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 『달콤한 살인 계획』 펴낸 김서진 작가, "잘 써야만 작가인가, 다만 죽을 때까지 써보겠다!"

19일 오후 부산 서면 (사)인본사회연구소에서 북 콘서트 가져
KBS 극본공모에 당선, 100여편 단막극 집필.
첫 소설 『선량한 시민』으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한국 현대사를 미스터리와 결합한 장편소설 『2월 30일생』(2014), 기이한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네이처 보이』(2015) 펴내

김해창 승인 2024.07.23 18:25 | 최종 수정 2024.07.23 18:26 의견 0
지난 19일 금요일 오후 부산 서면 (사)인본사회연구소 대강당에서 열린 '금요 인문학, 김서진 작가의 『달콤한 살인 계획』 북콘서트'.

"처음 써본 극본으로 공모에 당선됐을 땐 제가 천재인줄 알았죠. 방송에서 소설로 옮겨 30년간 글을 써왔어요. 근데 지금 상황에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결코 소설가의 길을 택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글을 안 쓴다면 내 삶에 무엇이 남을까 의문이에요. 지금은 직업작가로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 쓰는 것을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부산 서면 사단법인 인본사회연구소 대강당에서 '금요인문학, 김서진 작가의 『달콤한 살인 계획』 북콘서트'가 열렸다. 김서진은 작가의 필명으로 본명은 김진, 현 부산수영구의회 의원이다.

그가 10년 만에 장편소설 『달콤한 살인 계획』을 내놓았다. 소설가 김호연은 "이 책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여자가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이다. 아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귀신을 보는 여자가 범인으로 특정한 남자를 죽이려는 이야기다. 아니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귀신을 보며 정신병을 앓는 여자가 연쇄살인마를 고문해 자백을 듣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다. …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미스터리에 감탄하다가도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진범을 추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실로 독창적인 스릴러다. … 이 소설을 설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책 표지에 추천글을 썼다.

김서진 작가

책에 소개된 작가 이력은 이러하다. 대학에서 교양심리학을 가르치다 우연히 KBS 극본공모에 당선, 100여 편의 단막극을 썼다. 평범한 주부의 충동적인 살인을 통해 왜곡된 인간 내면을 서늘하게 파고든 첫 소설 『선량한 시민』으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60년에 걸친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미스터리와 결합한 장편소설 『2월 30일생』(2014), 연하의 남자와 기이한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소설 『네이처 보이』(2015)를 펴냈다.

김 작가는 이날 어떻게 소설가가 됐는지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대학원에선 심리학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3년간 강사생활을 했기에 사람 앞에 말하는 게 어색하진 않은데 김서진이란 이름이 지금도 입에 잘 안 붙어요. 이번 책의 초고는 너무 길었어요. 200자 원고지 1,700매를 1,200매로 줄였죠. 2017년 문재인 후보 대선 때 초고를 써 놓고, 구의원에 출마해 2018년부터 수영구의회 의원으로 줄곧 활동하다보니 바쁘기도 하고 써놓은 것은 마음에 안 들어 고민을 많이 했죠. 코로나 때 스무번 이상 고치다 지겨워 그냥 책을 내게 됐어요."

