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65)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8장 만두가게 개업(5)

이득수 승인 2024.06.19 08:00 의견 0

열찬씨의 얼굴이 화끈한데

“아부지가 어떻게든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원만하게 해결 지으라고 해서 여러 번 찾아갔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본다고 사람을 만나야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삼촌한테 자문도 받을 건데 말입니다.”

“그래, 그렇지. 사람을 만나야 말이지.”

“그것도 그 친구란 사람이 다 코치했답니다. 집안사람들 만나면 문중 답이라고 수십 명이 같이 나누자고 하면 철우 몫은 거의 없다고 꼬드겨서.”

“그래 돈은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구나. 그래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경주교도소에 있다는 말이 있심더.”

18. 만두가게 개업(5)

누구 하나 옳게 돈 한 푼 못 만져보고 결국 사람하나 잡고 집안 전체가 망신만 당한 꼴이었다.

(그 논이 어떤 논인데...)

그 옛날 전라도 지리산에서 동학란을 피해서 넘어온 키가 팔대장승 같이 큰 부처손이란 이상한 이름의 할머니가 대대로 종손에게 물려줄 종손 답으로 아버지 기출씨와 어렵게 마련한 논으로 나중에 차남 정찬씨가 돌아와 큰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제사를 맡아 사실상 장손노릇을 하면서 자기 앞으로 넘어와야 된다고 볼멘소리를 할 때도 상찬씨가 나서서 겨우겨우 명을 붙여둔 그 문중 답이 그렇게 허무하게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

무거운 논밭 지니지 말고 가벼운 복을 지니라는 속담도 있지만 어리석은 종손이 제 발로 찾아온 현금을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어디에서 벌초를 했는지 작천정아래의 <정각매운탕>집에서 점심을 먹기는 했는데 무얼 먹고 무얼 이야기 했는지 기억도 없이 열찬씨만 술이 억병이 되고 말았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마침내 슬비가 퇴직을 했다. 3개월쯤 법인정산을 하기 위해서 다닌다는 것이 무려 6개월이나 걸린 것이었다. 물론 월급도 전보다 많이 타고 물러난 회장님으로 부터 특별보너스도 백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모처럼 두 집 식구 여섯이 언양의 가천린포그까지 차를 몰아 영서의 말로 입에 살살 녹는 쇠고기 안심과 등심을 구워먹으며 마침 잠든 갓난아기를 바닥에 눕히고

“건배!”

저마다 소주와 맥주와 사이다잔을 들고 건배를 하고 난 뒤

“참, 너거 두 사람은 인자 뭐 할지 계획이 섰나?”

출발하기 전 아이들이 먼저 입을 열기 전에는 절대로 물어보지 말라고 영순씨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았는데도 금방 잊어버린 열찬씨가 입을 열자

“아이구, 이놈의 영감쟁이!”

영순씨가 혀를 끌끌 차는데

“아빠도 참 성질도 급하다. 내가 어데 한 달을 쉬었나, 두 달을 쉬었나? 인자 겨우 사흘 쉬었는데 벌써 재촉이네.”

“그, 그래. 내가 걱정이 되서 그만...”

“아빠 딸하고 사위가 밥걱정할 만큼 약하지 않아요. 도연씨도 저도 다 복안이 있어요. 그리고 저도 지금부터 한 몇 달 여유롭게 쉬면서 심신도 추스르고 모처럼 실업수당을 타서 복지국가 대한민국의 혜택도 좀 받아야지요.”

하다가 정색을 하고

“아버지 18번이 스무 살이 되어 객지에 나온 이후로 단 하루도 소속이 없거나 무방비로 쉬어본 일이 없다고, 군에 제대하고 복직하기 전까지 단 사흘을 쉬어본 것이 유일한 공백기이고 그 다음엔 늘 어딘가 소속되고 일에 파묻혀 살다 정년퇴직을 했다고 하듯이 저도 아버지 성화로 졸업과 동시에 세원에 취업하고 엊그제 퇴직할 때까지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하면서 웃었다. 그날 저녁 영순씨를 통해서 듣기로 슬비는 삼호, 태광 두 회사에서 일단 이력서를 넣어보라고 하지만 당장은 좀 쉬면서 아이에게 엄마노릇도 하다 한 3개월 후 연말에 이력서를 넣고 내년부터 다시 직장을 다닐 예정이라도 했다.

