가 최고권력자의 양자가 되었지. 난 세 살 때 양자가 되었지만 그 형은 27살에 양자가 되었어. 이미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풍전수전 다 겪은 성인 남자였지. 27세에 양자가 되었다는 건 후계자로 거의 정해졌다는 거였어. 그런데 양자가 되자마자 최고권력자가 아들을 얻게 되었어. 이 때 아버지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했어. 후계자로 삼으려던 그 형한테 뭔 죄를 뒤집어 씌워 자결을 명했어. 형은 할복하고 말았지. 그리고 그 형의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과 인척, 그리고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연좌되어 처형당했어. 수십 명의 일족과 일당을 멸했어. 나는 그 때 열세 살이었는데 하마터면 나까지도 죽을 뻔했어. 내가 나이가 좀 더 들었다면 나도 형처럼 틀림없이 죽임을 당했을 거야. 권력은 잔혹한 거야. 27세에 양자가 되자마자 27세에 죽었어. 그렇게 그 형은 THE 27 CLUB에 들어갔어. FOREVER 27 CLUB으로도 불리는 그 클럽은 원래 27세에 요절한 음악 뮤지션이 들어가는 클럽이지. 그런데 미술 아티스트들도 끼워준다더군. 그 형은 뮤지션도 아티스트도 아니고 그냥 최고권력자의 양자였으니 끼워 줄래나 모르겠네. 한번 이 곳에서 그 형에 대해 수소문(搜所聞) 해봐야겠어. 만나면 회포를 좀 풀어야지. 27 클럽에 든 뮤지션들도 좀 불러 놀고싶어. 특히 커트 코베인이란 사람을 꼭 모시면 좋겠어. 지금 여기서도 그렇게 멋지고 시크한지 보고싶어.

너도 그가 몸담았던 너바나라는 밴드를 좋아하는구나. 나도 좋아해. 아무런 가식없이 현란한 테크닉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마구 분출하던 날 것의 음악이 아주 좋아. 27세 클럽 노는 자리에 나도 꼭 끼워줘. 알겠지, 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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