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10-2. 계성이 이룬 최대의 치적

그런데 난 그렇게 잔혹한 왕 만은 아니었어. 나는 당대 최고지성이었어. 내가 나보고 최고지성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이 그랬어. 당시에 나보다 똑똑한 왕은 전세계에 없었어. 실제로 있었을 수도 있지만 역사에 기록된 사실로 보면 나는 제일 똑똑한 왕이었어. 너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거 들어는 봤지? 길가메시는 나보다 2000여년 전에 살던 사람이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750년에 살던 사람이지. 그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실재했던 왕 이름인데 그가 겪었던 사건과 여정을 생생하게 적은 글이야. 점토판에 적힌 글이지. 만일 내가 그 걸 내가 세운 도서관에 보관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길가메시 서사시는 없어. 나는 잔인한 정복왕이었지만 또한 영민한 학자이기도 했어. 내가 보기에도 나는 똑똑했어. 난 내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았어. 나는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글들 만이 아니라 내 주변에 살던 지역에서 쐐기문자로 쓰여진 수메르어, 아카드어를 읽을 수 있었어. 그 만큼 그 방면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지. 수학도 잘 했어. 역사 문학 의학 과학 군사학 천문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져서 두루 넓게 알았어. 그런 학문적 이류로 나는 인류최초의 도서관을 짓게 했어. 나의 최대 업적이야. 내가 지은 그 도서관에 보관된 점토판 책 덕분에 중동 지역의 고대사는 밝혀질 수 있었지. 내가 인류에 미친 자랑스러운 업적이야.

네가 세계최초로 인류최초로 도서관을 지었다고? 대단하네. 어찌 그리 도서관 지을 생각을 했을꼬? 기특하네.

나도 날 생각해도 도서관을 짓도록 한 것은 기특하고 대견하고 신통해. 그런데 내가 그렇게 도서관을 짓게 된 사건이 있었지. 어느 날 우리나라를 멸망케 했던 고바빌로니아 시대에 쓰여졌다는 점토판 책이 발견되었어. 거기에 보니까 나보다 1000년 전에 살았던 함무라비왕 시대의 이야기도 나오더군.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그 함무라비 알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거…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은데 아무튼 그 법전은 인류최초의 성문법으로 비석에 새겨져 있고 지금도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 하여튼 내가 보았던 그 점토판 책에는 함무라비왕 당시에 불려졌던 서사시도 있고 함무라비를 칭송하는 내용들도 있었어. 그 걸 보고 나는 생각했지. 살아가는 인생은 유한하며 짧지만 글로 남겨진 기록은 무한히 영원하겠구나. 나도 함무라비처럼 수천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인물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뿐 만아니라 우리나라가 지배했던 나라들에서 나온 점토판 책을 모두 모으도록 했어. 그걸 한 곳에 모으려니 도서관이 필요했던 거고… 도서관은 그렇게 지어지게 시작된 거야. 나는 또 수학 천문학 의학 등 여러 학문을 장려하며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연구한 내용들을 점토판 책에 적어 도서관에 보관토록 했어. 물론 왕인 나의 치적들도 기록하게 했지. 그렇게 보관된 점토판 책들이 무려 3만 개 정도나 되었어. 요즘처럼 종이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갈대잎으로 만든 파피루스 책도 아니고 대나무로 만든 죽간도 아니고 진흙으로 만든 그 많은 점토판 책들을 보관하려니 도서관 규모가 방대하게 커지게 되었지.

도서관을 지었다니 참 잘 한 일이기는 한데… 너 참 욕심이 많았구나.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았구나. 그래 네 욕심과 야심, 욕망과 야망대로 너는 이후 잘 살게 되었겠지.

맥 빠지게 뭘 그런 질문을 먼저 서둘러서 하고 그래! 내 뜸들이다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질문하니 기운이 그냥 뚝 떨어지며 팍 사라지네. 아이고~

어머! 미안! 난 네가 하도 자랑을 해서 잘 되나 해서 물어 본건데. 내가 괜히 물어 봤네. 기운 날 때까지 좀 쉬어. 이제 내 이야기 들으면 되겠네.

인저리타임 박기철 박기철 kaciy@ks.ac.kr 박기철의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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