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서평자 : 박상욱(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서섹스대학교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서울대학교 이학박사)
“레플리컨트들이 다 죽고 로이 베티만이 남은 상황에서 이 마지막 레플리컨트를 살해하기 위해 릭 데커드가 로이 베티와 결투를 하는데, 이때 다시 한 번 진정한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 혹은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영화의 답이 등장한다. (p.247)”
대중문화를 통해 본 과학, 대중문화를 빌어 얘기한 과학기술학
이 책 이전에도 대중문화 콘텐츠 속의 과학기술에 대해, 또는 대중문화 콘텐츠에 비친 미래사회의 모습을 다룬 책들은 여러 권 있었다. 주로 과학자나 과학저술가가 쓴 그런 류의 책은 영화나 소설 속 과학적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고, 영화를 소재 삼아 나름의 미래예측을 펼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저작물을 SF(Science Fiction)에 빗대어 SnF(Science non-Fiction)이라고 부른다.
홍성욱의 “크로스 사이언스”도 ‘그런 류’의 책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대중서에 어울리는 표지와 두께와 글자크기를 갖추고, 흥미로운 도판을 잔뜩 삽입하고, 술술 읽히는 훌륭한 가독성에 드문드문 위트까지 겸비했지만 이 책은 심각한 사유(思惟)로 가득하다. 더 나아가, 가벼운 발걸음인 양하면서 과학과 세상, 과학과 인간,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묵직한 행보를 시도한다.
이 책은 과학자가 대중문화를 접하고 든 생각을 쓴 것이 아니고, 과학기술학자가 대중문화를 이용해 과학기술학을 풀어낸 것이다. 책 표지의 저자 표기 바로 아래 찍힌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라는 직함은 서점의 ‘과학기술분야 신간’ 매대 앞에 선 사람들을 유혹한다. 서울대학교라는 브랜드도 한몫하지만, 과학자가 쓴 ‘알쓸신잡’ 류의 말랑말랑한 책을 즐겨 읽는 나름의 고정팬 층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쩌나. 저자의 정체는 대중에게 과학자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는 과학기술학자다. 과학기술학(STS)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학기술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 전반을 의미한다”(p.350)는 저자의 이실직고 -마블(MARVEL) 영화의 쿠키영상마냥, 본문을 다 읽고 나서야 마지막 쪽에 등장한다- 를 접하고 나면, 독자는 술술 후루룩 읽힌 책이 어째서 머릿속을 맴도는지, 왜 질문들이 샘솟듯 생각나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서는 ‘각 잡고’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는 거다. 바른 독자라면, 마땅히 그리하게 될 것이다.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SnF가 노리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라면, 홍성욱의 책이 지향하는 바는 과학기술학의 대중화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학의 대중화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을 대하는 시민의, 혹은 일분일초라도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의 ‘의식화’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가들이 민주주의의 원리와 진보주의적 세계관을 사례를 들어가며 쉽게 풀어 설명해서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무장시켰던 것, 그래서 정치권력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말라, 비판 없이 순종하지 말라, 권리를 주어진 틀 안에서만 찾지 말라 전했던 것과 비슷하다.
홍성욱은 ‘들어가는 글’의 제목을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의 크로스”라고 붙였다. 과학은 사실에 대한 탐구이며, 인문학은 가치에 대한 탐험이라는 대구(對句)다. 이 둘을 ‘크로스’하면 과학 또한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의 가치중립성과 과학자는 집단의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신화(myth)에 불과하다. 이것은 쿤(Thomas Kuhn) 이래 현대 과학기술학에서 유지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공동 인식이다. 즉, 홍성욱의 ‘크로스’는 과학기술학의 핵심 공리(公理)를 대중에 전파한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 사용한 ‘크로스(cross)’를 “교차”라고 설명한다. “교차”는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시각들의 엇갈림과 중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는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돌연변이인 염색체 교차(chromosom\-al crossover)와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홍성욱은 과거의 저작에서 혼종(hybrid)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혼종이 종이나 개체 수준의 섞임이라면 교차는 유전자 수준의 섞임이니 섞임의 수준이 더 깊은 근원으로 내려간 것이다. 이에 따라 물리학도에서 과학기술학자가 되어 생명과학부에 근무하는 저자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에서 해방되었다. 저자가 과학기술학자로서 겪은 어쩌면 가슴 쓰렸을 해프닝을 이제는 농담처럼 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p.350)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잠재적 독자가 이 서평을 먼저 읽고 ‘심오한 책이구나’ 지레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책은 1∼4부 10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은 적당히 짧고 그림과 사진이 많아 시선을 지면에 계속 잡아끈다.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다! 웬만한 사람은 최소한 몇 개는 접해 보았을 인기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미술품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휴가길에 교양 있는 킬링타임용으로 여행가방에 넣어도 좋을 만한 컴팩트함까지 읽는 즐거움을 위한 미덕은 고루 갖췄다. 1∼4부 뒤에 학습서를 연상시키는 Q&A 코너도 있어서, 대치동 학원가에서 교재로 사용하기에도 이만한 책이 없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수능이나 각 대학 논술시험 지문으로 출제될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과학기술학 지문은 출제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기 위한 책이고, 널리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책이다. 독자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과학기술학의 유혹에 빠지게 하려면 그래야 하니까.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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