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에서는 개들이 한꺼번에 짖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주로 실내에서 개를 가둬 키우는 데다 일부는 성대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주위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는 동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들이 동시에 짖어대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개과에 속하는 대부분의 종들은 으르렁거리거나 소리를 길게 뽑으며 울부짖지만 경쾌하게 ‘멍멍’ ‘컹컹’하고 짖는 것은 개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한다.
생물학자인 스티븐 하트가 지은 『동물의 언어』(김영사, 1996)에는 그 이유가 소개돼 있다. 미국 햄프셔대학의 레이먼드 코핑거와 마크 파인슈타인 교수는 ‘개들이 짓는 이유’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그들은 개가 ‘멍멍’ 짓는 이유가 음식물 찌꺼기를 먹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개의 화석은 대략 1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유적에서 인류의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데 이들 교수는 이 개들이 그 전부터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찾아 먹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인류가 개를 일부러 길들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이러한 개들 중 일부를 잡아먹었을 것인데, 대신 개들이 사람의 야영지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찌꺼기를 주워 먹으며 살아가는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스스로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 교수는 인가 주변이라는 환경이, 길들일 수 있는 동물과 길들이기 힘든 동물을 선별하는 기능을 했다고 분석한다. 그 중 두려움이 많은 개는 찌꺼기 중에서 가장 질 좋은 것에 접근하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겠지만, 유순한 개는 찌꺼기 더미에 거리낌 없이 접근할 수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개의 생활방식에 적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된 개는 인가 주변에 정착하게 됐는데 이 경우 그런 개가 가진 순진함과 같은 ‘어린 동물의 형질’이 다음 세대로 더 많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꼬리를 치거나 갑자기 앞다리를 굽혀 팔꿈치로 상체를 받친 다음 머리를 낮추고 눈으로 노려보는 장난기 어린 자세도 어린 동물의 유순함이 몸에 배여 있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생태학자 칼 사피나는 『소리와 몸짓』(돌베개, 2017)의 ‘늑대와 개’라는 장에서 ‘개는 모두 길들여진 늑대’라고 말한다. ‘길들여졌다(domesticated)’는 말은 야생의 선조로부터 선택적 번식에 의해 유전적으로 변화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모든 개는 야생의 회색늑대에게서 길들여졌다. 어느 정도는 인간과 개가 공동진화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에게 의지하게 되었으며, 개 의존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코넬대 애덤 보이코 교수는 개와 인간은 같은 종류의 강박장애를 여러 개 가지며, 동일한 항우울제 약물, 세로토닌 재흡수 금지제 같은 약물에도 비슷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개가 멍멍 짖고 주인을 보고 꼬리치는 것은 주인의 마음을 끌기 위한 것이고, 낑낑대면서 문을 긁거나 갈기도 하는 것도 주인에게서 떨어지는 불안한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개는 다른 동물에 비해 태생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 이러한 면에서 개는 사람에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나 할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중략)/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만큼 기쁨이 되는지~’. 기독교 복음성가류에 속하는 노래지만 여기에 사람대신 반려동물을 넣어도 될 듯하다.
최근 아내가 지인과 통화하는 걸 곁에서 들었는데 너무 슬퍼하는 목소리여서 가족 중에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함께 오래 살던 반려견이 죽었다는 것이다. 요즘 반려견은 가족 이상이다. 가족처럼 장례를 치르기도 하고 오래 추억한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집도 개를 길렀다. 이른 바 똥개였다. 강아지 때부터 늘 함께 뒹굴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니 누렁이가 없었다. 대신 부엌에는 못 보던 커다란 대야가 놓여 있었다. 나는 대성통곡을 하고 끼니를 거르며 어머니한테 항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틀 쯤 뒤면 다시 새로운 강아지 한두 마리가 들어왔다. 이렇게 귀여워하다 헤어지고 그렇게 초중학교를 보냈다. 당시 개는 애완견이면서도 가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개는 반려동물이자 사실상 가족으로서의 지위를 얻고 있다. ‘엄마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현재 지자체에서 동물보호 업무를 맡고 있는 이소영의 『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뜨인돌, 2020)를 보면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동물’을 뜻하며,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처음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이 장난감처럼 소비하는 의미가 강한 애완(愛玩)동물(pet)대신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2018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및 양육 현황 조사보고서」(문화체육관광부·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응답자의 81.3%가 개를, 20.1%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 외 ‘새, 물고기, 파충류, 햄스터, 고슴도치, 토끼’ 등의 동물을 반려의 목적으로 양육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 합쳐도 5% 남짓이었다. 이는 보편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반려동물의 의미를 정확히 획득하고 있는 동물의 종은 개와 고양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연구해온 마고 드멜로 박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반려동물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그들에게는 이름이 있다. 어떤 동물에게 자신만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반려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말을 걸며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반려동물과 사람의 관계가 엄마-아이의 관계와 같다. 보호자는 반려동물에게 엄마의 말투나 아이의 말을 사용하며 반려동물을 ‘우리아이’라고 부르고 그들을 아이처럼 안아준다는 것이다(Archer, Why do people love their pets?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Volume18, Issue 4, July 1977, pp.237-259.)
