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4. 정재와 묘심➃

박기철 <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승인 2024.01.10 11:19 | 최종 수정 2024.01.10 11:27 의견 0

4-4. 세 아버지와 세 이름

묘심아! 진정해. 좀 마음을 가라앉혀. 이제 내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 너는 있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9살 때부터 집에서 내쫒겨 노예로 살았잖아. 나도 너랑 비슷한 처지지만 난 완전히 달라. 나도 너처럼 있는 집에서 태어났어. 우선 난 아버지가 세 명이나 되. 이름이 세 개나 되지. 기구한 운명일 수도 있지만 살아생전엔 화려한 인생이었지. 첫 번째 아버지는 당시 최고권력자 정실부인의 오빠였어. 나름 대단한 가문이었지. 나는 요즘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귀공자였어. 그런데 최고권력자한테 아들이 없어서 나는 최고권력자의 양자가 되었어. 내 두 번째 아버지는 당대를 호령하던 최고권력자였지. 첫 번째 아버지는 최고권력자의 명에 따라 나를 그의 양자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지. 아마도 내가 세 살 때였을 거야. 첫 번째 아버지는 다섯 째 아들인 나를 양자로 보냈어. 내가 제일 어리기도 했겠지만 내가 제일 영리한 아들이라 주군의 양자로 보낸 거겠지. 이왕이면 똑똑한 아들을 양자로 보내는 게 주군한테 잘 보이는 길이쟎아. 넌 아홉 살 때 다른 부족의 노예로 팔렸지만 난 세 살 때 최고권력자의 양자가 된 거지. 나는 그 때 그의 성을 가진 최고권력자의 아들이 되었어. 내 두 번째 아버지는 생긴 건 정말로 볼품 없었어. 키가 150cm도 안 되고 얼굴도 못생겨서 원숭이처럼 보였어. 좀 덩치 큰 원숭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었지. 또 욕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지. 나쁘게 말해서는 탐욕이고 좋게 말해서는 권력의지야. 아버지는 권력천재이자 권력괴물이었어. 권력을 어떻게 차지하고 행사하는지 선천적으로 아는 사람이었지. 물론 권력을 차지하기 전에는 엄청난 아부꾼이었다더군. 이에 대해서 항간에 나도는 재밌는 얘기들이 많아. 아버지가 최고권력을 차지하기 전에 최고권력자의 비위를 무지하게 잘 맞춰주었다는 거지. 눈치가 100단 정도는 되었나봐. 그래서 그의 눈에 들게 되고 한 자리 얻게 되고 그러다가 권력을 차지하게 되고… 둘째 아버지한테는 권력운이 따랐었나봐. 권력재능이 있는 데다가 권력천운까지 따랐으니… 아버지가 최고권력자가 되기 전에 엄청난 최고권력자가 있었는데 부하의 배신으로 죽게 되자 둘째 아버지가 잽싸게 기회를 잡아 권력을 송두리째 차지하여 드디어 최고권력자가 되었어. 순발력이나 기회포착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어. 둘째 아버지는 겉으론 원숭이처럼 생겼지만 야심이 엄청난 사람이었어. 아버지는 야망도 무지막지하게 컸어.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런데 두 번째 최고권력자 아버지가 후실인 부인한테서 아들을 낳았어. 나 말고도 여러 양자를 들일 만큼 아버지는 자식복이 없었는데 진짜로 자기 아들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좋았겠어. 그런데 그 아이가 안태어났다면 나는 아버지의 최고권력을 물려 받을 수 있는 후계자였는데 나로서는 안좋은 일이었지. 아들을 얻더니 최고권력자 아버지는 끝내 양자인 나를 내치더군. 많이 섭섭했지. 그렇다고 나를 너처럼 노예처럼 판 건 아니고 믿을 만한 충신의 아들로 내보냈어. 그렇게 나는 세 번째 아버지의 양자가 되었지. 당연히 이름도 바뀌었지. 내 나이 열두 살 때였어. 이렇게 난 아버지가 세 명이고 이름도 셋이나 가지게 되었지.

참, 정재 너 인생도 참 희한하네. 생부가 한 명이고 양부가 두 명이라니. 그래도 다 좋은 집안이었으니 사는데 어려운 건 없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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