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4. 정재와 묘심①
인저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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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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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4-1.기구해진 묘심의 삶
이 방 분위기가 왜 이래.왠지 음침하네.나 정재도 음침한 사람이야.팔자가 기구한 사람이었어.사람들이 나를 배신자라 부르는데 내가 뭘 어쨌다구 그래.나,참!나는 내가 보기에도 무쟈게 불쌍한 놈이야.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너는 어떤 사람이었어.
나도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여자야.그래서 날 묘심(猫心)이라고 부르던데 귀여운 고양이가 뭐가어때서 날 보구 묘심이라고 불렀을까?멸칭은 아니고 그렇다고 애칭은 아니고,그냥 고양이 마음 같은 년이라서 묘심이라 부르나 봐.이 묘심이가 왜 배신을 하게 되었는지는 묻지고 따지지도 않지.무조건 배신자가 되어 버렸어.뭐가 크게 잘못되면 한 사람한테 집중적으로 잘못을 넘기며 자기네는 그 잘못에서 슬며시 벗어나려는 거지.난 속죄양이 되는 거지.한마디로 책임 전가야.내 이름은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어.물론 내가 다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나도 할 말이 많아.억울한 점도 많고…그럴 수 밖에 없었다구.나 아닌 어느 여자도 나같은 상황이 되었으면 나처럼 했을 걸.지가 아무리 잔다르크라해도.그런데 배신자로 낙인찍힌 우리끼리 만났으니 누가 더 배신자였는지 배신 배틀이라도 벌여볼까?
배신 배틀이라!재밌는 말이긴 한데 좀 그렇네.그래 좋아.한번 붙어 보자.정재와 묘심 중 누가 더 배신자였는지…
나부터 시작할까?나는 어느 작은 부족 마을에서 태어났지.울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높은 신분이었어.아버지 아래서 난 공주처럼 컸었지.수학 지리 역사 종교 법률 등 다양한 교육도 잘 받았어.총명했던 난 공부를 잘 했지.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어머니가 다른 귀족이랑 결혼을 했어.그래서 아들을 낳았는데 당시에 웃기는 제도가 있었어.부모의 유산을 모계 쪽이 가지는 거였어.그러니 엄마의 딸인 내가 있으면 내가 유산을 가지고 나의동복 남동생이 유산을 못 가지게 되니까 부모님은 날 버렸어.노예시장에 팔아버렸던 거지.내 나이9살 때야.말도 안 되는 일이야.그때부터 난 이 나라가 웃기는 짜장이라고 생각했어.맛있는 짜장면한테 미안한 표현이긴 한데…여하튼 난 그때부터 부모에 대한,국가에 대한 관념이 다 없어져 버렸어.자식을 버린 게 그래도 미안했는지 나의 부모는 나를 죽은 것으로 퉁치고 성대한 장례식까지 치렀다더군.참으로 가증스런 엄마와 양아버지였지.내가 노예로 지내던 소녀 시절은 나한테 가장 힘들던 시절이었지.노예는 부족끼리의 전투에서 이긴 부족이 진 부족 사람들을 끌고온 사람들이었어.그런데 난 병사들한테 끌려온 게 아니라 상인들한테 팔려온 노예였지.끌려온 노예나 팔려온 노예나 노예의 삶은 가혹했어.사는 문화 자체가 무서웠지.노예들은 그냥 가축과 다름 없었어.인신공양을 위해 바쳐지는 희생양이기도 했지.산 사람의 염통을 파내고 그것을 높은 제단에 바친치며 제사에서 버려진 시신을 고기로 삶아 먹는다고 들었어.듣기만 해도 아!끔찍해라.그래도 얼굴이 이쁘고 머리가 좋은 나는 형편이 좀 나았지.그나마 인간성이 좋았던 주인은 나한테 아주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어.그러면서 나는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식으로 많은 걸 귀동냥으로 배우게 되었어.특히 내가 살던 부족은 당시에 꽤 힘있는 부족이었는데 그 부족의 언어를 익히게 되었어.
와!정말로 귀족으로 태어났는데 어릴 적부터 노예가 되다니 삶이 기구하구나.그런데 너희 나라 참 잔인한 나라네.너네 위 쪽에 살던 사람들은 굉장히 평화롭게 살았다던데.부족들끼리 분쟁은 있었겠지만 이겼다고 사람들을 끌고와 노예로 삼고 그런 건 없었다는데…높은 제단을 쌓고 살벌한 제사를 지내고 그러지 않았다던데…인류문화사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자연에 순응하며 수준높은 문화를 지니며 살았다고 하더군.그런데 너희는 왜 그랬지.어차피 똑같은 황인종들이었을 텐데.왜 그리 잔인하고 잔혹한 문화를 가졌을까?비교문화 차원에서 연구할 문제네.
그런 건 나 잘 모르겠고 내 인생 이야기나 들어 봐.기가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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