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 포르투를 떠나 리스본 가는 길이다. 순례의 마지막 길이기도 하다. 한결 발걸음이 가볍다. 비온 뒤의 상쾌함 때문일까. 아니면 끝을 향해 가는 안도감 때문일까...
사실 리스본까지는 보름쯤 걸리는 거리다. 무한정 걷기에는 마음이 급해진다. 삶의 일상도 기다리고 있다. 걷는 순례는, 조금 줄여 코임브라(Coimbra)를 지나 투마르(Tomar)에서 마감하기로 한다. 대신 순례의 종착지이자 대항해 시대의 출발지인 리스본에서 며칠 더 머물기로 한다. 끝과 시작의 의미를 더 보듬기 위해서다.
코임브라 가는 길은 산 길이 많다. 산을 넘고 고개를 올라야 마을이 나온다. 만나는 순례자도 점점 뜸해진다. 드문드문 만나는 순례자들은 서로 더 반가워 한다. 그냥 인사만 나누기에는 너무 아쉬워 노변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눈다. 다들 끝없는 순례길에서 사람이 그리워진 걸까...
저녁 무렵에 도착한 코임브라는 역시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리스본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포르투갈의 수도였다. 옛 영광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무엇보다도 코임브라 대학교가 그 중심이다.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한 언덕 위가 대학이다. 1290년에 설립된, 유럽의 초창기 대학들 중 하나다. 자유로운 지성과 포르투갈 정신을 대표한다. 도서관의 규모와 장서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다. 검은 망토로 유명한 교복은 긍지의 증표로 모두가 부러워 한다.
몬테규 강은 코임브라 시내를 감싸면서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이 강을 따라 순례자는 남쪽으로 또 다시 순례길을 나선다.
투마르 가는 순례길에서 한번씩 들러는 별도의 순례지는 파티마(Fatima)다. 기독교 신자라면 이 곳만을 목표로 올 정도로 주요 성지 중 하나다. 1917년 5월 13일 한적한 시골 파티마의 들판에서 어린 목동 셋이 성모형상의 여인을 보게 된다. 이 성모발현을 계기로 성당을 짓고 기독교 정신의 성지로 만든 것이다.
리스본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이정표는 노란 화살표인데, 그 역 방향은 파란 화살표다. 이 표시가 원래는 파티마로 가는 순례길 이정표란다.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산티아고 순례의 정신과 상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파티마를 다녀 온 후, 또다시 고도(古都) 투마르로 향하는 순례길을 나선다. 들판의 풍경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국경도시 발렌사에서 코임브라까지는 주로 포도밭이 보였는데, 코임브라 이후
부터는 올리브 나무가 주다. 과일도 감나무에서 귤로 바뀌고 있다. 야자수도 자주 보인다. 투마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투마르 성(城)은 시기나 규모 면에서 건축사에서도 중요하다고 한다. 원래 9세기 경에 아랍사원으로 지어진 것이 기사단의 활동 본진으로 바뀐다. 때로는 왕의 대관식이 열리던 곳이기도 하다.
겨울 카미노라 알베르게에 나 혼자 쉬고 있는데, 늦은 저녁 무렵 지친 몸으로 한 청년이 들어온다. 리스본에서 출발해 5일째 되는 날이란다. 울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성후 군이다. 3개월 순례길에서 처음 제대로 애기해보는 한국인 순례자다. 저녁을 같이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 요즘 대학생들의 주된 관심사와 고민도 알게 됐다.
웬 카미노냐고 물었다.
"대학 마지막 학년 복학에 앞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순례길을 나섰어요. 카미노도 제 스스로가 필요로 할 때 다가오더라고요. 그냥 걸으면서 청춘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고 싶어요" 한다.
그렇다. 모든 일은 필요로 해야 진정으로 다가오고, 절실해야 이루어 지는 법... 그 날 저녁 투마르 강변의 고풍스런 어느 식당에서 식당주인이 내주는 하우스 와인을 밤새워 마셨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늘 미래에 대한 고뇌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 아들이 오버랩 된다. 아들아, 세상이 힘 들거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번 걸어보게나...
나는 지금, 리스본의 테주 강(Rio Teju) 항구에 와 있다. 투마르에서 순례길을 끝내고 열차로 리스본으로 온 후 곧장 달려온 곳이다. 내가 먼 순례의 종착지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벨렝(Belem)지구... 이 곳이 어 떤 곳인가? 여기에 '해상왕' 엔리헤 왕자(Infante Dom Henrique)가 있고, 질 이아네스(Gil Eanes)가 있고, 콜롬보(Colombo)와 디아스(Dias)가 있다. 대항해 시대의 정점을 찍은 바스쿠 다 가마(Vasko da Gama)가 있고, 이름모를 프론티어들이 노닐고 잠든 곳이다.
1430년대, 모두들 바다의 끝은 보자도르 곶(Cabo Bojadoro)이라고 믿고 있을 때, 그들은 목숨을 내걸고 머나먼 항해에 나선다. 도저히 상상도 못하던 희망봉도 넘는다. 드디어 1497년에 인도 서해안에 다다르고, 이어 남중국, 동 티무르, 일본까지 진출한다. 16세기는 가히 포르투갈 제국의 시대다. 그 때 테주 강에는 2000석 이상의 배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한다.
대서양의 조그마한 변방의 나라 포르투갈이 로마 이후 처음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거친 대서양과 싸워 이긴 것이다. 엔리헤라는 미래를 보는 비전을 가진 걸출한 리더가 있고, 바다와 함께 살고 죽는 불굴의 포르투갈 민족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래서 국민시인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는 "바다는 포르투갈인의 눈물"이라 노래한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이 테주 강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스페인과 싸워 독립을 이루어 냈고,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 낸 나라다.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노래 파두(Fado)가 있고, 아즐레주 양식과 독특한 길 포장과 그래피티로 도시를 장식하는 특유의 미학도 갖고 있다. 포르투 와인도 있고, 고유의 맛있는 음식도 있다.
역사는 변화한다.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때로는 돌고돌기도 한다. 그 진화의 중심에는 시대정신이 있고, 그것을 구현해 내는 리더가 있다. 왠지 우리와 많이 겹쳐 보이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우리의 새로운 행진을 기대해 본다. 장장 2000km의 순례가 한낱 한 순례자의 개인취향으로 끝내서는 안 될 일이다.
리스본 테주 강 너머 대서양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순례를 끝낸다. 2018년이여, 산티아고 순례길이여, 이제는 아듀!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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