인간과 동물 관계의 세계적 권위자인 할 헤르조그 미 웨스턴 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교수는『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살림, 2010)에서 미국의 경우 개 주인의 90%가 자기 애완견을 식구로 여긴다고 밝혔다. 미국 동물병원협회(AAHA)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여성 중 40% 이상이 남편이나 자녀보다 개에게서 애정을 더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미국 성인 열 명 중 한명이 개를 두려워하고, 개는 한밤에 소음을 내기도 해 이웃 간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보통 한 해에 미국인 450만 명이 개에게 물리고, 20명 정도가 개 때문에 사망하는데 사망자 대부분이 어린이라고 한다. 매년 버림받은 개 200만~300만 마리가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는 ‘주택·준주택 등에서 반려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2개월령 이상의 개’를 ‘등록대상동물’로 정의함으로써 보호자의 동물 등록을 의무화하고, 법 제도 안에서 반려동물을 보호 관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등록대상동물에 고양이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이라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동물이 아닌 다른 종의 동물을 반려가족으로 선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양육하며 교감하는 과정에서도 반려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동일하게 다해야 한다. 각종 보고서에 기타로 집계되는 단 1%의 비율일지라도, 그 생명이 가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캐나다의 동물보호활동가인 로브 레이들로는 『개에게 인간은 친구일까?』(책공장더불어, 2011)에서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개 중 약 45%만이 사람과 함께 살고, 나머지 개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산다고 말한다. 그는 반려견을 입양하려면 유기동물 보호소나 동물보호단체가 운영하는 곳에 문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제안한다. 강아지공장에서 번식용 부모개들에게서 태어난 강아지를 사지 말고 입양할 것을 권한다. 2010년 캐나다 리치먼드시는 펫숍에서 강아지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아 키우던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지난 8일 행정안전부에 반환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서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했을 당시 풍산개 한 쌍을 개인이 아닌 ‘국가 원수 자격’으로 받았기에 곰이와 송강이는 현행법상 대통령기록물에 해당돼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 그런데 관련 근거 조항이 없는 상태에서 전·현직 대통령 간의 ‘양해’로만 문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키워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데서 국가 반환 의사를 밝혀 현재 곰이와 송강이는 경북대 동물병원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우리’와 ‘두리’를 받았는데 이 개들은 청와대 관저에서 5개월 정도 기른 뒤 서울대공원으로 이관 처리한 바 있다.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증 받은 시베리아 호랑이 두 마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들여온 팬더 한 쌍도 각각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에서 관리하고 있다.
헤럴드경제(2022년 11월 14일)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이 이들 풍산개를 관리할 기관을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광주 우치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새끼 '별'과 상봉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는 뉴스도 있다. 대통령기록관은 최근 곰이와 송강이의 새끼 6마리를 분양한 서울, 인천(2마리), 대전(2마리), 광주 등 지자체와 동물원에 부모견도 맡을 수 있는지 의사를 물은 결과 광주 우치동물원이 사육의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우치동물원에서는 새끼 중 한 마리인 ‘별’을 기르고 있는데 방침이 확정되면 5∼7일 정도 공간 확보, 사육자 선정 등 준비 기간을 거쳐 곰이와 송강이를 넘겨받을 예정으로 풍산개의 가족상봉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지난 9일 인스타그램에 “모든 사달의 원인은 국가원수들끼리 주고받는 ‘동물선물’이 문제”라며 “이미 서구 유럽은 국가 원수들끼리 동물을 주고받는 관례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에 우리나라는 아직 대통령이 퇴임할 때마다 생명을 선물이랍시고 주고받은 동물들의 사후처리를 놓고 매번 사회적 홍역을 예외 없이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데일리, 2022년 11월 15일).
사람에게 가족만큼이 소중한 반려동물. 이제는 사랑하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동물을 만나야 할 것 같다. 또한 반려동물 외에도 인간과 관계하는 수많은 동물들을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인간으로서 인간끼리는 물론 동물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살아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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