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없는 산업은 야만'이라고 주장한 인도미술사가 아난다 쿠마라스와미(왼쪽)와 청년들의 창의적 노동과 여가를 강조한 미국 소설가 폴 굿먼. 출처: 위키피디아.
E.F.슈마허는『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토지와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오로지 생산요소로만 취급하는 한 끝없는 혼동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자신이 만들지도 못하고 만들 수도 없으며, 한번 파괴되면 재창조할 수도 없는 것을 자신이 만든 것과 똑같은 방식과 정신으로 취급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이다”고 지적했다. 고등동물은 그 효용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갖지만, 그 자체로 메타경제학적 가치도 갖는다는 것이다.
슈마허는 “효용 면에서 자동차와 동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 즉 존재 수준의 차이를 보지 못한 채 양자를 효용계산에 따라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면, 이는 형이상학적인 오류이며, 현실적으로도 아주 심각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이 기본이고 산업은 부차적인 것”이라며 “인간은 산업이 없더라도 살 수 있지만 농업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강조하고 했다.
농업생산에는 소득산출과 비용절감 이상의 그 무엇, 즉 인간과 자연의 모든 관계, 사회의 모든 생활방식, 인간의 거주지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 행복, 조화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마허는 특히 인간의 토지관리가 무엇보다 건강, 아름다움, 영속성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네 번째 목표인 생산성도 절로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생산성만을 목표로 인정하는 게 문제라고 슈마허는 지적했다.
슈마허는 “농업은 살아 있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넓은 의미의 인간의 서식지를 인간화하고 고귀한 것으로 만들며, 적당한 생활에 필요한 식량 및 기타 원료를 생산하는 것, 이 세 가지 과제가 모두 중요한데 이중 세 번째 과제만을 인정하면서 이 과제를 무자비할 정도로 폭력적인 방법으로 추구하고, 다른 두 과제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반대하는 문명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대규모 기계화와 화학비료 및 농약의 대량사용이 빚어낸 농업의 사회구조는 인간이 살아있는 자연과 진정으로 접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슈마허의 사고는 오늘날 디지털시대 사이버공간에서 전개되는 많은 일들이 결국은 농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 위에 이뤄지지 않으면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내다본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래의 ‘농자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정신의 독일판이 아닐까 싶다.
슈마허는 『내가 믿는 세상』에서 “나는 우리가 토지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간단한 문제에 우리의 전체 생활방식이 관련되며, 토지와 관련된 우리의 정책이 정말로 변화되기 전에 종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철학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슈마허는 “토지투기를 근절해야 한다. 그렇지만 토지국유제를 채택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며 공산주의방식은 부정하면서도 “어떤 토지 소유자도 그 토지의 등록된 가치 이상을 가질 수 없다는 규칙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F.슈마허는 토지 매매 시에 가격 차이를 지방당국이 그 차액을 환수하는 ‘지방당국 토지기금’이라고 하는 특별기금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특히 오늘날 아파트재개발, 재건축 등 개발과정에서 생긴 ‘부당이득’ ‘개발이익’을 환수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을 40여년 전에 제시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한편 슈마허는 엄밀한 의미에서 ‘실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봤다. 실업이란 ‘이용 가능한 노동을 이용하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이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슈마허는 불교경제학에서 노동의 역할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인간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 둘째,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통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자기중심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 셋째,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기계화도 인간의 숙련과 능력을 높이는 기계화와 인간의 일을 기계라는 노예에게 건네주고 인간을 그 노예에 대한 봉사자로 만들어버리는 기계화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마허는 『굿 워크』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것처럼 “일의 즐거움이 없으면 삶의 즐거움도 없다”고 강조했다. 쓸모 있는 기계가 늘어나면 쓸모없는 사람도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스리랑카 출신의 인도미술사가인 아난다 쿠마라스와미(Ananda Coomaraswamy)가 ‘예술 없는 산업은 야만’이라고 한 말에 대해 공감하면서 예술 없는 산업은 노동자의 영혼과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쿠마라스와미는 “예술가가 특별한 부류의 인간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특별한 부류의 예술가이다”라고 말했는데 슈마허는 이것이 바로 좋은 노동의 형이상학이라고 높이 샀다.
또한 슈마허는 『내가 믿는 세상』에서 『타임스』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을 읽고 한숨 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지나쳐버리는 세태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단테는 지옥의 광경을 묘사하면서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정신없이 반복되는 작업의 지루함을 포함시켰을 것도 같다. 그것은 창의성을 파괴하고 머리를 썩게 한다. 그런데도 수백만 명의 영국 노동자들은 대부분의 일생을 그 일에 투입하고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슈마허는 “정신 나간 일이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지식이 이렇게 많고 과학이 이렇게 눈부시게 발달했고, 우리의 손에 이렇게 놀라운 기술적 재간이 있는데도, 현재 창조적․생산적 노동의 기쁨을 박탈당한 저 수백만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확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슈마허는 또 “폴 굿먼(Paul Goodman, 미국의 사회비평가·소설가, 1911-1972)이 말한 대로 수백만 명의 청년들이 어리석게 성장하고 있다면, 혹은 수백만 명의 남녀가 그들 생애의 대부분을 창의성을 파괴하고 두뇌가 썩게 하는 일을 하도록 저주받는다면, 혹은 대부분의 유익하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이 거대한 법인체의 통제를 받는 기계에 넘겨지는 한편, 사람들-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여가활동에서 자아를 발견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슈마허가 한 말이다. 오늘날 ‘회사인간’ 나아가 ‘사축(社畜)’이란 말이 난무하는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에서 진정한 노동과 여가의 의미가 무엇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과 그의 저서 '강아지똥' 표지. 출처: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일과 재미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불현듯 10여 년 전에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생각이 난다. 권정생 선생(1937-2007)은 동화작가, 수필가, 시인으로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로 잘 알려진 분이다. 그는 안동의 작은 교회 종지기로 살았는데 한평생 참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산 분으로 유명하다. 동화 작가로서 많은 인세를 받아 왔지만, 1983년 이후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강아지와 둘이서 살다 2007년 71세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녹색평론 김종철 대표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2001년도 11월에 시작된 MBC-TV의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권정생 선생의 책을 프로그램에 소개하려고 섭외를 할 때였는데 권 선생에게 직접 연락이 안 되자 출판사 대표인 김종철 교수(전 영남대)께 연락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책을 소개하려고 방송국에 줄을 대려고 애쓰던 때이고 한 번 소개됐다면 수만에서 십만 권의 책이 팔리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김 대표가 권 선생을 만나 여차여차 이야기를 하니 권 선생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책을 꼭 집어 소개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책방에서 가서 책을 찾아 읽는 재미를 빼앗아버리면 되는가?” 그래서 김 대표는 방송국에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거절했다고 한다. 참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정말 일을 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그런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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