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 왜곡과 날조로 뒤엉킨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을 파헤치다
지은이 : 젊은역사학자모임
서평자 : 박찬흥(국회도서관 독도자료조사관, 사학 박사)
사이비역사학은 위대한 역사와 거대한 영토를 강박적으로 선호하며, 이를 윤리적 당위로 제시한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에는 ‘친일 식민사학’이라는 낙인과 함께 공격을 가한다. 상대를 친일파라는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선동 수단이다. 이 수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사이비역사학은 실제로 광범위한 대중화에 성공했다. (5~6p.)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을 넘어 한국고대사를 바라보다
젊은역사학자모임은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소장 학자들이 주축이 돼 2015년 에 결성한 모임이다. ‘사이비(似而非)역사학’에서 주로 언급하는 한국 고대사 관련 주장이 한국 사회에 큰 폐해를 끼치고 있다고 판단하여 모인 것이다. 저자들은 ‘사이비역사학’을 ‘역사학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흉내를 내지만 학문의 본령에서는 벗어난 가짜 학문을 가리킨다.’고 규정했다. 사이비역사학이란 용어는 영어로 ‘슈도 히스토리(pseudo-history)’인데, ‘유사(類似)역사학’이라고도 하고 예전에는 ‘재야사학’이라고 불렸다. ‘사이비역사학’이라는 직설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은 사이비역사 학의 실체와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임은 사이비역사학의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역사학계의 한계를 반성하면서, 역사학계가 이룬 성과들을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역사대중 화 활동을 벌였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2017)이었고,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는 두 번째 성과이다. ‘욕망 너머’란 말은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왜곡되고 뒤틀린 욕망을 넘어서고, 동시에 ‘오랫동안 주류 역사학계에서 통용된 민족주의적인 역사관의 욕망’을 넘겠다는 것이다. 사이비역사학의 목적이 사실에 대한 해명이나 대상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아니라, 자신이 품은 욕망에 대한 정당화라고 판단했다.
모두 10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저술한 이 책에서는, 고조선 역사에 대한 이해, 낙랑군의 위치, 고구려 광개토왕비를 둘러싼 한·중·일의 역사인식, 백제의 요서 진출설, 발해사의 귀속성 등 주로 중국사와의 관계, 칠지도와 백제·왜 관계, 임나일본설의 연구사 등 고대 한일관계, 신라의 ‘삼국통일’, 신라 김 씨 왕족의 흉노 후예설 등 신라사를 주제로 선정했고, 여기에 고대국가의 전성기가 언제인지 서술한 글, 1970~1980년대 《환단고기》의 등장과 잡지 《자유》에 나타난 사이비역 사학의 ‘민족주의’를 분석한 글이 포함되었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서술은 영토와 관련된 부분이다. 낙랑군이 한반도 밖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심리 저변에는, 고대 한반도 내에 외부 세력이 설치한 ‘식민지’가 존재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식민지 콤플렉스와, 고조선이 대륙에 존재했던 아주 큰 나라였다는 영토적 허영심을 충족하는 것 때문이라고 보았는데, 고조선이 멸망하고 낙랑군이 설치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인식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59-60쪽). 또 우리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군주들의 시대에 열광하는 것은 지금 강대국에 둘러싸인 분단된 현실 세계의 불만과 불안이 과거 고대사의 영광스러운(?) 시대에 투영돼 현재의 어려움도 그때와 같이 극복되리라는 위안을 얻는 현상으로 파악했는데, 만들어낸 과거의 환상 속에 기대어 이 순간을 모면하려 애쓴다고 현재의 어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127-128쪽).
아울러 신라 김씨 왕실의 선조에 대한 여러 기록 가운데 유독 흉노족 출신 김일제가 선조였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는, 김일제가 신라 김 씨 왕실의 선조이면 흉노가 아우르던 드넓은 영토가 곧 우리 민족의 영토가 되고 중국 왕조를 위협하던 흉노의 강한 군사력이 곧 우리 민족의 힘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김일제에 대한 기록은 관념적인 표방이며 오히려 김일제는 이민족으로서 중국 왕조에 충성을 바친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 인물일 뿐이었다고 서술했다(216쪽).
사이비역사학자들이 한국 역사학계가 아직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비판했다. 그들처럼 임나일본부를 조선총독부와 같은 성격의 기관으로 믿고 있는 집단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신들은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한다고 자부하지만 오히려 주어만 다른 식민사관의 반복이고, 결국 자신이 식민사관의 충실한 대변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식민사학의 슬픈 변종, 이것이 바로 사이비역사가들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245쪽). 끝으로 1970~1980년대 사이비역사학이 내세운 ‘민족사관’의 민족주의란, 군부 독재세력이 위로부터 제작해 주입하고자 한 ‘교도민족주의(Guided Nationalism)’ 의 성격을 띠었다고 인식했다.
이 책은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서술된 글들이 대부분이라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동 저술이라 그런지 저자 사이의 서술에 편차도 보이고,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을 지적하여 극복한다는 것보다는 연구사 정리에 머무르는 듯한 글들도 보인다. 상대적으로 첫 번째 책에 비해 글들이 주는 주목도가 낮다. 또 ‘사이비역사학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현대사의 문제’라고 보는 인식에서 수록된 마지막 글이 주목되기는 하지만, 분석 대상이 되는 시기는 1990년에서 끝난다. 사이비역사학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고 저자들이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던 2010년대 사이비역사학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이비역사학의 욕망’에 대한 서술은 많았지만, ‘역사학계에 통용된 민족주의적인 역사관의 욕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 것 인지 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점은 아쉽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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