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6. 기백과 사라②
박기철
승인
2024.02.01 06: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6-2. 인류사 최대연쇄 살인범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맘 단단히 잡고 들어야 해. 잘못하면 잘못될 수 있어. 쇼크 올 수 있어. 심장이 멈출 수 있어. 기백아 준비되었어? 나도 오래 전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이야기 하려니 나도 떨린다. 젊은 여자의 피가 피부에 좋다는 자기확신을 가진 나는 아예 그 생각에 빠져 버리며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실행하기 시작했어. 나의 아름다운 피부를 위해서는 못할 게 없었지. 나는 내 몸에 피를 묻힌 시녀를 지하방에 가두었어. 내가 잘못해서 시녀 얼굴에 자상을 입혔으니 위로라도 해야 하는데 거꾸로 내 고귀한 몸에 피를 묻혔다는 혐의로 벌을 주었지. 거기서 내가 뭘 했을 거같아. 내가 말하기도 겁난다. 일일이 자세히 말하긴 싫어. 나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하녀 몸에서 피를 뽑아내기 시작했어. 흥건하게 흘러 나오는 그녀의 피를 내 얼굴에 바르기보다 세수하듯 얼굴을 씻었어. 그러다 옷을 다 벗고 내 몸을 다 씻었어. 피를 뽑힌 하녀는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끔찍하게 죽어갔지. 하녀의 고통 소리마저도 나한텐 짜릿했어. 나는 사디즘적 성적 취향도 있었나봐. 아주 악독한 수준의…
아! 정말 너무하다. 너랑 말하기 싫다.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었니? 내가 아까 인류역사에서 너처럼 잔혹무도한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정말이네. 그런 너가 내 앞에 있다니 아! 무섭다. 그만 얘기하면 안될까?
일단 내 얘기 시작하면 끝까지 들어야 해. 너한테 처음 고백하는 거야. 참고 들어. 그 하녀를 죽인 건 시작에 불과했어. 앞으로 전개될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난 점점 더 대담해지고 무모해졌지. 내 성에서 내 말을 잘 듣으며 입이 무거울 하인 두 명을 부리며 일을 크게 벌렸지. 성 주변에 젊고 이쁜 여자들을 꼬셔서 성으로 오라고 했지. 내가 사는 성은 크고 멋지니 어린 여자애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신나게 왔어.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은 여기서 도무지 말할 수 없어. 그냥 개요만 얘기할게. 나는 어느 기계공한테 피뽑는 기계를 만들도록 의뢰했지. 여자들의 몸에서 피를 재빨리 거의 모두 뽑아낼 수 있는 장치였어. 그게 어떤 거냐고 말하기도 싫어. 그냥 그런 게 있었다고만 알아둬. 나중에는 기계로부터 나오는 피보다 내 손으로 직접 뽑는 피를 좋아해서 피뽑는 기계는 지하방 구석에다 치웠지.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 스스로 피뽑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는 거지. 곧 내가 더 잔인한 악마가 되었다는 뜻이야. 피를 즐기는 악마! 사람 몸무게의 약 7%가 피야. 성인을 기준으로 5l 안팎의 피가 있지. 나는 피로 씻으며 세수하는 단계를 넘어 피에 내 알몸을 담기며 목욕하고 싶었어. 그럼 내 온몸의 피부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싱싱할 것이라고 확신했어. 그렇다면 한 번 목욕하는데 몇 명의 처녀들을 죽여서 피를 뽑아야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가겠지. 내 자세히 말하지는 않을게. 지금 여기서 생각하니 나도 무서워.
아! 정말. 이제 그만하자. 더 듣다가는 토하겠다. 이제 죽이는 얘기는 제발 이제 그만! 그런데 피를 뽑혀 죽어간 처녀들의 시체는 어떻게 했어.
그게 늘 골칫거리였자. 그냥 하인들을 시켜 내가 사는 성 주변 땅에다 묻었어. 그렇게 해서 내가 몇 명의 처녀들을 죽였을 거 같아? 나는 처녀 한 명 한 명을 죽일 때마다 일기를 남겼는데 다 따져 보니까 612명이나 되더라구.
612명 연쇄살인범이라! 이 방면에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네. 너가 죽고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만큼 사람을 연쇄적으로 많이 죽인 사람은 없어. 결국 너의 흉악하고 극악한 죄가 밝혀지지 않을 수 없었겠네. 넌 당연히 사형당했겠지?
아! 그와 관련된 얘기 또 할 게 많아. 내가 그 때 제 정신이었겠어? 내가 612명을 죽였다며 일기장에 쓴 모든 글들이 진실이었을까? 아! 어지러워라.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