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서평 - 가치의 모든 것 : 위기의 자본주의, 가치 논의로 다시 시작하는 경제학
과연 모든 것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서평자 : 송헌재(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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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9 15:10 | 최종 수정 2021.01.0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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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치 창조자라 부르면서 가치를 착취해 가는 것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p. 437)
시장 수요곡선이 우하향하는 이유는 특정 재화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화의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꼭 가지고 싶어 한다. 명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명품매장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장 수요와 시장 공급을 일치시키는 시장 가격에서 시장의 균형이 달성되고, 기업은 시장가격에서 평균비용을 차감한 만큼의 이윤을 얻으며, 소비자는 본인이 느끼는 재화 및 서비스의 가치와 시장가격의 차이만큼 이득을 본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보는데 이렇게 시장이 창출한 가치를 후생(welfare)이라고 부른다.
기업의 이윤은 계산이 가능하지만 특정 재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관적 선호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시장 수요함수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단지 시장 균형가격과 균형거래량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소비자가 누리는 이득을 계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시장이 창출하는 가치를 이러한 후생의 관점에서 측정하는 것 또한 매운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에 존재하는 모든 합법적인 시장의 균형가격에서 거래된 총 거래량을 기반으로 GDP를 계산하고 이를 국가가 1년 동안 창출한 경제적 가치라고 이해한다.
이 책의 저자는 시장가격이 재화 및 서비스가 창출되는 객관적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가격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그러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논리를 확장하여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매니저가 아주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해서 그가 매우 생산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실제로 사회에 무엇을 공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공헌이 창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과연 그들이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가 바라볼 때 현대의 금융업은 끊임없이 투기적 성격의 파생상품을 만들고 빈번한 거래를 유도하여 급격하게 팽창하였는데 이는 자금이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원활하게 중개하는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잘 수행하여 이룩한 결과가 아니므로 가치 창출의 결과가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창출한 가치를 착취하는 행위의 결과라고 규정한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이 이와 유사한 가치 착취가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이 혁신 경제의 선봉장이라고 불리는 IT 기업이 지금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투자하여 주도한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 밑바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결실은 모두 기업이 독식하고 있는 것도 가치 착취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설명한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정부가 이들 기업의 성공의 밑거름을 제공한 만큼 수익의 일부를 요구할 충분한 자격이 있으며 이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하면 소득재분배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우리 사회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책의 결론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한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심화라는 병폐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 영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의료, 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서 부의 재분배를 넘어 부를 창출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처럼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민간 영역과 협업하고 경쟁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이 잘 구성되어 작동한다면 가치를 착취하는 활동이 줄어들고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시장 실패 못지않게 정부 실패의 사례를 많이 목격했던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은 소득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심화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그 원인과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창출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경제학 개념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전공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종종 발견된다. 만일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배경지식의 차이 때문이지 독자의 이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꼭 밝혀두고 싶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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