그리고 사위 도연씨는 이제 왕만두장사를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범어사절아래 만두집을 비롯해 몇 군데 장사 잘 되기로 소문난 집의 기술을 배우기로 하고 연줄을 모색하다 마침내 수영에서 꽤나 장사를 잘 해 한달 평균 천만 원 이상 수입을 올린다는 <미성만두>라는 가게의 기술을 천만 원의 기술이전료를 주고 다음 주부터 그 집 주방에서 직접 밀가루반죽을 하고 만두를 빚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기술이전료가 그렇게 간단히 돈 천만 원으로 해결되느냐 하니 앞으로 가게에 쓸 만두소와 찐빵에 들어갈 앙꼬를 그 집에서 받아써야 하고 또 가게를 열 때 실내장식까지 미성만두에서 지정하는 인테리어에 맡겨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전망도 보이고 아이어미가 집에 있으니 영순씨의 시간도 자유로워 비교적 편안한 나날을 보내며 다시 소설을 쓰는 일에 파묻혔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전에 세원에 다니던 동료들끼리 단합대회를 갖느라고 슬비내외가 동시에 나가버려 영순씨가 종일 아이를 보다 밤 열시나 되어 돌아왔는데

“오랜만에 고생했제? 얼라는 잘 놀더나?”

열찬씨가 전처럼 시원한 캔 맥주 하나를 꺼내주는데

“나 이제 캔 안 먹어.”

“왜?”

“전에 당신이 저녁마다 하나씩 챙겨줄 때 몸도 피곤하고 속도 헐출하고 해서 먹기는 먹었는데 아침마다 속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봤지.”

“그래서?”

“의사가 점잖은 사모님이 무슨 술을 그리 마시느냐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어. 그래서 나는 술이 잘 안 받아 평소에는 거의 안마시고 요 근래 아이 보느라 너무 피로해서 간간 캔 맥주 하나씩 마신다고 해도 믿지를 않는 거야. 적어도 하루 한두 병씩 한 십년이상 마신 사람처럼 간수치도 안 좋고 위도 헐었다는 거야. 또 역류 성 위염도 벌써 위험수준이고.”

“그래? 그럼 오늘은 나랑 반반씩 나눠먹지.”

하고 영순씨는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자러가고

(우리 꽃각시가 또 탈이 나네. 스물한 살 처녀 때야 누가 봐도 꽃이었고 거기 장가간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나? 언양의 집안일은 물론 어디건 데리고만 가면 다들 예쁘다, 장가 잘 갔다고 하는 재미에...)

즐거운 추억에 빠진 열찬씨가

(나보다 대범하고 착하고 깔끔하고 음식도 잘 하고. 그런데 한 50이 가까워오며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데 마치 여린 잎 같았지. 보기에는 알맞게 살이 쪄 잘 자란 열무처럼 싱싱해도 조금만 부딪히면 부러지거나 멍이 들고 금방 숨이 죽는 열무, 그래서 풀각시라 생각했지. 좌우간 딱 하나 체질이 약한 것이 흠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평균수명도 못 살고 예순 셋에 돌아가신 장인처럼...)

하며 화장실을 가는데 벌써 잠이 들었는지 가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딱히 볼만한 프로가 없었다. 아직 잠을 자기에도 이르다 싶어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장편소설 <신불산>을 펼쳤다. 매일 아침 여섯 시 경에 눈을 뜨면 아홉 시까지 글을 쓰고 아내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라 오전부터 밤까지는 산책을 하든, 원동교밑에서 바둑을 두든, 친구를 만나든 오로지 글을 쓰는 아침시간에 핀트를 맞추고 일과를 치렀다. 되도록 아침시간에 머리가 맑게 신체리듬을 맞추어 단 한 페이지라도 더 쓰려고. 할 일도 없고 잠도 안 오니 오늘은 모처럼 저녁에 한 댓 페이지 쓰면 내일 아침은 늦잠을 자도 되리라 생각하고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데 따르릉 휴대폰이 울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굴까 싶으면서

“여보세요?”

