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저자 : 애덤 투즈
서평자 : 김영한(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경제학 박사)[kimyh@skku.edu]
“끝없이 일어나는 인간에 의한 재앙은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 불평등과 거기에 덧붙여진 글로벌 자본주의 발전이 모든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요인이었을까? (중략) 지난 1914년 이후 우리는 100년 동안 이런 질문을 던져 왔다. 2008년의 사태와 그 여파에 대한 질문이 앞선 질문과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런 질문이야말로 인류의 발전을 뒤따라온 거대한 위기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므로.” (852-853p.)
세계금융위기, 아직 끝나지 않은 반복적 위기구조의 서사시적 분석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인도네시아를 거쳐 아시아 전역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을 때, 과연 이런 유동성 위기가 당시 호주경제보다 모든 거시경제지표에서 훨씬 건실한 경제로 평가받던 한국에까지 전염될 가능성에 대해 이론이 분분했다. 그러나 결국 소로스를 포함한 대형투기자본들이 한국 원화의 위험성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심지어 폴 크루그먼과 같은 지명도 있는 경제학자가 한국경제는 종이호랑이라는 평가를 내놓으면서, 한국 경제위기에 대한 소문이 현실로 실현되는, 소위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가 한국경제를 침몰시킨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런 뼈아픈 기억이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피눈물 나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로 한국경제는 한번 더 휘청거렸으며, 그 여파와 생채기는 우리경제 곳곳에 아직 남아있다.
이러한 와중에 미국 경제사학자인 애덤 투즈가 발간한 저서 「Crashed : How a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는 비록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지난 1997년 눈물의 IMF 위기에 대한 성찰과 최근 진행중인 미중무역전쟁, 급기야 아베의 수출규제와 같은 만행을 꿰뚫어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저자는 사학자 특유의 놀라운 섬세함과 경건한 자세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발생배경과 전개과정 및 사후 위기수습 과정에서의 다양한 정책집행과 성과를 극사실화에 가까운 정밀함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가 묘사하고 분석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의 배경 및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범죄행위에 가까운 ‘도덕적 해이’가 금융권을 필두로 부동산 거품에 연루되었던 모든 경제주체와 금융감독당국 및 정책결정자들에게 만연했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일차적 원인이었던 부실 부동산담보채권이 금융권에 만연하면서 금융시스템의 동시 붕괴를 초래한 역사적 연원을 찾아간다면 가장 가까운 주범은 레이건 행정부부터 확산된 정부규모 및 규제의 최소화를 슬로건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접근이다. 이 논리는 합리적 경제주체는 부실자산을 스스로 변별하여 투자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추었기에 정부와 금융규제당국의 비효율적인 간섭과 규제를 최소화해야한다는 것으로 결국 서브프라임 위기의 일차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출발은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담보채권의 고수익을 노린 금융기관간의 무분별한 유통과 이를 수수방관한 금융감독당국의 정책 과오였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순식간에 전세계 경제위기로 확산된 배경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호주 등 전세계에 걸쳐 부동산에 대한 투기적 수요와 거품이 만연해 있었고 그 배경에는 무분별한 부동산담보채권의 유통이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저자의 분석이 더욱 빛을 발하는 부분은 부실 주택담보채권에 대한 위험천만한 투자가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는 과정에 대해 첨단 금융상품의 보급확대라고 간주하면서 금융감독 의무를 포기했던 금융시스템의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 구조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함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러 정책적 특징들이 어떤 면에서 세계경제를 교란시키고 있는 트럼프 및 트럼프 흉내를 내기 시작한 아베와 같은 선동주의적인 극우정권의 성립배경으로 연결되는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촉발되는 과정은 부시정권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금융규제 철폐정책들에 힘입어 급격히 진행되었으나, 정작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은 대부분 2009년에 취임한 오바마 행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매우 신속하고도 민첩하게 금융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규모 조치들을 과감하게 시행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세계금융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정책협조 및 정책공조를 이루어낼 수 있는 국제협력의 틀을 G20 등을 통하여 구축하는 성과를 보여줬다. 즉 오바마 행정부는 양적 완화와 같은 전대미문의 통화정책과 파산위기에 직면한 대형금융기관들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금융의 적극적인 제공 등을 통하여,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경제공황이라는 공포 확산을 매우 효과적으로 저지시켰다는 점을 세세한 기록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매우 놀랍고도 신속한 위기대응 노력의 기본방향은 기존 세계금융체제와 금융기관들을 보존하는 가운데 위기요인들을 최소화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결국 재무구조상 파산되는 것이 옳았던 초대형 부실금융기관들은 막대한 재정투입으로 살아남은 반면, 경제위기의 실질적 비용을 금융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매우 심각한 아이러니를 남겼다. 즉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수년 후에 양적 완화를 통하여 넘치는 유동성 공급을 받은 대형 부실은행들은 다시금 초대형 보너스잔치를 벌이는 가운데, 정작 모기지론 위기 비용은 주택을 차압당한 금융소비자들이 떠안으면서 세계화와 금융시장 자유화에 대한 깊은 사회적 반감과 적개심이 누적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저자는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누적된 사회적 분노가 결국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계기가 되었고 전세계 경제를 불확실성의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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