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3. 병구과 인정③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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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15:20 | 최종 수정 2023.12.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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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3-3. 주전론자의 최종적 승리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내 동상을 만들었어. 마누라 동상까지 같이… 주전론자인 장군 앞에 두손이 묶이고 꿇어 앉은 부부의 동상이야. 망자에게 그런 모욕을 줄 필요가 있나?
세상에나?
그 정도는 약과야. 그 동상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에 만들어놓았어. 지나가는 사람마다 침을 뱉었지. 또 회초리로 우리 부부를 때렸지. 나는 재상으로서 오랑캐와의 전쟁을 피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공적이 있건만 상을 주진 못할 망정 내 마누라까지 한테까지 침과 회초리라니… 참 인간은 야비한 존재야. 내가 처음에 말했지. 세상에 나만큼 죽어서 치욕을 당한 사람이 또 없을 거라고… 정말이야. 지금까지 지구에 천억 명 정도 사람이 살았다는데 나처럼 죽어서까지 이렇게 모욕당한 사람은 없었어. 사후 최대 치욕을 당한 인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지. 거기 벼라별 기록들이 다 있더구만. 나는 매일 내 옆에서 침과 회초리를 같이 맞아야 하는 마누라한테 너무 미안해. 죽어서도 죽을 병이 들 정도로 안좋은 상태야. 명복을 누리기는커녕 매일 저주를 받으니 죽은 게 죽은 게 아니야.
병구야, 참 불쌍하다. 내가 어찌 위로할 말이 없네.
괜챦아 이제는 단련이 되었어. 욕도 하도 많이 먹으면 오히려 욕밥이 되어 강해진다잖아. 더군다나 세상은 돌고 돈다잖아. 때가 되면 편안하게 명복을 누릴 날도 오겠지. 내 얘기는 아직 많지만 일단 여기서 접고 인숙이 얘기 좀 들어보자. 내가 혼자 너무 말을 많이 했어.
정말 인간들이 잔인하구나. 망자에게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뎌왔네. 나같으면 명부의 세계를 관장하는 염라대황한테 가서 우리한테 침뱉고 회초리 치는 그런 짓을 하는 년놈들 좀 어찌 끌어 올려달라고 탄원이라도 해볼 텐데. 내가 지금까지 병구 얘기 들으니 네가 막강한 오랑캐와의 전쟁을 피하자며 주장했던 주화론이 당시에는 맞는 것같기도 한데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네. 그런데 역사학자들도 객관적 사실대로 역사를 기록하기보다 상황에 맟추어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게 많은 거같아. 어떤 역사학자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는데 그런 역사관이 대세가 되는 거같아. 만일 그렇게 역사라는 게 주관적인 대화를 통해 해석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입맛에 맞는 역사가 되는 거잖아. 승자 위주의 역사기록도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인 역사관에서 나온 거 아닐까? 난 사실 그런 역사관이 맘에 안들어. 역사가 누군가의 입맛대로 애매해졌어. 역사가 무슨 인상파 미술도 아니고, 그렇게 상대적으로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게 싫어. 그럴 듯한 궤변이고 다 개떡 같은 소리야. 역사란 100% 진실할 수 없지만 되도록 진실에 가깝도록 기록해야 되는 거 아니겠어. 난 그렇게 생각해. 병구가 재상으로서 펼친 주화론적 정책들이 언젠가 그 당시의 진실에 가깝게 기록될 날이 올지도 몰라. 물론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란 말도 있지만 과거와 현실의 대화라는 요상한 역사관에 휘둘리지 않으며 병구의 역사가 온전히 기록되길 바래.
인정아. 너의 역사관이 “역사란 과거와 현실의 대화”라는 멋진 폼나는 역사관보다 맞고 옳은 것 같구나. 그래 인정의 역사는 어땠어? 되도록 진실에 근접하려는 역사관에 따라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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