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5. 무식과 진숙①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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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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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5-1. 괜찮은 대통령이었던 무식
진숙아! 내가 여기서 좀 후져 보이지. 그런데 나 무식이로 말할 것 같으면? 난 엄청난 권력자였어. 요즘 권력자들은 권력을 가져도 권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더군. 권력을 가지면 오히려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지. 내가 보기엔 참으로 불쌍한 권력자들이야. 그럴려면 뭣하러 권력을 잡으려고 괜히 애썼는지 몰라. 나는 권력을 실컷 맘껏 누렸지. 정말로 권력이란 게 좋더군.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어. 너도 보아하니 권력을 좀 누린 여자 같은데. 너한테선 왠지 권력 냄새가 풍겨. 쎄 보여.
너 이름은 무식이어도 사람 볼 줄 아네. 나도 권력을 누릴 만큼 누렸어. 남자인 네가 누린 권력보다 여자인 내가 누린 권력이 절대로 꿀리거나 딸리지 않지. 자, 그럼 누가 더 권력을 누리고 살았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볼까. 너 먼저 해봐. 이 누나가 잘 들어 줄게.
네가 나보다 여기 먼저 왔으니까 누님으로 모시지. 그런데 원래 여기선 위아래가 없는 거 알지. 여기선 온 순서와 상관없이 그저 평등한 세상이야. 그래도 원한다면 누님으로 부를게. 나도 참 여기서 사람이 많이 달라졌네. 부드러워졌어.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어서 본론을 말해봐, 동생!
네, 누님. 각설하고. 나는 그래도 태어날 때 은수저는 물고 태어났어. 작은 부족 마을에서 촌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니까. 그런데 내가 여섯 살 때 촌장이었던 아버지는 우리 마을을 지배하던 얼굴 허연 백인놈들이 마을 사람들을 강제징용하는 것에 반대했었어. 그러다 백인놈들한테 맞아 죽었어. 1주일 후 엄마는 그 충격을 못이기고 자살했지. 나는 졸지에 촌장 아들에서 고아가 되었어. 그런데 하도 어릴 때 당한 일이라 슬프고 뭐고 할 게 없었지. 갑자기 엄마 아버지가 없어진 것이 이상했을 뿐이었어. 나는 친척집에서 컸어. 공부도 잘 했어. 싸움도 잘 했어. 나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려고 했는데 결국 나는 병사가 되었어. 그런데 아버지를 때려 죽인 백인놈들 나라의 병사가 되었어. 나는 선천적으로 군인 체질이었나봐. 큰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야말로 탁월한 병사였지. 무공훈장을 10개나 받았어. 덕분에 나는 흑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나라 육군의 대위가 되었지. 당시 이 계급은 흑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계급이었지. 이 때 나는 내 인생의 롤모델을 알게 되었어. 바로 나폴레옹이라는 사람이지. 나는 황제로서의 그를 추앙했어. 그런 마음으로 나는 전역하고 내 나라로 돌아왔어. 금의환향한 거지. 그리고 백인들로부터 해방된 우리나라 군대에 들어갔어. 총사령관이 되었어. 당시 사촌 형이 대통령이었는데 나는 당분간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나의 야심을 숨기며 살았어. 그러면서 뒷공작을 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대통령인 사촌 형이 눈치를 채기 시작하더군. 나는 기회를 포착하여 거사를 벌였지. 쿠테타는 성공했어.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쿠테타(coup d’État)라는 말은 내가 대위까지 승진했던 백인들 나라에서 유래한 말인데 거기서 보고 듣고 배운 쿠테타 실력이 주효했지. 그렇게 나는 일국의 당당한 대통령이 되었어. 나는 나름대로 선정을 펼치려고 노력도 했지. 정치적으로는 반공을 내세우며 공화국임을 선포했어. 일부다처제, 신부의 지참금 관행, 여성 할례를 법으로 금지했어. 도로망과 대중교통 시설도 만들고 대학도 세웠어. 특히 여자를 강간하거나 살해한 죄수들은 모두 처형했어. 민심을 얻었지. 이렇게만 했다면 내가 너랑 여기서 이야기할 게 없겠지. 이후로 나의 인생은 엄청나게 폭력적이며 권력적이게 되지.
아직 너의 본색은 드러내지 않는 이야기네. 그래 이제 본색을 드러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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