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퓨처 : 기후 변화·생명공학·인공지능·우주 연구는 인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
원 제 : On the future : prospects for humanity
저 자 : 마틴 리스(제15대 영국 왕립 천문학자)
서평자 : 홍성욱(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comenius@snu.ac.kr]
“‘우주선 지구’는 진공 속을 돌진하고 있다. 승객들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들의 생명 유지 장치는 교란과 고장에 취약하다. 하지만 현재는 장기적인 위험에 관한 대책도, 현안 탐색도, 자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미래의 세대들에게 고갈되고 위험한 세계를 물려준다면 너무나 부끄럽지 않겠는가.” (286p.)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 한 과학자의 균형 잡힌 미래 예측
진화론이 맞는다면, 호모사피엔스는 20만년 동안 수렵채집 시대를 살았다. 직립한 조상까지 생각한다면, 인간은 적어도 수백 만 년 동안 동물 비슷한 상태로 생존했다. 호모 족은 다른 동물이나, 심지어 다른 유인원에 비해서 힘이 부족했다. 근육이 발달하지도 못했고, 빨리 뛰거나 나무를 타지도 못했다. 한참 동안 다른 강한 동물들과 강한 부족의 눈치를 보면서 생존해야 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여러 본능과 직관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진화의 결과 중 하나는 인간이 자신과 자식 세대를 제외한 그 이후 세대에 대해서는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인간의 진화에 유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손자 세대가 자라서 성인이 되는 것을 보기 전에 죽곤 했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신의 생존을 걱정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 세대 정도를 돌보는 게 전부였다. 미래는 미래 세대에 맡겨 두었다.
문제는 지금도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의 <온 더 퓨처>는 우리가 더 이상 미래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방사능이 없어질 때까지 10,000년이 걸리는 핵폐기물처리장을 짓고 있다. 이 설비는 향후 300세대 동안 튼튼하게 서 있어야 한다. 지구의 온도가 증가하고, 멸종이 가속화되고, 플라스틱이 쌓이고, 에너지원이 고갈되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인가? 적어도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미국의 트럼프 세대나 한국의 586 세대는 아닐 것이다. 반면에 지금의 아이들이나 10대는 그 피해를 직접 경험하는 세대가 될 것이다. 2019년 9월, 유엔의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어른들이 젊은이와 아이들의 꿈을 빼앗아갔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온 더 퓨처>는 미래에 대한,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 미래예측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미래예측서의 목적은 미래를 예측해서 (이런 예측이 잘 된 적은 거의 없지만) 사람들에게 권력과 돈을 움켜쥐게 하는 것이었지, 미래 세대의 복리(well-being)를 증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온 더 퓨처>는 우리 세대가, 특히 과학자들이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역설한다.
리스는 청정에너지 연구에 자금과 노력을 투입하면, 미래에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낙관한다. 기후변화가 심각하지만, 인류의 여러 노력들이 합쳐져서 지구 온도를 묶어둘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생명공학이 열어주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그는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지구 대기 전체를 조작하는 지구공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회의적이다. 이런 방법은 알려진 부작용만 해도 심각할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스는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거대과학에 비판적이며, 영생을 꿈꾸는 트랜스휴먼 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천문학자인 그는 인류가 언젠가 우주로 나가고 외계인과 조우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이것이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화성 탐사와 같은 프로젝트는 정부보다는 민간 기업에 맡기자고 제안한다.
<온 더 퓨처>는 미래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기술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그렇지만 과학만능주의는 아니다. 리스는 과학의 가능성과 한계를 잘 저울질하고 있으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과도한 육식이 낳는 생태계 파괴와 인구 증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유전자변형 식품이나 저선량 방사능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런 위험에 대한 회피가 식량 문제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가리킨다.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과 2장은 현재 인류세 시대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다룬다. 3장은 우주에 대해서 논하고, 4장과 5장은 과학과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서 분석한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인류세 시대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과 종교가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 있다. 종교를 비과학적이라고 배척하지 않고,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종교가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 데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온 더 퓨처>는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는 비관론과 인류와 번영을 설파하는 낙관론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제 3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 3의 길은 현재 문제를 극복하는 실천적인 힘이 될 수 있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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