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91 - 천지는 인간에게 어질다고?
인저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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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7 13:18 | 최종 수정 2023.09.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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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인간에게 어질다고?
참으로 평화로운 하늘과 땅입니다.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천지만물에 대해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지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 28)” 과연 60억 이상의 인구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진 우리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문화명령대로 천지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자격이 있을까요? 서학이었던 기독교의 인간중심사상은 우리의 동학사상인 천도교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이 세상은 하늘 ․ 땅 ․ 인간(天地人)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은 곧 하늘(人乃天)입니다. 사람 아닌 것들은 단지 이외의 것들(the others)일 뿐입니다.
인간은 ‘디 아더스’에 대해 정복했을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요? 제대로 다스려지려면 기독교에서의 사랑, 불교에서의 자비, 유교에서의 어짐(仁)이 있어야 할텐데, 인간에게는 이들보다 강한 것이 더 많습니다. 바로 욕심이지요. 자기 이익에 대한 탐스런 욕심(自利慾)은 하늘이나 땅마저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천지에 대해 사랑과 자비와 어짐을 가지기보다 천지가 자신에게 사랑과 자비와 어짐을 베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은혜를 내리고 축복을 베푸시는구나!” 이렇게 세상은 오로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의 순리와 불규칙한 변화마저도 자기의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과연 천지는 인간에게 사랑과 자비와 어짐을 베푸는 한없는 존재일까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말이 있습니다. 天地不仁! 하늘과 땅은 어질지 못하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이 구절은 하늘과 땅에 대한 전환적 시각을 줍니다. 하늘과 땅은 인간을 인자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하찮게 취급한다(以萬物爲芻狗)! 천지는 인간에게만 어질지 않고 인간에게도 역시 모질다는 뜻이지요. 저 은혜로워 보이는 천지가 언젠가 우리 인간에게 무자비하게 나올 때도 있겠지요. 그럴 일이 없으려면 인간중심에서 벗어나 세상만물의 순리적인 조화를 깨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 된다면 세상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문화명령도 제대로 이루어지겠지요.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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