"제가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우연찮게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강사를 하면서 결혼·출산으로 한 학기 강의를 쉬어야 했죠. 낮에 TV를 봤는데 KBS 극본공모 광고가 나왔어요. 심심하기도 했고 당선작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점심 먹고 설거지 마치고 바로 공책에 뭔가 쓰기 시작했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야구를 보다 공이 외야에 닿는 걸 보고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지요. 근데 소설도 아니고 극본이어서 고교 참고서 희곡 편을 읽어보고 방송국에 원고 부치고 난 다음날 출산을 했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어요. 당선이라고. 돈이 이렇게 쉽게 벌리나, 내가 드라마 천재인가 착각을 한 순간이었죠. 유명한 노희경 김은숙 작가 같은 분은 이 업계에서 0.1%에 속하는 사람인데 그땐 이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죠. 미래를 알았다면 글을 안 썼을 거예요. 그래도 그 뒤 일이 끊이지 않았어요. 메일도 없을 때라 늘 원고를 고속버스 편으로 부쳤어요. '사랑과 전쟁' 원고를 많이 썼는데 유명하기는 하나 보람 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때마침 국문학을 전공한 지인이 1억 원 고료 소설 공모에 당선이 됐는데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해서 써보자고 해서 쓴 게 『선량한 시민』이죠. 이 소설은 영화 웹툰 번역본 판권도 갖게 됐어요. 그 뒤 소설은 물론 웹소설 미스터리도 3개 썼고 판권도 팔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어느새 환갑이 됐어요. 근데 지금 30년 전으로 돌아가면 직업작가의 길을 걷지 않을 것 같아요. 작가는 A, B, C 등급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요. 저는 타고난 재능부터 A급 작가가 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걸 지금은 알겠어요. 그래도 창작하는 즐거움이 있기에, 쓰는 맛이 있기에 버리지 못하기에 하는 거죠. 재능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는 힘들어요. 40-50대에는 왜 이렇게밖에 못되지 후회도 했는데 그래도 계속 쓸 수 있는 힘은 있는 것 같아 지금 다른 작품을 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대단한 것 하나는 써보자 했는데 지금은 잘 써야만 작가인가 못 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하루 A4 3장은 쓰고 있어요. 직업작가로서의 작가는 오늘도 자기 분량의 글은 다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달콤한 살인 계획』은 범죄소설에요. 어릴 때부터 저는 활자중독증이라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어요. 화장실 갈 때는 광고지라고 하나 들고 들어갔죠. 초등학교 5학년 때 성인물도 읽고 했어요. 근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마련됐어요. 엄마가 큰 결심을 하셨는지 당시 유명하던 계몽사 소년소녀문학전집 1~50권 중 절반인 26권~50권을 사다 주셨어요. 1~25권은 『알프스소녀 하이디』 같이 재미있는 게 많았는데 엄마가 사주신 책 가운데는 『셜록홈즈의 모험』 이 있었어요. 이 책은 4개의 섬 마을에서 벌어지는 원한 관계로 독화살을 써 4명을 죽이는 이야기로 『소공자』 『소공녀』 같은 이야기와 비교 안 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셜록홈즈는 근대의 상징인물이죠. 예전엔 살인은 하늘의 징벌을 받아야 할 죄였지만 셜록홈즈는 배후를 추리해 죽음의 미스터리를 인간 이성으로 해결하려고 했기에 근대 인간의 표본이었죠. 영국인의 인기 인물로 셜혹홈즈가 꼽히고 영국에 범죄소설이 많이 나온 것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근대 문화발전에 힘입은 것이죠. 또, 범죄소설은 여자가 많이 쓰고 좋아해요. 프랑스 범죄스릴러 영화 『태양은 가득히』 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등 많은 작가가 여성이에요. 남자는 액션 활극을 좋아하는데 비해 환경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한 여성은 범인이 잡히는 질서정연한 걸, 즉 추리해 범죄를 잡아내는 걸 좋아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추리소설이 그렇게 많이 발전하지 않았죠.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문제이죠. 사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아버지를 죽인 배다른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걸로 범죄를 배경으로 한 일반소설이죠."

"저는 유달리 범죄·공포영화를 좋아해요. 애 아빤 안 좋아하죠. 왜 난 그걸 좋아할까 다른 책이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범죄스릴러를 좋아하고 익숙해져서 그런가 봐요. 연애소설은 잘 안 써져요. 당초 이번 책의 원제목은 '칼끝'인데 편집자들이 너무 올드하다고 해 반어적 제목을 붙였대요. 제 책은 갑자기 사람 죽이기가 얼마나 힘들까. 매우 무력한 여자가 원한에 사로 잡혀 어떤 사람을 죽였으면 하는데 그 죽이기가 얼마나 힘들까. 이런 데서부터 뭔가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시작한 작품이어요. 소설 쓰는 것은 연애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처음엔 뭔가 확실한 것 같은데 나중에 회의가 오고 완성은 해야 하는데 완성하고 나면 꼴도 보기 싫어져요. 이걸 붙잡아온 시간이 아깝다. 그러다가도 다른 게 눈에 들어와 이번엔 진짜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앞의 것이 더 나았다는 생각도 들구요. 아무튼 고치고 쓰다보면 실패담이라도 남아있으니까요. 책이야기는 요까지. 질문 없으시면 빨리 마치고 가볍게 맥주라도 한잔 하러가죠."

구수경 인본사회연구소 사무처장=이 책 첫 소절에 '나는 불행했기 때문에 다른 곳, 아주 먼 곳, 그래서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버리고 싶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불행에 위안을 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표현을 첫 소절에 택했는지 궁금하다.

김서진 작가=원래는 첫 페이지 아닌데 이야기가 수정되면서 붙여 넣은 것이다. 기술적으로 홍진은 믿을 수 없는 화자이다. 독자는 화자 얘길 믿게 돼 있다. 작중 주인공 홍진과 화인도 뭔가를 확실하게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믿는 것에 비해 그 믿음에서 빠져나오기란 얼마나 힘든가. 화자를 믿어선 안 된다는 걸 붙인 이야기이다. 이 구절은 소설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걸 차용한 거다. 에밀 아자르는 가명으로 로맹 가리로도 알려진 리투니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이자 공군 비행사, 영화감독이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본명과 가명으로 두 차례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조정임 회원='사랑과 전쟁' 대본을 많이 쓰셨다고 했는데 불륜 고부 갈등 등 어떤 주제를 선호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김서진 작가=아무래도 불륜이 좀 더 재미있지 않나요.

조정임 회원=종교가 혹시 불교이신가요? 이 소설에 종교가 영향을 준 게 있나요?