무심코 휴대폰을 든 열찬씨가 멈칫했다. 뜻밖에도 순영씨였던 것이다.

“우째? 무슨 일 있어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예. 속에 천불이 나서. 그런데 전화는 받을 수 있어요?”

“나는 괜찮아요. 지금 안방에서 자고 있어요. 나는 서재에서 글을 쓰고. 그런데 순영씨는?”

“영감이 종일 남의 속을 긁어 방금 한바탕 하고 제 방에 들어가서 문을 안으로 걸었어요.”

“그렇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두 분이 사이좋게 잘 지내야 내 마음도 편하지요.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마음을 좀 달래고 이야기를 해 봐요.”

“뭐, 우리가 하루 이틀 다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저 양반한테 전생에 무슨 죄를 지고 평생을 갚아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니 그거야 나도 그렇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당신을 그리워만 하고 다가가지 못 하는지? 보고 못 먹는 그림에 떡도 아니고.”

“그건 아니지요. 내가 열찬씨하고 결혼은 안 했어도 세상에 어느 여자 못잖게 당신을 생각하고 걱정할 걸요.”

“그건 나도 알아요. 그런데 운명의 신은 왜 처음부터 우리를 축복해주지 않고 가늘고 이상한 인연의 끈 하나, 잘 끊어지지도 않는 끈, 그렇다고 악연이라고 하기도 무엇한 끈 하나로 이렇게 평생을 묵어놓는지...”

“그래도 열찬씨는 두 사람 사이가 좋으니 좋지 않아요? 우리는 단 하루도 긴장을 푸는 일 없이 서로 원수처럼 적대시 하고 싸우니 말입니다.”

“그게 다 내 잘못이지. 순영씨가 응답하지 않을 때 싹싹하게 그만두었으면 될 일을 무슨 미련이 그리 많아 평생을 첫사랑 이니 그리움이니 하며 당신을 압박했으니...”

“꼭 그렇지는 않아요. 지금은 당신이란 존재가 나를 지탱하는 울타리같이 생각될 때가 있어요. 나도 당신에게 미한하다는 생각, 너무 까다롭게 굴지 않고 쉽사리 마음을 열고 당신을 받아들었으면 한 평생 마음하나라도 편하게 서로 아웅다웅 다정하게 살아갈 것을.”

“그래요. 우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나는 좋은 인연을 만나 호강하고 사는데 당신은 너무 까다로운 인연을 만나 한 평생 애태우고 사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요. 다 내 잘못, 내가 평생 당신을 맴돈다는 존재를 알고 그 분이 더 당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그분인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생각이 들고.”

“그건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결혼하고 20년이 넘도록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고 당신의 존재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부터 그 사람의 성격은 너무 외통수로 내게 집착해서 날 어렵게 했어요. 그리고 뜻 밖에 내가 날마다 읽는 당신의 시집을 보고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도 별 타박을 하지 않았어요. 자기 말로 인형 같은 여자를 데려왔으니 짝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라며 껄껄 웃더라고요. 당신이라는 첫사랑의 실체가 있다는 걸 알고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고 어떤 때 부부싸움이 심할 때 ‘내가 괜히 이 골칫덩어리를 데리고 와 이열찬이 그 양반만 팔자를 고쳤다.’ 그 양반도 당신하고 한번 살아보면 얼마나 힘 드는 건지 안다면서.”

“그러니까 당신하고 관계없이 우리 둘은 성격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둘 다 너무 깔끔한데다 그 양반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고 나도 그런 편이고 또 둘 다 완벽주의라 다문 말 한마디 거슬리는 것도 참지 못 하고 방에 먼지 한 알이 떨어져도 안 되고 못이 약간 비뚤게 박혀도 안 되고... 그러다가 내가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고 일부러 편하고 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요.”

“그렇구나. 아무튼 미안하고 죄송해요. 나는 편하게 잘 지내는데 당신은 하루하루를 괴롭게 지내서.”

“우짜겠능교? 팔자인데.”

“그래요. 우짜든동 마음잡고 잘 주무세요.”

“예. 열찬씨도 잘 주무세요. 참 그런데...”

하는 순간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