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7. 경수와 오미⑤
박기철
승인
2024.02.20 11:32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7-5. 여왕에 관한 해괴한 소문
해괴한 악소문이라니 요상한 소문이 돌았겠구먼. 돌아 버렸겠다.
내가 미소년들을 내 방으로 끌어 들여 집단 성관계를 했다는 거야. 삼촌과의 근친상간이라 그러더니 나중에는 어린 남자들과 집단 성행위를 했다는 소문이 났어. 그런데 생각해봐.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보라구. 내가 설마 그랬겠어. 남자 왕들은 당당하게 여자 후궁을 두잖아. 여자 왕인 나도 당당하게 남자 후궁을 두었을 뿐이야. 그렇게 공평하게 보면 아무 문제가 되질 않지. 그런데 내가 여자라 나는 그냥 남자들한테 거세게 공격당한 거야. 남편처럼 사랑하던 삼촌이 저 세상으로 갔을 때 한창 싱싱하고 팔팔할 20대 나는 여자로서 외로웠어. 그래서 어린 남자 후궁을 가까이 곁에 두긴 했어. 그렇다고 내가 남자 후궁들 여럿과 한꺼번에 노골적인 성행위를 하진 않았어. 요즘 사람들도 나를 그런 요망한 년이라고 알고 있어. 내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아. 내가 나오는 어떤 영화를 보니까… 내가 힘센 옆나라 어느 호족 놈을 내 방으로 끌어들여 그를 밤새도록 성적으로 시달리게 해 그 남자가 아침에 다리가 후덜덜덜 풀려 초죽음이 되서 나오더군. 참 나! 내가 그런 망측한 암컷 색마였다고? 사람들한텐 웃겨도 정작 본인인 나한텐 웃프지. 왜 어찌 그렇게 되었을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
글쎄! 여자 왕이라서 그렇게 당했다는 건가? 또 뭐가 있지?
너 역사란 게 뭔지 알지? 역사는 객관적 기록이어야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승자 관점의 주관적 기록이기 쉬워. 나는 망해가는 나라의 군주였잖아. 결국 나라가 망하고 나서 새로운 나라가 들어섰지. 그 새로운 나라에서 역사책을 쓰는데 어떻게 써야 자기네 나라 개국의 정당성이 서겠어? 자기네가 무너뜨린 나라는 나쁜 나라로 몰아 세워야 했겠지. 그 나쁜 나라를 만든 못된 왕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난 딱 그런 케이스로 찍히고 만거야. 그 역사책에서 나는 색이나 즐기며 탐하는 색꼴 여왕으로 기록되고 말았어. 나 때에는 그런 기록들이 없었는데 후대에 그런 역사적 기록이 생긴 거지. 다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래. 나는 성군(聖君)도 아니고 명군(名君)도 아니지만 아무 생각 없는 암군(暗君)이나 혼군(昏君)은 아니었어. 더군다나 색이나 밝히는 색군(色君)은 아니었어. 실제로 색을 엄청나게 밝혔던 측천인가 하는 여황제는 밤마다 젊은 남자 상대를 바꿔가며 즐겼다잖아. 그래도 역사는 그녀를 마구 조롱하고 그러지는 않지. 그런데 나는 완전히 망가졌어. 헛소문과 가짜 뉴스에 따르지 않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나의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역사책이 나오길 간절히 바래. 나 때 기록된 역사책은 사라졌어. 삼촌이 정성껏 귀하게 편집한 가사책도 사라졌어. 저기 중국이란 나라에서는 내가 살기 1000여 년 전에 쓰인 사기라는 역사책도 있고 1500여 년 전에 쓰인 시경이라는 가사책이 있는데 왜 우린 그런 게 다 사라졌는지 모르겠어. 그게 있어야 나에 대한 역사도 헛소문을 사료로 하여 엉터리로 꾸미지 않고 진실은 아니더라도 사실에 가까운 현실적 역사가 될텐데… 난 억울해. 여기서도 나한텐 신원(伸冤)이 필요해. 나의 이 억울함을 푸는… 그래도 생각이 있는 요즘 사람들 중 극소수가 나에 대해 나쁘게만 얘기하지 않는데 나한텐 참 고마운 사람들이야. 복받을 거야.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날 아주 요망한 이상한 년으로 취급하고 있지. 그냥 재밌는 가십꺼리가 되고 말았어. 진위 여부를 떠나.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대개 사람들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에 끌리기 쉽거든. 특히 언론은 긍정적 뉴스보다 부정적 뉴스를 좋아하지. 인간의 본성이 그래.
아! 오미, 네 얘기 들으니 너 참 안됐구나. 여기서 나라도 위로할게. 별 영양가는 없겠지만… 언제가 세상사람들이 널 요망한 여자로만 보지 않는 날이 올거야. 그런데 너 어찌 견디며 앞날을 살아갔어? 어쩌다 여기 오게 되었어? 그런데 밖이 왜 이리 시끄러워.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