김서진 작가=제 모태신앙은 천주교이고 까딱했으면 수녀원 갈 뻔했죠. 나중에 성당도 썩 재미는 없었어요. 소설 때문에 불교에 깊이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에요. 요즘엔 구글 검색하면 그 정도는 나오니까요.

김영춘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전 해양수산부 장관)=중간까지 읽으면서 몰입감을 느꼈어요. 후반 결과가 궁금하네요. 교보 매대에 책을 올리려면 출판사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죠. 홍보나 판매는 어떻게도 되고 있나요?

김서진 작가=출판사 나무옆의자가 빅5는 아니지만 10등 안에는 들어서 그런대로 나가는 편입니다. 예전의 『선량한 시민』의 경우 러시아 번역본이나 영화 판권도 팔렸어요. 이 책도 잘 됐으면 하죠.

최유규 회원=만일 이 책을 영화화한다면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배우가 있나요?

김서진 작가=네. 전 전도연을 모델로 썼으면 해요. 전도연 팬이거든요.

조정임 회원=반쯤 읽었는데 아직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던데요. 소설을 구성할 때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김서진 작가=전 얼개보다 더 촘촘하게 씁니다. 범죄소설은 누가 죽고 어떻게 죽고가 확실해야 해요. 소설은 어디서부터 그걸 보여줄지 상황에 대한 정리가 돼 있어야 하죠. A4 10-15장 정도로 줄거리를 촘촘히 써서 거기에 의지해 초고를 쓰지요.

이은숙 회원=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여성입니다. 10년 전부터 드라마 공모전에 응해봤는데 죄다 떨어졌어요. 네이버 웹에 7회 정도 드라마대본을 올리고 있는데 드라마 장르로 계속 글을 써볼까 하지만 아직 결과물은 딱히 없어요. 저 같은 아마추어 작가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

김서진 작가=작가로 성장하시려면 적어도 100회 이상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소재도 가령 불륜 같이 자극적인 소재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착한 주제는 묻히지요. 저는 '자뻑'이 있는 사람이 부러워요. 30년간 전 자괴감이 있었어요. 저 사람은 잘 못 쓰는 것 같은데 책은 왜 잘 팔리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구요. 근데 이제는 글을 안 쓰면 인생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구의원 임기도 2년 남았는데 앞으로 글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에요. 아무튼 남은 인생 여한 없이 글을 계속 쓸까 해요. 굳이 조언을 하자면 글은 규칙적으로 써야 합니다. 하루 30분, 1시간부터 2시간으로 늘리고. 좋은 생각나면 메모하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쓰시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쓰는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니까요.

『달콤한 살인 계획』의 줄거리는 이러하다(교보문고 책 소개 참고).

남편의 육체적 폭력과 정서적 학대에 시달리다 어느 날 약에 취한 그의 칼에 아이마저 잃고 만 홍진. 혼자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아무 생각도, 행동도 없이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증상인 ‘경직성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는다. 살면서 뭔가 하고 싶다는 욕망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홍진은 퇴원한 뒤에도 산속 깊은 곳의 절에서 매일의 예불과 스님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며 오랫동안 속세와 단절된 채 쳇바퀴 돌 듯 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주지스님의 부탁으로 홍진과 거처를 함께하던 여중생 소명이 죽음을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로 수사가 종결되지만, 직접 쓰지 않고 프린트한 유서나 누군가 일부러 주머니에 넣어놓은 듯한 임신테스트기 등 석연치 않은 점 투성이이다. 홍진은 소명의 짐에서 우연히 살인범의 증거를 발견하고, 범인 이지하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한 뒤 절에서 나와 속세의 삶으로 복귀한다. 그녀는 옛날 남편과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이지하가 운영하는 대형 휴대폰 대리점의 근처에 정육점을 개업한다. 주스에 농약을 타거나,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이지하를 죽이는 계획을 세우지만, 세상 물정에 극히 어둡고 단순한 논리적 사고에도 어려움을 겪는 그녀의 어설픈 시도들은 우스꽝스러운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이지하를 미행하던 홍진은 그의 동창회에 참석한 화인의 농담을 엿듣고 그에게 다가가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경찰인 화인은 홍진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자일 것이라 추측하고, 범죄 예방 차원에서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동향을 살핀다. 그렇게 마주침을 반복하던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함께 홍진의 집에서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묘한 친밀감을 형성해나간다. 그러던 중 이지하가 실종되는데…….

인본사회연구소는 다음달 8월 31일(토) 하계 워크숍으로 45인승 버스를 이용해 경남 거창 수승대 트레킹 및 양민학살추모공원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9월 금요인문학은 9월 20일 오후 6시 30분 인본사회연구소 대강당에서 『나의 클라리넷 이야기』(2023) 저자인 문석환 문클라리넷 대표를 초청해 '북+콘서트'를 연다.

참가 문의는 인본사회연구소 015-818-9747로 하면 된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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