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온 사이언스 : 영화로 과학 읽기
지은이 : 조숙경(전 한국과학창의문화재단 과학문화사업단장·과학문화 전공 이학박사)
서평자 : 송일준(광주MBC 대표이사 사장, 언론학 박사)[ijsong@mbc.co.kr]
과학에서도 혁명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또는 이익과는 별도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바로 새로운 세대와 아웃사이더들이 등장할 때 혁명은 가능해지는 것이다. (71p.)
과학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디자인하게 할 것인가
책 제목인 필즈-온 사이언스. 선뜻 그 뜻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과학은 대중이 눈으로 보며 즐기는 쇼(show)로 시작된 아이즈-온(eyes-on)시대로부터, 직접 관찰과 실험을 해보는 핸즈-온(hands-on)시대와 과학적 지식과 정보에 대한 배움과 이해에 초점을 맞춘 마인즈-온(minds-on)시대를 거쳐, 과학에 대한 감성과 느낌을 강조하면서 과학이 갖는 문화적 측면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강조하는 필즈-온(feels-on)시대에 이르렀다.”
아하! 저자에 의하면 필즈-온 사이언스는 우리 사회 속에서 과학, 다가올 미래에서 과학이 갖는 다양한 측면을 인문 · 사회 · 문화 · 예술과 관련지어 바라보면서 과학을 통해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인지 탐색해보자는 기획이다.
필즈-온 사이언스의 실천으로 저자가 택한 한 가지 방법은 영화로 과학을 읽는 것이다. 액션, 로맨스, 페미니즘, 스파이, 사회고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여느 영화 평론가들과는 다르게 저자는 과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읽어낸다.
<킹스맨>. 흔히 B급 첩보액션 영화로 알고 있지만, 저자는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SF영화라 말한다. 정보기술(IT)이 가져올 우울한 미래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천재기업가인 악당 발렌타인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인구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구의 열이 오르는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며, 바이러스는 바로 인간이라고 믿는다. 발렌타인은 인간을 제거하기 위해 데이터를 무제한 무료로 사용하길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한다. 공짜 유심칩을 받은 사람들은 뇌파를 조종당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된다. 영화는 선한 의도를 가진 기술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파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은유한다.
주인공인 영국 젠틀맨이 하는 말 “매너가 인간을 만든다(Manners make man)”는 디지털 시대에도 매너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암시한다. 악성 댓글이 판치는 인터넷 공간, 과학보다 이데올로기, 사실보다 믿음, 데이터보다 주관적 가치가 우선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주인공 이단 헌트 역의 톰 크루즈가 50대 후반이 된 나이에도 직접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내며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는 스파이액션 시리즈로 지금까지 모두 여섯 편이 만들어졌다. 1996년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1편>의 무대는 프라하였다. 영화가 아닌 과학의 역사에서도 프라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도시였다. 1600년 독일 태생의 케플러는 종교 박해로 쫓겨간 프라하에서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를 만난다. 스물여덟 애송이 케플러는 나이, 부, 지위, 명성, 어느 것에서도 쉰세 살의 당대 최고 천문학자 티코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티코는 케플러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알아본다. 티코가 죽기 전 티코가 평생 모은 천문학 데이터를 몽땅 물려받은 사람은 다른 제자들이 아니라 빈털터리 망명자에 보통 아닌 성격을 가진 수학 오타쿠 케플러였다. 티코의 기대대로 케플러는 8년간의 사투 끝에 화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케플러의 천재성과 끈기를 알아본 티코의 혜안과 공사를 구분하는 냉철함이 없었다면 천문학의 위대한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천문학의 미션 임파서블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그밖에도 저자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여성 최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의 러브스토리와 위대한 과학적 업적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보스턴글로브의 탐사보도팀이 오랫동안 묵인되던 신부들의 아동성추행을 폭로함으로써 지역사회의 판을 깨고 오랜 적폐를 청산했듯이 과학 혁명 또한 기득권익으로부터 자유롭고 외부자의 관점을 가진 아웃사이더에 의해 전격적으로 초래된다고 말한다.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물 없이는 하루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영화 <킹스맨>의 불길한 메시지와 반대로 과학기술 발전이 많은 이들에게 이롭고 미래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조금 더 많이 아는 것보다 과학을 통해 세상을 조금 다르고 넓게 전망할 수 있는 관점을 키우도록 노력할 일이다.
이 책의 으뜸가는 매력은 폭넓은 과학과 인문학의 지식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 영화를 통해 인문학과 과학적 상상력이 서로 만나 새로운 변이를 일으키는 공감과 융합의 능력, 농도 짙은 이야기를 쉽고 적절하게 풀어내는 언어의 명료함이다. 담백하고 솔직한 저자의 인생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만나는 것은 이 책이 선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많은 독자들이 과학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는가를 경험하는 놀라운 시간을 가지길 기대한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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