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6. 기백과 사라①

박기철 승인 2024.01.30 06: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6-1. 젊은 피 효능을 본 사라

너 왜 맥빠진 여자처럼 되었지. 여기가 아무리 속세는 아니지만 생기가 없네. 얼빠진 귀신 같애. 그리고 니 얼굴에 묻은 그 피는 뭐야? 네가 무슨 여자 드라큘라라도 되?

여자 드라큘라 같다고? 그래 맞다. 나 사라는 진짜로 여자 드라큘라였어. 피의 백작부인이라고도 불렸지. 남자 드라큘라는 내 앞에서 깜도 안 돼. 그 드라큘라는 소설에 나오는 흡혈귀잖아. 작가는 어떤 실제 인물의 행적을 알고 드라큘라라는 소설을 썼다는데 그래 봤자 피를 빨아 먹는 남자 이야기야. 그리고 드라큘라의 실제 인물은 적군을 꼬챙이에 꿰어 죽였다지만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에 맞서 적군을 죽였기에 루마니아라는 나라에선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소설 속 흡혈귀 드라큘라든 실제로 사람을 꼬챙이에 꿰어 죽이는 역사적 인물인 드라큘라든 그 정도는 나한테 비교불가야. 그 잔인함에 있어서… 인류역사에 나처럼 잔혹무도한 사람은 없었어. 남자를 능가하는 여자였어. 나는 전쟁을 한다고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그냥 오로지 나의 미용을 위하여 취미로 유희로 사람을 죽였어. 취미용 살인자 숫자에서 나는 캡이고 살인의 잔혹함에 있어서 나는 갑이야. 버금가는 2등이 결코 없어.

너가 그런 여자였다고? 안 그래 보이는데… 요조숙녀는 아니더라도 그냥 얌전한 여인처럼 보이는데… 네 얼굴에 피가 좀 묻었어도 그냥 얼굴에 상처가 나서 잠시 피가 묻었는줄 알았는데… 도대체 너란 여자의 정체는 뭐야?

서둘지마, 기백아! 나란 여자의 정체를 알고 나서 좋을 건 없어. 세상이 무서워질 거야. 그래도 정 알고 싶다면 내가 말해주지. 나는 명문 귀족의 딸로 태어났어. 젊을 때는 네가 보시다시피 얌전했지. 얼굴도 이뻤어. 예법도 배운 현모양처 스타일이었어. 내 검고 크고 깊은 눈에 사람들은 반하기도 했지. 차가우면서도 신비로운 매력이 있었나봐. 나는 귀족인 군인과 결혼했어. 시어머니가 시도때도 없이 날 감시하고 참견하며 잔소리가 심했지만 나는 그런대로 견디며 살았어. 하지만 그걸 억누르며 살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가끔 신경질적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지. 남편은 당시 전쟁이 많아서 내 옆보다 전쟁터에 더 많이 있었어. 그래도 5명의 자녀를 낳았지. 남편이 총사령관이 되었을 때 남편은 큰 성과 영지를 받았는데 나는 그 영지를 관리해야 했어. 그런데 남편이 49세에 전사했어. 내 나이 44세였지. 나는 남편 장례를 마치고 나를 괴롭히던 시어머니를 단번에 내쫒았어. 그리고 그 큰 성의 성주가 되면서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었어. 여자 나이 44살에 과부가 되었는데 나는 처음에는 슬펐지만 나중에는 나한테 주어진 무한자유를 즐기고자 맘먹었어. 그런데 나이드는 것에 따라 늙어가는 나의 모습이 두려웠지. 대개 40대 중반의 여자들이 다 그렇잖아. 팽팽했던 얼굴에 기미와 주름살이 생기고 그러는 게 무서웠어. 그러니 신경질이 늘었겠지. 히스테리해진 거지. 집안 일을 하는 하녀들은 그런 나를 두려워 하고 무서워 했지.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어린 하녀가 나의 머리를 빗기는데 실수로 내 머리를 좀 세게 잡아 당겼지. 가뜩이나 신경질이 많던 나는 그 하녀의 뺨을 때렸지. 그러다 내 손에 있던 뽀죽한 머리핀이 하녀의 뽀얀 얼굴 뺨을 찌르고 말았지. 시녀의 얼굴에서 시뻘건 피가 흐르고 그 피가 내 팔뚝에 묻었어. 핏자국을 닦았지. 그런데 하녀의 피가 묻은 팔뚝의 피부가 좀 젊어진 것처럼 보였어. 실제로 피부가 그렇게 된 건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지. 당장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거야. 피부노화에 온통 신경쓰던 나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지. “젊은 여자의 피가 내 피부에 묻으니 내 피부가 젊어지는구나!” 이를테면 확증편향 확신오류 과잉확신 자기확신에 빠져 버린 거지.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했을 거같아?

하녀를 죽여서 뭘 어떻게 했다는 거야? 아! 듣기 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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