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 갈등과 대립의 구도를 넘어서길 희망하며
지은이 : 오누마 야스아키(도쿄대학 명예교수), 에가와 쇼코(프리 저널리스트)
서평자 : 남상구(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 문학 박사(일본현대사 전공)) [nsggg@nahf.or.kr]
다른 생각을 가진 타자 입장에서 보면 나의 논의에도 반드시 편향성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면서 나와 다른 인식을 가진 사람에게 내 견해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듣는 수밖에 없다. (233p.)
‘역사인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다름’에 대한 이해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가 예전에 입었던 티셔츠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과 ‘해방(LIBERATION)’ 등 문구가 들어갔다는 것이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은 원자폭탄 사진을 참혹함과 비극이 아닌 방식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예정되었던 방송 출연이 취소되었다. 한국 여론은 자기 잘못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일본이 자충수를 뒀다고 조롱했다. 소속사와 멤버가 사과하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되었으나 ‘역사인식’ 차이가 어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원자폭탄을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것이고, 해방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역사인식’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국제법 학자이자 활동가였던 저자가 일본 독자들을 상대로 답을 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에는 한국의 일반 시민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사실 인식과 해석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상식까지 의심해 보는 ‘지적 용기’를 보여 달라고 주문하는 한편, 책에 대한 불만과 의심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는 10월 16일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을 발간한 지 불과 3개월 후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인식’ 문제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저자는 역사인식의 차이와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러한 사실의 인식과 해석에서 왜 차이가 발생하는지 그 근거와 원인을 찾아야 하며, 차이가 나는 배경이나 사상의 틀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관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상대방 혐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구체적으로는 도쿄재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국교 정상화, 전쟁 책임과 전후 책임,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사인식’ 문제의 국제비교라는 주제를 프리 저널리스트인 에가와 쇼코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저자는 1970년대부터 일관되게 일본의 전쟁 책임, 식민지 지배 책임, 전후 책임 문제를 추궁해왔다. 동시에 재일 한국인의 법적ㆍ사회적 지위 개선과 사할린 한국인의 한국 귀환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에 발기인과 이사로 참여한 이후 ‘어용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복잡한 경험들이 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저자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극단적인 ‘대립’은 무익하다는 주장도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보수주의라는 명목 아래 편협하고 배타적인 감정과 울분의 발산이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우려하는 한편, 일본도 지금까지 나름 과거의 행위에 대해 반성을 해왔는데 이것을 한국과 중국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5년 6월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나’라는 질문에 불충분하다고 답한 한국인은 96%였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정치 지도자의 상징적 행위나 홍보 등이 미흡했고, 일부 언론이 반일 감정을 선동했으며, 역사인식 문제를 외교카드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우리가 한 것을 상대방이 몰라주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는 이러한 해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 전후 처리가 불철저했던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와 제국주의적 외교ㆍ전쟁이라는 과거의 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는 데는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관련 부분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좀 더 넓은 시야에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어느 나라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인식’이나 타자에 대한 요구는 그런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즉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기준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방탄소년단(BTS) 멤버가 입었던 티셔츠에 대해 한국의 ‘보통 사람들’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를 한 것은 원자폭탄이 가져온 비극, 피해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나의 ‘다른’ 입장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역사인식’으로 인한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라는 기준점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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