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도시를 보면 답답하다. 산, 강, 바다, 온천의 사포지향(四抱之鄕)이라는 천혜의 자연을 가진 부산은 어느새 토건사업으로 인한 난개발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부산의 명산과 해안선을 망치는 초고층건물의 난립, 외형 치중의 국제행사, 토목사업 중심의 도시계획, 낙동강하구의 자연훼손 등으로 부산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는 말뿐 실제 도시행정은 20-30년 전의 성장제일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속가능한 도시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유엔개발계획(UNEP)이 내거는 기치가 ‘선례에 의한 발전(Development by Good Examples)’이다. 오늘날 세계적 환경수도인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나 브라질의 꾸리찌바 등 이른바 ‘선진 환경도시’에는 환경마인드와 실행력을 갖춘 뛰어난 도시경영자가 있었다. ‘독일의 환경수도’라고 불리는 프라이부르크의 롤프 뵈메 전 시장, 새롭게 떠오른 `독일 환경수도 하이델베르크'의 베아테 베버 전 시장, ‘생태수도 꾸리찌바’의 자이메 레르네르 전 시장, 가까이 일본 가마쿠라시의 다케우치 겐 전 시장의 ‘환경 리더십’은 지금도 돋보인다. 논어에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 즉 길가는 세 사람 가운데 반드시 배울 스승이 있다는 말이다. 어쨋든 제대로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가 있기까지는 롤프 뵈메(1934-2019)라는 시장이 있었다. 옛 서독 연방정부의 국책사업이었던 비일원전 건설계획을 저지한 프라이부르크시는 탈원전 에너지자립도시의 길을 추구했다. 그 결과 프라이부르크는 1992년 독일연방의 환경수도로 선정됐다. 뵈메 전 시장은 1983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8년 임기의 시장을 3번이나 당선돼 활동해오다 20년 되는 해에 스스로 사임했다. 그는 법학박사로 조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2년부터 10년간 사민당 연방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98년에는 연방 재무부 차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프라이부르크를 태양도시로 만들었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원전사고 이후인 1986년에는 에너지자립을 기본으로 한 ‘시 에너지 공급기본 콘셉트’가 시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프라이부르크의 에너지자립 정책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에너지절약 정책이다. 에너지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시가 ‘절전형 전구’를 각 가정에 보급하거나 ‘에너지절약 주택’을 개발 보급하는 시책을 폈다. 둘째는 에너지효율화 정책이다. 천연가스를 이용해 지역발전을 했다. 셋째는 에너지다양화 정책이다.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의 자연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폈다. 프라이부르크시는 1992년부터 아예 시의 공공건물이나 시가 대여하거나 매각하는 토지에 건축되는 모든 건물에 대해 ‘저에너지 건축’만을 허가하는 조례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시는 태양도시이기도 하다. 시민 1인당 태양광발전장치 시설수가 독일에서 가장 많다. 이곳의 드라이잠축구경기장 서쪽 스탠드에는 시민참여형 태양광발전장치가 설치돼 있다. 프라이부르크 외곽의 문찡겐 지역에는 시가 분양하는 태양광 주택단지인 ‘솔라가든’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곳엔 태양전지 패널 생산회사인 ‘졸라 파브릭’이 있다. 교통정책으로도 도심지내 ‘자동차 진입금지구역’ 확대와 ‘중앙로를 제외한 전 도시 제한속도 30km’ 및 ‘파크 앤 라이드’의 실시 그리고 지역정기환경권인 ‘레기오 카르테’ 발매 등으로 대중교통시스템을 확립했다.
