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7. 경수와 오미②

박기철 승인 2024.02.15 07:00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7-2. 한심한 되어 버린 경수

내가 예감하는 반전까지는 아직 좀 멀어. 당시에 분단된 남쪽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있었는데 곧 국가 원수가 되었어. 이때 국민투표로 뽑힌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거냐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지. 나는 98%에 달하는 압도적 표를 얻었어. 날 지지하던 남쪽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던 거야. 난 남쪽 나라를 다스리는 명실상부한 대통령이 되었지. 이때가 내 인생의 최고 전성기였어. 내 나이 55세 때였지. 이때 세계최강국이던 미국이란 나라가 나를 밀어주었어. 그러니 나는 거칠 게 없었지. 국민 지지율 높지, 최강국이 나를 지원하지 하니까 겁도 없었지. 이때 나는 나를 성찰하고 내가 뭘 제대로 할 것인지 방향을 정확히 잡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내가 제일 후회하는 거야. 국가기강을 잡고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일을 하고 경제를 키웠어야 했는데 나는 안일했어. 첫끗빨이 개끗빨이란 말이 있잖아. 딱 그대로였어. 대개 국가권력을 잡으면 토지개혁이란 걸 하잖아. 이걸 과감하게 했어야 했는데 대충 시늉만 냈어. 농민보다 토지주인인 지주들한테 유리하도록 했어. 그러니 남쪽에 살던 농민들은 북쪽의 과감한 토지개혁과 비교하며 남쪽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지. 그 틈을 비집고 남쪽에서 암약하던 공산주의자들이 더 설치게 되었지. 그 놈들을 잡겠다고 나는 비밀경찰을 움직였지. 그 비밀경찰의 책임자로 내 동생을 임명했는데 임마가 너무 세게 나갔어. 반정부세력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했지. 나처럼 철처한 반공주의자였던 동생과 함께 나는 너무나도 과감했어. 토지개혁처럼 과감할 걸 과감해야 하는데 비밀경찰처럼 과감하지 말 걸 과감하게 했어. 그래도 나는 동생한테 늘 힘을 실어주었지. 그러다 사고가 터졌어. 동생이 사고친 게 아니라 동생의 아내, 그러니까 제수씨가 큰 사고를 냈어. 나는 결혼하지 않은 독심남이야. 그래서 재수씨가 거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는데 이 여자가 또 겁이 없었어. 어느 날 나이가 많은 고승이 자기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하는 인신공양 사건이 터졌지. 인신공양(人身供養)이 자기 몸을 부처님께 바치는 행위잖아. 우리나라는 불교나라였지. 그런데 난 어릴 때 얼굴 허연 놈들과 친했기에 허연 놈들이 믿는 카톨릭 신자였어. 그래서 나는 불교를 탄압했었거든. 물론 그 탄압은 내 동생이 도맡아 했지만 내가 용인해서 벌인 탄압에 저항하여 고승이 자기 몸을 태워 죽은 거야. 그 양반 참 대단했어. 자기 몸이 타는데도 비명 소리 하나 지르지 않았어. 그리고 불에 타서 검게 탄 시체는 앞이 아니라 뒤로 고꾸라졌어. 보통 타죽으면 몸이 구운 오징어처럼 오그라져 앞으로 넘어지는 법인데 뒤로 넘어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죽어서도 저항의 정신을 잃지 않고 허리를 꼿꼿히 세웠다는 거지. 이 사건은 그냥 그러려니 묻힐 수도 있는 분신 사건이었어. 그런데 제수씨가 이 사건에 대해 한 마디 한 게 대서특필되며 국민들의 분노를 샀어. 얄쌍하게 생긴 그 년이 뭐라 그랬는지 알아. 나도 기가 막혀!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 할 마당에 고인을 저주했어. 늙은 중이 불에 타 바비큐가 된 일에 불과하다고 했지. 그리고 불태운 휘발유도 우리 게 아니라 미국 애들이 가져온 거니 자립적으로 죽은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 가뜩이나 꽁치 대가리처럼 얄밉게 생긴 년이 남편과 시아주버니인 나의 권력에 기대어 해선 안될 말을 한 거지. 이런 말 실수를 그냥 넘길 공산주의자 놈들이 아니었지. 길길이 날뛰었지. 국민들도 분노했어. 이 때 내가 나서서 수습을 해야 했는데 나는 그냥 동생을 믿고 방관했지. 가장 큰 문제는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부패했다는 거야. 국민들 잘 먹고 잘 살게 해야 하는데 그냥 자기들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관심갖고 신경썼지. 부패하고 무능했지. 비겁하고 비열했어.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가 몰라. 나 먼저 처음과 달리 부패하고 무능하게 변해 버렸거든. 나는 나를 그리도 지원해주었던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했어. 이 와중에 나를 도왔던 미국 애들마저도 나를 정리하려고 했지. 난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감각을 잃었어.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어. 군인들이 들고 일어났어. 한마디로 쿠테타가 일어난 거야. 난 그놈들한테 처형되고 말았어. 물론 내 동생과 제수씨도 같이 처형되었어. 그렇게 9년 간에 걸친 나의 권력통치는 허망하게 끝났어. 그리고 여기와서 이렇게 빌빌거리고 있지. 나 참 한심한 놈이야. 잘 할 수 있었는데 잘 했어야 했는데 잘 하지 못해서…

한심하구만. 내가 아까는 “훌륭하구만”이라고 널 칭찬해 주었는데 네 말 듣고 보니 정말로 한심하구만. 아주 나라를 말아 먹었구만. 도대체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야지. 그 대가리 어따 써먹었어. 결혼도 안 했다니 큰 욕심 부릴 일도 없었을 텐데. 넌 어디가서 할 말이 없겠다. 넌 너를 뽑아준 국민와 그렇게 세운 국가를 배신한 최대의 배신자야.

그래 맞아. 나야말로 최대의 배신자야. 그런데 내가 죽고나서 우리나라는 나 있을 때보다 더 개판이 되고 말지. 그렇게 되는데 내가 밑바탕 초석을 깔았던 거니 나는 여기서 할 말이 없어. 그런데 오미, 넌 여자치곤 덩치는 커도 조신해 보인다. 너도 나처럼 배신의 사연이 있는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