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재구성 : 새로운 정치를 위한 자유공화주의 선언
지은이 : 박형준, 권기돈
서평자 : 임성호(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정치학 박사)[limsh@khu.ac.kr]
“공화주의는 자유와 공동체의 조화를 지향한다. 이 자유와 공동체를 이어주는 가치가 행복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행복을 향한 자아실현의 궤적을 원활하게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 이를 우리는 ‘행복한 공화주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126p.)
새로운 정치는 보수뿐 아니라 모두의 재구성을 통해
정치가 혼란할수록 인식의 길잡이가 필요하다. 근래 정치를 보며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인식의 방향을 잡아보거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일반 시민뿐 아니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정치인 모두가 정치에 혼란을 느끼고 있을 테니 이 책의 독자는 우리 모두라 하겠다. 더욱이 이 책에서 의미하는 정치는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거시적 개념이자 모든 민주주의 지향국가에 두루 연관되는 보편적 개념이므로 독자층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保守)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정치를 이루기 위해 자유공화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실천적으로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논지는 중요한 시대적 함의를 담고 있다. 우선, 적폐청산이 정권의 대표 과제로서 사회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변화 못지않게 연속성, 근본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 정치사에 어두운 면도 많지만 밝고 자랑스러운 면들도 있으니, 지킬 만한 유산은 잘 보존해 변화와 연속성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기하자는 것이다. 특히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입각한 소중한 기존 인식과 가치관을 변혁에 매몰되어 무분별하게 훼손해선 안 된다는 시사점이 관심을 끈다.
또한, 이 책은 제도주의적 맹신에 경종을 울리며 생각 혹은 인식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린다. 정국이 꼬일 때마다 제도 개선, 심지어는 개헌을 탈출구로 찾는 경향이 존재해 왔지만, 우리는 제도 처방책의 한계를 익히 알고 있다. 이 책은 보다 근원적으로 생각을 체계화하고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물론 이 책이 주창하는 자유공화주의는 또 다른 맹신을 부르는 경직된 이념이라기보다는 개별 맥락을 민감하게 성찰하는 유연한 관점, 인식, 가치관의 집합(즉, 패러다임)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역사의 진전은 제도뿐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와 병행했다는 사실을 반추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모든 국민이 경청할 만한 내용이 담긴 데 비해 책 제목은 특정 섹터를 조준하고 있어 궁금증이 난다. 굳이 “보수”를 전면에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이 책이 강조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는 성별, 세대, 이념을 넘어 모두에게 좋은 지적(知的) 전통이자 인식 틀이다. 저자도 본문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시민적 덕성의 근원적 가치를 설파하고, 시민사회의 역할을 부각하고,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논증하면서 저자는 우리 모두를 쳐다보고 있다. 보수를 지키는 사람뿐 아니라 진보를 외치는 사람도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자칫 제목만 보고 특정 성향의 사람만 독자가 된다면 무척 아쉬운 일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보수주의만 위기에 빠진 건 아니다. 진보주의도 마찬가지이고, 급진주의(좌파든 우파든)도 그렇다. 영국의 저명한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작년에 진보주의의 위기를 커버로 다루더니 올해엔 보수주의의 위기를 커버에 올렸다. 시대 자체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진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가 본문 내용을 통해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21세기 전환기를 맞아 보수의 위기와 재구성뿐 아니라 진보의 위기와 재구성, 더 나아가 모두의 위기와 재구성을 논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보수를 전면에 세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보수 진영이 정치적으로 워낙 위축돼 진보 진영을 적절히 견제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체제 전반에 조화와 균형이 실종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선 보수가 재구성되면 진보도 각성시키는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독자가 진보는 이미 잘 구성되어 있을 거라든지 보수만 재구성되면 될 거라든지 오해하면 곤란하다. 저자도 강조하듯이, 한국의 진보는 이념적 극단과 경직성을 향해가고 있으며 과연 진정한 진보인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한국의 새로운 정치를 위해선 진보와 보수가 모두 재구성되어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라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
독자에게 미리 경고하자면, 이 책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저자 두 분은 학자이면서 정치가 또는 행정가 출신으로서 학문적 추상성과 실제적 구체성을 혼합하고 있다. 학문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 글의 이론적 논의와 학문적 개념들을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학문 영역의 독자라면 이 글의 현실정치 지향적 논조에서 과도한 복잡성, 포괄성, 중복성을 느끼며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공화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이 책에서 잘 구분되지 않았고, 자유공화주의 개념도 명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좁게는 정치과정, 넓게는 국정체제 그 자체가 지극히 복잡하고 불명료한 것인 만큼 이 책이 우리의 머릿속을 갑자기 명료하게 정리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우리 각자가 인식의 방향을 잡아보거나 헝클어진 생각을 다소라도 성찰해볼 수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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