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캠페인의 한 장면. 출처 : 유튜브(OhmyTV)
5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한 임부와 이를 도운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위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열렸습니다(2017헌바127).
우리나라는 낙태한 임신부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형법 제269조 제1항 ‘자기낙태죄’), 임신부의 요청이나 동의에 따라 낙태하게 한 의사를 2년 이하의 징역으로(형법 제270조 제1항 ‘동의낙태죄’) 처벌하면서, 제한적으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일정한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강간으로 인한 임신 또는 일정 친인척 간의 임신인 경우’에 한하여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이미 헌법재판소는 약 6년 전 재판관 4인(합헌):4인(위헌) 의견으로 동의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결정. 재판관 6인의 위헌의견이 있어야 위헌 결정이 내려짐). 그러나 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의사가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가 위헌인지 여부를 다시 판단하기 위해 이번 공개변론을 연 것입니다.
사실상 낙태죄 위헌 논쟁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등의 이유로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에 하는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낙태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임신부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 임신 초기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임신 초기의 낙태는 시술방법이 간단하여 임부의 신체적 위험도 매우 낮은 점, 현실적으로도 자기낙태죄 조항은 사문화되었으므로 태아의 생명, 임부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적절한 수단이 되지도 못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신 초기 낙태를 원칙적,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자기낙태죄는 여성이 자기결정권, 즉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침해하며, 임신 초기에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임부의 건강권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원치 않는 임신의 지속을 강요할 경우 임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하게 되고, 출산에 대한 부담이 여성에게만 부과되므로 평등권도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동의낙태죄 또한 의사를 가중처벌함으로써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되고 의사의 직업의 자유까지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공개변론에 앞서 여성가족부도 낙태죄를 재검토 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함으로써, 위와 같은 낙태죄 폐지 입장에 힘을 보태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맞서, 법무부는 공개변론에서 모든 태아에게는 (그 성장 단계와 관계없이)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성이 부여된다고 봄이 타당하고, 태아의 생명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일 뿐만 아니라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도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며, 중대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으로 낙태시술이 가능하므로, 낙태죄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낙태죄 합헌 입장은, 낙태하고자 하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 특히 동의낙태죄의 경우 법정형의 상한이 2년 이하의 징역에 불과하여 책임에 비해 형벌이 과중하지 않고, 의료지식 있는 업무자의 경우 그 비난가능성이 더 크므로 평등원칙에도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하는지,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 우선하는지의 문제는 분명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고, 자신의 결정권에 따라 낙태를 한 임부와 이를 도운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또 국제적으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1973년 유명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대법원 판결에서 ‘임신한 여성의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절을 선택할 헌법상 권리’가 인정된 이후, 임신 만 23주까지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고, 영국은 임신 만 24주까지 이를 허용합니다(위 주수 이후에도 모체의 건강이나 생명보호를 위한 낙태가 가능함). 독일, 프랑스는 임신 만 12주 미만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임신 6개월까지는 임신부의 건강이 위험할 경우에 한하여 허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뉴질랜드, 아일랜드는 우리나라와 같이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현재 한국에서처럼 낙태금지 찬반 논쟁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5월 25일 낙태금지법 조항 폐지 여부를 정하는 국민투표가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1983년 국민투표를 통해 마련된 아일랜드 수정헌법 제8조는 ‘태아의 권리’를 엄마의 ‘살 권리’와 동등한 것으로 규정하였고, 이에 따라 모체가 극도로 위험한 경우 외에는 낙태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낙태를 희망하는 임신부들은 낙태가 합법인 영국 등으로 건너가 원정낙태를 하기도 하였고, 그 집계 수치는 위 헌법조항 발효 이후 약 17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 조항이 폐지될 경우 여성은 임신 초기 12주 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낙태를 할 수 있고, 12-24주 사이에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입법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공개변론에서 현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사해 판단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낙태죄가 폐지될까요? 그 결정이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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