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산에서도 핫한 마을 전포동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청년 자영업자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부산은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인구 330만 명의 대도시로 대한민국 제2의 도시입니다. 만약 부산이 유럽에 있었다면, 인구 순위 10위권에 있을 큰 도시입니다. 부산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물동량을 가진 큰 항구와 풍부한 해양 인프라를 바탕으로 부산시의 이전 도시상징이었던 ‘다이내믹 부산’에 걸맞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부산은 겉으로 보이는 매력적인 도시와는 다르게 청년들의 삶의 자리가 좁아지고 하루하루 활력과 매력을 잃어가고 있는 황폐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매년 부산을 떠나는 청년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출산율 0.72명이란 숫자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늙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란 말이 부산의 또 다른 상징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제2의 도시 부산은 놀랍게도 대한민국 100대 기업이 하나도 없어 부산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은 도시입니다.
부산은 서비스업의 비율이 72퍼센트로 다른 도시에 비해 그 비중이 매우 높은 곳입니다. 광역도시 중에서도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부산은 어느 도시보다 자영업자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전국의 유명한 상권처럼 부산에서도 망리단길, 해리단길 등의 상권이 생겨났고, 부산의 중심 서면권에는 뉴욕타임즈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전포카페거리를 시작으로 전리단길, 전포사잇길이란 상권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저마다의 상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문화를 자신의 매장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화공간이 부족한 부산에서 젊은 소비층의 니즈를 적극 반영하고, 각 매장마다 독특하고 개성 있게 표현된 공간들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독창적이면서 자유로운 상권에는 더 매력 있는 공간을 보여주려는 새로운 청년자영업자들의 도전이 계속 이어졌고 상권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발전과는 거리가 멀었던 주택가에 새로운 점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비례해 거리에는 젊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데에는 몇 년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축 건물보다는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채 매장을 운영하던 독특한 가게들은 개발업자들의 논리에 의해 뜯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기획부동산들은 건물주들을 회유하여 월세가 폭등했습니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자립의 근거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폭등한 월세로 인해 청년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고, 꿈을 접는 경우가 많아져 가게마다 ‘임대’가 붙어있는 공실 가득한 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상가 임대차 보호법으로 상권의 안정화를 보장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부동산과 건물주 사이의 임차인은 그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재계약 시 건물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분란이 생기면 향후 매장을 운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성장하는 모든 상권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고, 부산의 청년자영업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시장논리에만 맡기게 된다면, 기획부동산과 건물주의 끝없는 욕망 끝에 결국 상권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건물주와 청년자영업자들 간의 적정선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적정선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둡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 부산시 소상공인지원과에서 부산에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카톡의 내용은 부산의 지역화폐인 동백전의 ‘동백플러스’ 가맹점을 모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백전은 부산시의 지역화폐로서 소상공인과 시민이 상생 협력하며, 소비의 선순환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초기 동백전은 사용 금액의 10퍼센트 페이백이라는 장점으로 부산 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았습니다. 이후 부산시 예산의 문제로 인해 페이백 금액이 줄어들고, 지원 한도 역시 줄었지만, 여전히 그 인기는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는 줄어드는 예산을 극복하기 위해 ‘동백플러스’라는 제도를 신설하였습니다. ‘동백플러스’는 자영업자가 소비자에게 추가할인을 해줄 때, 부산시가 할인된 금액에 7퍼센트의 페이백을 해주는 방식으로 변경이 되는 내용입니다. 부산시가 소비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페이백 예산이 계속해서 줄어들게 되자 자영업자에게 그 비용을 전가하는 제도를 소상공인지원과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백플러스는 지역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탄생한 지역화폐의 원래 취지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지역화폐란 해당 지역의 골목상권에서 사용되고 자금의 흐름이 지역 내에서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동백플러스는 해당 골목상권 속에서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지역 자영업자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겨주는 제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동백전 앱을 통한 온라인 홍보」라는 항목은 각 자영업자가 출혈하는 할인율에 맞춰 표기되는 것으로, 이는 지원이 아닌 자영업자 간에 경쟁을 부추겨 부담만 더욱 커지게 하는 정책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부서에서 나온 정책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현장의 힘든 삶의 여정을 이해하려는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는 정책이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부족한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돈을 향한 욕망은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윤을 향한 욕망은 자영업자들의 기본적인 마인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획부동산과 결탁된 건물주들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과 현장의 아픈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산시의 행정은 청년자영업자들의 지속가능한 상권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청년들이 애정했던 삶의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부산의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현장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탁상이 아니라 현장으로 나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모든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균형 잡힌 행정을 통해 상권 안정화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부산이라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다이내믹한 도시가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에서 소중한 젊음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삶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 도시가 되길 희망합니다.
◇ 장백산
전 부산진구의회 의원
현 산애카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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