롤프 뵈메 시장의 후임은 디터 잘로몬 시장이다. 그는 42세이던 2002년 5월 시장선거에서 64.4%를 얻어 당선됐다. 프라이부르크대학 출신으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프라이부르크시 의회 의원을 역임했고, 1992년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의회 의원에 선출됐으며, 2000년 4월에는 녹색당 브라이부르크지부장을 지냈다. 그 동안 독일에선 녹색당 출신이 연방의회 의원이 된 사례는 많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잘로몬 시장은 시정의 우선 목표를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두었는데 그 가운데 환경산업을 첫손으로 꼽았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프라이부르크에는 대학과 연구소가 환경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부르크와 함께 독일의 새로운 환경수도로 떠오른 하이델베르크시에는 베아테 베버(1943~) 시장이 있었다. 그는 지난 1990년 인구 14만 명인 독일 하이델베르크시의 첫 여성시장으로 당선된 뒤 1998년 재선에 성공해 2016년까지 재임했다. 베버 시장은 하이델베르크대학을 졸업해 10여 년간 초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1970년대 이후엔 사민당 당원으로 75년부터 85년까지 하이델베르크시 의회 의원, 70년부터 90년까지 유럽회의 의원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독일 텔레비전 ZDF의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됐으며, 2002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개발 정상회의에도 참여해 하이델베르크시의 환경사례를 세계에 소개했다.
환경주의자인 베버 시장은 주로 환경보호, 소비자보호, 남녀평등, 행정개혁, 시민참여, 도시계획 등에 관심을 갖고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는 하이델베르크를 자동차 도시에게 자전거천국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이 도시를 ‘대화의 도시’로 만들었다. 시는 경제계, 시민단체와 함께 교통문제 원탁회의로 해결책을 찾았다. 기후보호에 있어서도 1995년부터 건축가 건축업자 환경단체 등이 모인 에너지원탁회의에서 기후보호구상을 바탕으로 에너지절감계획에 관해 협의했고, 여성들은 ‘미래 워크숍’에서 ‘인간에게 친한 하이델베르크구상’을 냈고, 지속가능한 하이델베르크 만들기 모임은 ‘로컬 아젠다 21’을 만들었다.
그는 1990년 시장이 된 뒤 당시 도시계획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94년 지속가능한 개발을 향해 2010년의 하이델베르크의 모습을 그리는 새로운 도시개발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기후변화와 교통계획에 중점을 둔 지속가능한 도시개발계획은 ‘에코예산(Eco Buget)’의 조성을 요구했다. 에코예산이란 재정예산과 인력관리를 보충하는 천연자원의 사용을 위한 관리시스템이다. 2002년에 하이델베르크시 개발계획의 시행을 처음으로 평가하는데 성공했다. 시는 에코예산 절차를 통해 ‘환경의 질’의 목표를 세우고, 에너지절감조치를 통해 도심 빌딩의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기를 유도해왔다. 하이델베르크는 1993년에 비해 도심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30% 이상 줄이는데 성공했다. 또한 1986년에 비해 도심의 질소산화물(NOx)의 배출을 65% 이상 줄이고, 1990년에 비해 음용수 소비를 12% 이상, 생활쓰레기를 49% 이상 줄이는데 성공했다. 베버 시장은 2005년까지 CO2 30% 삭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과 모임을 70회나 가지면서 시민의견을 수렴했다고 한다.
브라질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만든 사람은 자이메 레르네르(1937-2021) 꾸리찌바 전 시장이다. 1971~74년, 1979~83년, 1989~1992년 빠라나주 꾸리찌바 시장을 3번 역임했고, 1994년 파라나주 지사로 선출돼 1998년 재선에 성공했다.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인 레르네르 전 시장은 쿠리치바의 대부분의 도시 산책로, 도로, 대중교통 마스터블랜을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 레르네르 시장의 ‘사람제일주의’ ‘통합적 도시계획’ ‘광범위한 지속가능성 추구’ 철학은 도심진입 자동차를 줄이고 여가공간, 보행자공간, 보행자천국을 조성하는데 주력했다. 1980년대 지하철 건설 대신 10분의 1의 비용으로 급행버스 노선을 편리하게 정비하고, 랑구아 폐탄광에 공공디자인으로 물을 끌어들여 호수공원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빠라나주의 주도로 브라질 남부의 주요 농업지역이던 꾸리찌바는 1970년대와 80년대 물리적 경제적 인구성장으로 주요공업 및 상업중심지로 변모했고, 인구도 지난 30년 동안 1백60만명으로 증가해 도시문제를 노출했다. 그러나 레르네르 시장은 ‘전략적 비전’을 갖고 주민의 생활 향상과 종합적인 플랜에 중점을 두고, 도시의 사회통합, 접근성, 어메니티, 도시 투명성,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해 실천한 결과 꾸리찌바를 브라질의 ‘생태수도’로 만든 것이다.
