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시인의 단시조 산책 (61) 한끼 - 옥영숙
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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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2:21 | 최종 수정 2022.12.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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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옥영숙
아프다,
새벽 세시 반
쌀 씻고 밥을 한다
슬프다,
사는 것이
밥 먹는 일이라니
기쁘다,
잘 사는 것이
밥 잘 먹는 일이라서
옥영숙 시인의 <한 끼>를 읽는다. 하나의 주제로 각 장마다 변주를 일으켜 독자의 관심과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시조의 정형미학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패턴이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려면 상당한 내공을 요한다. 화자는 각 장의 한 끼마다 각기 다른 입장과 정서를 부여한다.
초장의 아프다고 함은 밥을 짓고 있는 자기 혼자만의 아픔은 아닐 것이다. ‘새벽 세시 반’에 나와 쌀을 씻는다는 건 무척 고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시간에 밥을 먹고 일을 나가는 남편 또는 겨우 잠에서 깨어나 새벽 등교를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에 대한 아픈 마음이 자신의 노고보다 더 클 수 있다. 한편 중장은 늘 반복되는 일상의 한 끼 한 끼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경우이다. 매일의 식생활 속에 얽매여 산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마저 급급한 처지라면 서글퍼질 수 있을 것이다.
종장에 들어서면 한 끼의 의미가 백팔십도로 바뀐다. 일상의 끼니를 기쁨으로 풀어내는 것은 ‘잘’이라고 하는 부사 한 마디이다.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말로 간혹 상대를 비꼬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갖는 한결같은 바람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여기서 ‘잘’은 남보다 더 낫다는 비교 우위가 아닌 자족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자세이다. 밥을 먹는 일도 마음먹기에 따라 단순한 끼니 이상으로 삶을 충족시키며 우리를 기쁘게 한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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