꾸리찌바는 하루 평균 2백만명이 이용하는 모델교통시스템을 구축했다. 타 지역보다 1인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많고 1974년에 비해 인구가 2배 늘어났지만 자동차 교통량은 30% 감소했다. 대기오염도 브라질에서 가장 낮고 자전거도로가 200㎞ 정도 되며 중심가는 보행자천국으로 만들었다. 28개의 공원이 있어 도시의 5분의 1이 녹지공간이며 시민이 녹지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면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꾸리찌바 공무원들은 시가 강력하고 지속적인 행정력, 디자인 능력을 갖고 계획부서가 이를 전략적 목표와 지속적으로 일치시키는 노력 그리고 환경 교통 에너지 등 도시계획의 통합, 그리고 무엇보다 창의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아이디어의 창출이야말로 꾸리찌바의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박용남, 『꿈의 도시 꾸리찌바』, 2006)
독일에 프라이부르크가 있다면 일본에는 가마쿠라가 있다. 일본 가마쿠라는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를 배워 이를 실행한 도시이기도 하다. 지난 1995년 말 당시 다케우치 겐(竹内謙, 1940-2014) 가마쿠라 시장은 ‘환경지자체의 창조’를 선언했다. 다케우치 시장은 1994년 환경지치체의 헌법이라고 할 ‘환경기본조례’를 제정한데 이어 1996년 ‘환경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1992년 기준의 CO2 배출량을 2005년까지 20% 삭감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종래의 환경정책은 행정의 일부분으로 중시되어 왔지만 환경지자체라는 개념에선 ’전 분야‘에 걸쳐서 실시하며 시가 ’솔선수범‘하고 기획단계에서부터 ’시민참여‘를 통해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가마쿠라시의 발상은 아사히신문의 환경저널리스트이자 논설위원이었던 다케우치 겐가 1993년 ‘환경자치체의 창조’를 공약으로 출마해 시민단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시장에 당선된 이래 꾸준히 추진해온 것이었다. 다케우치 시장은 2001년 퇴임하기까지 8년간 재임했다. 시 환경기본계획에서는 이산화탄소배출량의 20%를 삭감하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모두 6개 분야에 걸쳐 18개 목표로 나눴고 18개 목표 중 5개는 2005년을 목표연도로 삼아 구체적인 수치목표를 제시했다.
다케우치 시장은 재임시절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롤프 뵈메시장을 가마쿠라시에 초청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갖는 등 프라이부르크 배우기에 앞장섰다. 그는 환경지자체의 창조를 위해 1995년 시청이 먼저 ‘에코오피스운동’을 전개해 1년간 종이휴지 31%, 음식물쓰레기 61%, 전기 가스사용량 7%를 줄였다. 시는 2001년 ‘쓰레기반감도시’를 선언, 가연성 쓰레기를 1995년 실적 7만t에서 2005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교통 억제계획으로 ‘파크 앤 라이드’정책을 도입했다. 가마쿠라지역의 주변부의 주차장을 활용해 자동차이용자를 철도, 버스로 전환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가마쿠라 자유환경 티켓’을 발매했다.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절약을 통해 가마쿠라시의 1인당 전력구매량을 2005년까지 2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공공시설에 태양광발전 도입시설을 확충했다. 또한 ICLEI 등 국제환경네트워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환경시민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서 20~30여년 전 세계적인 환경도시로 알려진 독일이나 브라질, 일본의 선진 도시를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도시는 환경마인드를 가진 단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장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시민의 지혜를 모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본다. 각종 위원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관파트너십 혹은 굿거버넌스가 가능해야 한다. 둘째 개발과 보전에 대한 균형된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에 제동을 걸고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단체장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시대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에 맞추려면 하드웨어만이 아닌 소프트전략에 신경 쓰는 단체장이 돼야 할 것 같다.
물론 정치는 정치인 한 두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정치 아닐까. 그러나 대통령,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그 자체가 그 나라, 그 도시의 표상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한표 한표로 제대로 된 일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선진 환경도시의 단체장은 바로 깨어있는 시민들이 뽑은 것이기 때문이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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